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특별법 '사각지대' 커…전셋값 폭등 영향
박정식
pjs@kpinews.kr | 2023-05-24 17:48:50
전셋값 폭등 탓에 소액임차인 기준 넘어서는 피해자 '수두룩'
전문가들 "피해자 생활 안정, 보증금 손실 상쇄에 초점을"
여야가 진통 끝에 지난 22일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에 합의했다. 하지만 지원 범위가 좁아 실제론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거란 지적이 나온다.
특별법은 주택이 경·공매로 넘어갔는데, 최우선변제금을 못 받게 된 피해자에게 장기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지원 대상엔 △선순위 근저당 설정 당시 소액임차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피해자 △전세계약 갱신 때 보증금을 늘리면서 소액임차인 기준을 벗어나게 된 피해자도 포함했다. 소액임차인 보증금과 최우선변제금의 기준에 따라 무이자 대출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자가 최우선변제금을 받으려면, 우선 최초 근저당 설정일 기준으로 해당 보증금이 소액임차인 기준 이하여야 한다. 올해 2월 소액임차인 보증금 기준이 상향됐지만, 현 기준 이하더라도 당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최우선 변제금을 받지 못한다.
또 처음 계약 당시에는 소액임차인 기준 이하였더라도 이후 갱신 계약에서 상향된 보증금이 소액임차인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최우선변제금을 못받는다.
특별법은 이 갭을 메우는 게 주 목적이다. 현재 기준으로 소액임차인 기준을 충족하지만 과거 기준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피해자, 갱신 계약에서 보증금이 상향되는 바람에 소액임차인 기준에서 벗어난 피해자 등에게 무이자대출을 지원하는 것이다.
하지만 특별법까지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지원 대상이 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많다. 최근 수 년 간 전셋값이 폭등한 탓에 선순위 근저당이 없으며 최초 전세계약 때부터 소액임차인 기준을 벗어난 경우나 상향 조정된 기준을 적용해도 소액임차인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또 무이자 대출은 전세대출에만 지원한다. 피해자가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거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피해자 주택을 매입한 경우엔 지원하지 않는다.
보증금 채권 매입, 최우선변제금 소급 등 야당과 피해자들이 줄곧 요구해온 '선 보상, 후 회수(구상권 청구)' 방안은 빠졌다. 정부가 사인 간 계약관계를 보상할 수 없고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법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때문에 피해자들은 특별법의 무이자대출 지원을 받더라도 별 도움이 안된다고 반발한다. 이미 기존 전세대출을 안고 있는 피해자에게 새로운 빚을 떠안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전세사기·깡통전세피해자전국대책위원회는 "최우선변제금만큼도 못 받는 피해자들이 그만큼이라도 되찾도록 보장해주는 보증금 회수 방안을 반영해달라"고 요구한다.
전문가들도 보다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살던 집을 떠나면 생업 피해, 대항권 상실 등의 문제가 야기되므로 정부는 피해자의 생활 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증금 반환 보증을 임대차계약서 작성 전에 누구나 발급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 선행적 제도로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당국이 피해자별 상황과 권리를 세세하게 파악해 낙찰할지 손절할지 최우선변제금을 받을지 방향을 빠르게 제시해줘야 한다"며 지원제도의 적극적인 운용을 주문했다. 이와 함께 향후 피해 확산에 대응하려면 "보유주택·세금체납·대출현황 등 당국의 임대인정보 관리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공공기관이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임차 주택을 공공임대로 제공해 주거 연속성, 저렴한 임대료, 장기 거주 등으로 보증금 손실을 상쇄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 위축, 역전세난 등 부동산 침체 상황에선 보증금 미반환 위험성이 상존한다"며 "연립·다세대나 소형 아파트 등 전세가율이 높고 매매 정보가 불투명한 주택유형에 대해 정부가 관리감독망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KPI뉴스 / 박정식 기자 pjs@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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