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고금리·또 뛰는 집값…'희망' 잃고 '적금' 깨는 청년들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3-06-21 17:02:07

"이자부담 높고 물가 너무 비싸…저축할 여유 없어"
"아끼고 모아도 집 한 채 마련 힘들어…희망 없다"

자취를 하는 20대 후반 직장인 A 씨는 지난달 생활비를 계산하다가 한숨만 나왔다. 전세자금대출 이자 약 30만 원, 공과금 약 20만 원, 식비 약 40만 원 등 생활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작년까지는 월 80만 원 가량으로 조절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아껴 써도 금세 100만 원을 넘겼다. 고물가·고금리에 지친 A 씨는 지난해 가입한 '청년희망적금'을 깰까 고민 중이다. 

30대 초반 직장인 B 씨는 이달 초 보유한 적금을 모두 해지했다. 요 몇 년 간 집값이 너무 올라 "아무리 열심히 저축해도 서울에 내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다"는 절망감이 컸다.  

작년부터 집값이 하락세라 조금 기대했으나 최근 다시 뛰는 걸 보자 포기했다. B 씨는 자동차부터 한 대 사고, 좋은 식당에 가는 등 현재를 즐길 생각이다. 

올해 여전한 고금리에 물가는 더 치솟으면서 생활고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적금을 해지해야 하는 처지로 몰리고 있다. 일부 청년은 희망이 없다며 지금의 생활에 돈을 아낌없이 쓰겠다는 태도다. 

21일 금융감독원이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청년희망적금 중도해지자 수는 총 68만4878명이다. 지난해 2월 상품 출시 당시 최초 가입자(289만5546명) 중 23.7%가 1년 4개월 새 중도해지한 것이다. 

청년희망적금은 만기 2년 동안 매달 50만원 한도로 납입할 경우 정부 지원금(저축 장려금)까지 합쳐 연 10% 안팎의 금리 효과를 누릴 수 있어 처음 출시됐을 때는 인기가 높았다. 당시 정부는 가입자 규모를 약 38만 명으로 예측했으나 실제로는 300만 명 가까이 몰렸다. 

중도 해지의 주된 이유로는 고물가·고금리가 야기한 고통이 꼽힌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은 505만4000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7% 늘었다. 하지만 지출(388만5000원) 증가율은 11.1%로 소득 증가율을 뛰어넘었다. 

품목별로 음식·숙박(21.1%), 교통(21.6%), 오락·문화(34.9%), 주거·수도·광열(11.5%)이 주로 증가해 높은 물가상승률을 체감케 했다. 특히 청년희망적금 가입자 중 '10만원 미만' 납입자의 중도해지율(49.2%)이 가장 높아 형편이 어려운 청년일수록 적금을 깬 것으로 나타났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청년희망적금은 그나마 금리가 높아 가입자들이 최대한 유지하는 추세"라며 "일반 정기적금은 중도해지율이 훨신 더 높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가 이어지면 윤석열 대통령 공약에 따라 도입된 '청년도약계좌'도 높은 중도해지율을 기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년도약계좌는 5년 간 매달 70만원 한도로 적금하면 5000만 원 가량의 목돈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됐다. 금리는 우대 금리와 정부 지원금을 더해 최대 연 8%대 후반까지 가능하다. 

금융당국은 매달 쌓이는 정부 지원금과 이자 수준을 은행 계좌나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 '돈 쌓이는 재미'를 체감케 하는 안을 구상 중이다. 

▲ 고물가·고금리에 치이고 높은 집값에 희망을 잃은 청년들이 적금을 깨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청년들은 그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부채가 소득보다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등 근래 청년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21년 20대 후반(25~29세)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은 271만 원으로 전년(258만 원) 대비 5.0% 늘었다. 같은 기간 30대 초반(30~34세)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333만 원)은 4.4%, 30대 후반(388만 원)은 5.4%씩 증가했다. 

2021년 말 기준 20대(29세 이하) 평균 부채는 1691만 원으로 전년 말의 1466만 원보다 15.3% 확대됐다. 같은 기간 30대(30~39세) 평균 부채는 6475만 원에서 7168만 원으로 10.7% 늘었다. 돈을 벌어 빚 갚기 바쁘니 저축할 여유가 생기기 어렵다. 

A 씨는 "물가가 너무 비싸 저축할 여유가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20대 후반 직장인 C 씨도 "월세, 공과금, 생활비 등을 제하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A, C 씨는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청년들의 소득을 증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집값이 상승세로 돌아서 청년들의 절망감을 키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12일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0.03% 올라 4주 연속 상승세를 나타냈다. 

서울 아파트 단지 곳곳에서 신고가 거래가 터지고 있다. 지난 8일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12차 전용면적 110.82㎡(2층)는 36억 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다. 은평뉴타운제각말푸르지오(5-2단지) 전용 101.97㎡는 지난달 28일 기존 최고가 대비 9억5500만 원이나 급등한, 18억2000만 원에 매매됐다. 

B 씨는 "청년도약계좌로 5000만 원을 모아도 집값에는 한참 모자란다"며 불만을 토했다. 그는 "어차피 집 한 채 사기 어려운데 조금씩 아끼며 아등바등 살 바엔 현재를 즐길 생각"이라고 전했다. 

30대 초반 직장인 D 씨도 "서울 주택 매수를 꿈꿨는데, 요새 집값이 또 상승하자 절망감만 느껴진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어차피 꿈을 이루기 힘드니 차라리 먹고 싶은 거 먹고, 입고 싶은 거 입으면서 젊은 시절을 즐기려 한다"고 덧붙였다. 

한문도 연세대 정경대학원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집값이 비싼 상황에서는 청년들이 희망을 지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금융권 관계자도 "집값이 대폭 하락해야 꿈을 품고 저축하는 청년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진단했다. 

KPI뉴스 / 안재성·김명주 기자 seilen78@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