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어휘 붙들었던 작가·언론인 최일남 별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05-29 00:36:23
신군부에 해직 당한 올곧은 언론인…예리한 필봉
노년까지 집필 지속,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역임
구수한 한국어로 산업화의 그늘을 그려낸 소설가이자 해직을 거치며 언론계 일선에서 올곧은 필봉을 견지했던 최일남이 28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1932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를 거쳐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53년 '문예'지에 단편소설 '쑥 이야기'가 추천됐고, 1956년 '현대문학'에 '파양'이 최종 추천되면서 소설가로 나섰다. 민국일보와 경향신문을 거쳐 동아일보 기자로 살면서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탄압으로 동아일보 편집부국장과 문화부장을 겸하던 중 해직당했다. 1984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으로 복직했으며, 한겨레신문 논설고문을 지냈다.
출세한 촌사람들이 도시에 와서 겪는 객지 생활의 애환과 산업화의 그늘을 풍부한 토착어를 바탕으로 그려냈다. 언론사와 정치권을 배경으로 정치권력의 위선과 횡포, 지식인의 타락을 풍자한 소설들도 한 축을 이룬다.
최일남 소설의 묘미 중 하나는 '최일남 소설어사전'이 따로 나왔을 정도로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사전에는 다 나오는, 되살려 쓰면 감칠맛 날 것 같은 어휘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한 점이다. 이를 두고 2017년 펴낸 14번째 마지막 소설집 '국화 밑에서'에서 노년의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그가 고수한 언어에 대한 철학을 드러낸다.
"그만 그만. 대충 이해하겠는데, 당신의 말엔 한문 투가 너무 많아. 대명천지 인터넷 세상에 무슨 짝인가." "우리 연배는 돈 주고 배운 공력이 아깝고 그 말과 허물없이 지낸 정의가 하도 깊어 쓰레기통에 버렸던 놈까지 다시 줍는 경우마저 있잖은가. 깨끗이 씻어 새 말에 곁들이면 섞어찌개 같은 맛이 한층 구수하고."
소설집 '서울 사람들' '홰치는 소리' '거룩한 응달' '그리고 흔들리는 배' '하얀 손' '아주 느린 시간', 장편 '거룩한 응달' '하얀 손' '덧없어라 그 들녘' 등을 남겼다. 월탄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상문학상, 인촌문화상, 한무숙문학상, 김동리문학상, 인촌상, 위암장지연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았고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했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2008~2010)을 역임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3호실이며, 30일 오전 9시 발인 예정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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