[한-중동 협력③] 비즈니스 이전에 중동을 이해하라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3-08-23 17:07:17
음식은 '할랄 인증' 받은 것만…술·돼지고기는 '엄금'
"중동 사람들은 느긋해…꾸준히 우의와 신뢰 쌓아야"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손자병법에 나온 격언이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용된다. 비즈니스를 성공시키려면, 나를 아는 동시에 상대를 잘 알아야 한다.
특히 한국과 중동은 지리적·문화적·종교적 차이가 크다. 전문가들은 중동 비즈니스에서 이 차이를 잘 이해하고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무진보다 헤드를 만나라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23일 "중동에는 여전히 유목민 정신이 남아 있다"며 "관계를 중요시하는 이슬람 사회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4선 중진 의원 출신인 김정훈 한·중동 지속발전포럼 회장도 중동에서 사람과 사람 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참여하는 공식적인 회담보다는 비공식적인 만남이 더 유리하다"며 "개인적으로 소탈한 대화를 통해 더 수월하게 비즈니스를 성사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중동 비즈니스에서 실무진부터 접촉해 올라가는 방식보다 '톱다운 비즈니스'를 추천했다.
여러 중동 국가들은 아직도 사실상 부족국가의 성격을 띠고 있고 왕실의 힘이 지대하다는 걸 염두에 둔 방식이다. 김 회장은 "실무진부터 접촉해 위로 올라가는 방식은 시간만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이라며 "왕족 등 고위층과 직접 접촉해 수락을 얻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고 전했다.
이를 위해서 민·관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왕실의 영향력이 큰 만큼 민간기업 혼자 움직이기보다 정부가 나서 직접 중동 고위층과 접촉하는 방식이 유리하다는 분석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 관계자도 "정부가 민·관 협력에 기초해 인적·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동 사람이 검토해보자는 건 'NO'나 마찬가지"
중동 사람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관습을 이해하는 것도 비즈니스에서 중요하다. 중동은 특히 모두가 이슬람교를 믿기에 한국인이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다.
먼저 모든 이슬람교도들은 하루 다섯 번씩 메카를 향해 기도를 드린다. 기도 시간에는 모든 업무가 멈추고 상점도 다 문을 닫을 만큼 철저하다. 기도 시간에 비즈니스 이야기를 하는 건 매우 무례한 짓이다.
음식도 '할랄 인증'(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살·처리·가공된 식품)을 받은 것만 먹으므로 식사 대접을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중동처럼 이슬람교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 10년 째 살고 있는 교포 A 씨는 "이슬람교도들은 할랄 인증을 거쳤다는 걸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음식에 손도 대지 않는 경우가 많으니 유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특히 술과 돼지고기는 절대 엄금"이라고 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술과 돼지고기는 어떤 경우에도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는 대상이다. 돼지고기는 물론, 라드 등 돼지고기 기름이 들어간 요리도 먹지 않는다. 또 술을 마시지 않을 뿐 아니라 술이 들어간 화장품, 샴푸 등도 기피 대상이다.
정통 칼리프 시대(서기 632~661년)의 명장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서기 592~642년)는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당대의 두 제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연전연승을 거뒀다. 눈부신 전공으로 '신이 뽑아든 칼'이란 명예로운 별칭도 얻었다. 그런데 그는 목욕물에 술을 탔다는 이유로 총사령관 지위에서 쫓겨났다. 이슬람교도들은 그 정도로 예민하다.
김 회장은 중동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훨씬 느긋하다는 점도 새겨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동 비즈니스에서는 서두르기보다 꾸준히 교류하며 우의와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당부다.
김 회장은 또 "중동 사람들은 'NO'란 표현을 잘 안 한다"며 "그들이 검토해보자는 건 곧 완곡한 거절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상 거절한 건데 이를 오해한 한국 기업들이 매달리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만 낭비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에게 유리한 점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동도 동양권이라 연장자를 공경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다"며 "이 점은 오히려 서양보다 한국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중동 사람들은 한국에 우호적"이라며 "한국인들이 성실하고 부지런하다며 높이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 중국 등보다 오히려 한국과 더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하므로 잘 활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1970년대 '중동 붐'이 불 때 한국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다양한 건설 사업을 훌륭히 완수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며 "그 때의 우호적인 시선이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듯 하다"고 진단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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