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현대·기아차의 '신차 품질 악령'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3-08-11 13:37:50
지난해 11월 신형 그랜저 출시 이후 16건 무상 수리 실시
지금의 호실적 밑바탕에 품질경영의 결과임을 명심해야
어려운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잘나가는 기업을 꼽으라면 현대·기아차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 현대·기아차가 극복하지 못하는 괴담이 있다. 바로 '현대·기아차의 신차를 출시 초기에 구입하면 바보'라든가 '베타테스터(제품의 결함 여부를 미리 검사하는 사람)가 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출시 초기에 고장이 너무 잦기 때문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문제를 잡고 난 뒤에 현대·기아차를 구입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야심차게 출시한 기아차의 EV9이 출시 두 달도 안 돼 리콜에 들어가면서 그냥 괴담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소비자들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EV9, 주행 중 동력 상실로 리콜 실시
기아차는 EV9을 출시하면서 가장 혁신적인 국내 최초 대형 전동화 SUV라고 자랑했지만 출시 초기부터 주행 중 동력 상실이라는 문제에 부딪혔다. EV9을 구입한 소비자가 고속도로 주행 중에 갑자기 기어가 중립 모드로 바뀌면서 차량 속도가 줄어들고 가속페달을 밟아도 가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왔다. 이 소비자는 달리던 관성으로 가까스로 갓길에 주차했다면서 자칫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고 푸념했다. EV9을 구입한 사람들의 인터넷 카페에는 이러한 동력 상실이 발생한 차량이 최소 8건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차는 결국 EV9의 주행 중 동력 상실과 관련해 10일부터 리콜에 들어갔고 국토교통부도 이번 결함이 '안전상 문제'인 만큼 리콜이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기아차가 배포한 리콜 통지문을 보면 후륜 구동 모터 제어장치의 프로그램에 설계 잘못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신 불량이 발생하면 전원 공급이 차단돼 차량이 주행 중에 가속이 불가능해지거나 차량이 멈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번 리콜 대상 차량은 모두 8300여 대에 달하고 그 가운데 2500대는 이미 소비자에게 인도돼 운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주행 중 동력 상실'은 현대·기아차의 단골 결함
그런데 문제는 주행 중 동력 상실이라는 결함이 EV9에 처음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2021년 출시된 EV6도 주행 중 동력 상실 문제로 리콜을 진행했던 전례가 있다. 뿐만 아니라 올 들어 국토교통부 자동차 리콜센터에 접수된 현대·기아차의 주행 중 동력 상실 신고가 34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차종별로는 EV6 26건, 제네시스 GV60 6건, 아이오닉5와 GV70 전동화 모델이 각각 1건으로 나타났다.
현대·기아차는 이러한 주행 중 동력 상실에 대해 EV6는 ICCU(통합 충전 제어장치)에 문제가 있었고 EV9 등 나머지 차량은 소프트웨어 오류라고 밝히면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결함을 시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전문가들은 2년 이상 주행 중 동력 상실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해 의구심을 보이면서 현대·기아차가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신형그랜저, 16건의 무상 수리에도 결함 의심 사례 잇따라
정몽구 회장이 1998년 미국시장에서 '10년 10만 마일 무상보증'으로 대변되는 품질 경영을 내세운 이후 현대·기아차의 신차 품질 괴담은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한 동안 잠잠하던 현대·기아차의 신차 품질 괴담이 되살아난 것은 지난해 11월 출시된 신형 그랜저가 계기가 됐다.
신형 그랜저는 주행 중 시동 꺼짐 현상으로 출시한지 한 달여 만에 무상 수리를 진행했고 지난 7월까지 모두 16건의 무상 수리를 실시했다. 결함의 종류나 내용도 다양하다. 전자제어장치부터 타이어공기압주입기, 전동트렁크, 전동브레이크 등 전 부문에 걸쳐 문제가 발견돼 무상 수리를 실시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신형 그랜저를 구입한 고객들의 온라인 동호회에는 램프와 도어센스 등에서 또 다른 결함을 의심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정의선 회장, 품질 경영 승계 뜻 밝혔으나, 글쎄?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은 2021년 신년사에서 "현대차 그룹의 모든 활동은 품질과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아버지 정몽구 회장의 품질 경영을 이어갈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신차 품질 논란은 품질 경영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게 사실이다.
더구나 무상 수리나 리콜을 통해 잡을 수 있는 결함이라면 사전에 시험을 충분히 거쳤더라면 애초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주행 중 동력 상실과 같은 결함은 도로 테스트를 통해 쉽게 인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현대·기아차가 신차 개발 때 비용 최소화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약진이 놀라울 정도다. 분기별 매출과 영업실적이 사상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 외신들은 현대·기아차를 BMW나 아우디에 버금가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대접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의 밑바탕에는 품질이 있다. "현대·기아차는 신차가 나와도 1-2년 뒤에 사야 고생하지 않는다."는 괴담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좋은 실적이나 최상급 대접은 과거의 기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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