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의 금융경제 읽기] 디폴트 넘긴 미국, 이제 국가부채발 인플레가 걱정
UPI뉴스
| 2023-06-09 18:06:20
확대재정은 인플레 초래…긴축통화정책과 상충
국가부채 증가는 금융부문에도 리스크 요인
금융 패권국일수록 재정운영 실질적 룰 중요
미국 디폴트 위기는 지나갔다. 연방정부 부채한도 법안이 치열한 여야 힘겨루기 끝에 미국 상하원을 통과했고, 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는 것으로 입법 절차가 종결됐다.
이제 문제는 국가부채다. 미 재무부는 바닥난 국고를 채우기 위해 1조 달러가 넘는 국채발행에 곧 나설 것이다. 디폴트 위기를 넘기자 바로 국가부채 증가가 뒤따르는 국면이다.
'재정 적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Deficits don't matter) 역설적이게도 재정 지출에 보수적인 정당인 공화당의 딕 체니 전 부통령이 20여년전 주창했던 슬로건이다. 그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가부채가 세 배로 늘었지만 미국 경제는 호황을 구가했고 국채금리도 크게 떨어졌음을 그 증거로 인용했다.
과연 그런가. 지난 20년 동안에도 미국 국가부채는 다시 두배로 늘어났지만 사실 국채금리는 20년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금번 미국 부채한도를 둘러싼 일대 소동에도 개의치 않고 시장은 기꺼이 추가 발행되는 국채를 매입할 태세다. 정부는 개인과는 달리 영속적인 경제주체라고 여겨 부채가 계속 확대되어 다음 세대로 넘어가도 크게 개의치 않으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IMF의 지난달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1970~2021년중 139개국의 재정정책과 인플레이션 간의 관계를 분석한 결과 확장적 재정정책 충격이 인플레이션율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울러 높은 국가부채 등으로 재정 여력이 제한적일 경우 인플레이션율은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물가안정목표제, 재정준칙 등과 같은 제도적 요인은 재정충격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인 것으로 분석되었다.
BIS는 최근 연구보고서에서 국가부채 위기가 금융부문 부실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예를 들면 국채발행 증가에 따른 국채가격 하락과 위험프리미엄 증대는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악화시킬 수 있다. 금융부문 부실은 세수 감소와 국가부채 누증을 초래하는 등 국가부채와 금융위기 간 상호 악순환이 유발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동 보고서는 금융위기가 정부부문으로 전파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여력 확보가 긴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달 서울에서 열린 한국은행 국제컨퍼런스에서 나라야나 코철러코타 전 미국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가 '미국의 인플레이션: 진단과 처방(US Inflation: Diagnosis and Treatment)'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최근의 높은 인플레이션은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공급 요인 등에 주로 기인한 것으로 평가하고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긴축적 통화정책에만 의존하기보다는 긴축적 재정정책이 동반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금리가 높아진 상황에서 미국의 국채발행 증가는 가계의 국채이자 수익을 증대시켜 오히려 미래 수요를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디폴트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확대재정이 초래하는 인플레이션 위험성, 늘어나는 국가부채가 금융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제기구들의 연구와 중앙은행가의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초저금리 시기에는 높은 국가부채가 별반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금리가 급격하게 상승한 데다 부채 총량도 늘어나 있다. 부채한도 확대와 함께 국채발행에 따른 정부의 이자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어 향후 상당기간 재정여력을 제약할 수 있는 형국이다.
통화정책 운용에서 물가안정목표제라는 룰이 중앙은행에 나침반 역할을 해주듯 재정정책 운영에도 재정준칙과 같은 룰에 기반을 두는 메커니즘은 의미가 있다.
특히 지금처럼 인플레이션과 은행 위기가 공존하는 미국과 같은 상황에서 재정정책의 올바른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확대재정은 연준의 긴축 통화정책과 상충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 노력을 꺾을 것이다.
긴축 통화정책과 긴축 재정정책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코철러코타 전 미니애폴리스 연준 총재의 조언은 경청할 만하다. 실리콘밸리은행 등 파산 이후 아직 은행 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는 시점에서 봇물처럼 터지는 국채발행 물량이 국채금리 상승과 국채가격 하락을 초래하여 은행들의 대차대조표에 주름살을 더하고 추가적인 예금이탈로도 이어질 우려가 있다.
국가부채 증가가 금융부문에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미국의 디폴트는 없다는 재정패권(fiscal supremacy)의 기저에는 금융패권(financial supremacy)이 자리하고 있다.
금융 패권의 원천인 기축통화이자 준비통화 미 달러화의 위상은 미국의 경제력, 금융시장의 깊이와 폭, 제도의 선진성과 법의 지배(rule of law) 등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지금의 인플레이션과 은행 위기는 달러화에 대한 위험 요인이기도 하다. 금융·재정 패권국일수록 재정운영의 실질적 룰이 중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팬데믹 이후 전개되는 패러다임 대전환의 시대에 필요한 재정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각국은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재정여력을 확충해 나가야 할 당위를 안고 있다.
'룰 대 재량'은 거시경제정책 운용의 근본적 관심사였고 재정준칙이라는 법률적 룰을 입법부가 부여하더라도 실질적 운용의 룰인 재량의 영역은 늘 중요하다.
●조홍균은
법·제도경제학자이자 35년 경력 중앙은행가. 경제, 금융, 기업 관련 정책과 제도를 주로 천착했다. 통화금융정책, 금융체제, 금융감독, 금융산업, 기업정책, 법경제 실무와 이론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중앙은행과 정부, 국제기구, 학계, 언론계 등에 걸쳐 폭넓게 이력을 쌓았다.
△ 미 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 1989년 한국은행 입행 △ 1990년 조사제1부 조사역 △ 1999~2012년 정책기획국 과장 차장 팀장 △ 2016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 파견국장 △ 2017년 한국금융소비자학회 부회장 △ 2018년 한국금융연수원 교수 △ 2020년 고려대 겸임교수 △ 2022년 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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