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엄마를 미라로 만들어 희망을 찾는 방식"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05-15 10:39:05
사회적 약자 두 남녀가 부모를 미라로 만든 사연
가족에게만 일임된 사회적 문제 '간병' 정면 응시
"이건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
누군가는 수십억원대의 코인을 게임하듯 가지고 놀고, 또 누군가는 돈으로 돈을 버는 돈놀이에 하루가 짧지만, 28만원 때문에 죽은 어미를 미라로 만들어 방에 두고 사는 여자도 있다. 명주라는 이름의 50대 여성, 이혼하고 13평짜리 임대아파트에 홀로 사는 모친 곁으로 온 빈털터리다. 치매에 걸린 엄마가 잠시 홀로 둔 틈에 방에서 넘어져 사망했다. 딸도 별 미련 없는 세상 떠나려고 엄마가 처방받아놓은 약을 뭉텅이로 삼켰지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났다. 살고 보니, 살고 싶었다.
엄마의 죽음을 숨기고 시신을 아마포로 둘러싸 미라로 만들어 넣은 나무관을 작은 방에 모셔두었다. 엄마가 세상에 없어도 기초연금 307,500원과 유족연금 698,000원을 합친 1,005,500원이 입금되는 게 신기했다. 월세와 생활비를 빼고 나니 28만원이 남았다. 엄마의 진료비를 내고, 병원 약, 기저귀와 패드, 영양 캔과 속옷들을 사던 금액이었다. 이 돈은 이제 자신만을 위해 써도 되는 상황,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명주는 엄마가 남겨준 풍요와 여유가 믿기지 않았다.
옆집 702호에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26세 청년 준성.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하루 10만원이 넘는 간병비를 대는 건 무리였다. 아버지 국민연금은 65만원. 한달에 100만원 정도 겨우 버는 대리운전비를 합쳐도 형이 남기고 잠적한 빚의 이자까지 충당하는 건 불가능했다. 설상가상, 벤틀리를 대리운전하다 꼼짝없이 보험에서 제외된 금액을 물어내야할 처지다. 하릴없이 대리운전 그만두고 아버지를 집에 모셔 청년이 간병하는데, 욕실에서 잠시 방심한 사이 아버지가 바닥에 넘어져 피투성이가 됐다. 물리치료학과를 졸업하고 시험 준비를 했건만 아버지 보살피랴, 대리운전하랴 합격할 여유가 없었다.
119를 부르고 경찰에 가서 진술하다보면 살인죄를 덮어쓸지도 모르는, 이제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처지. 명주가 서로 힘을 보태자고 제안한다. 함께 두 시신을 싣고 지방으로 내려가자고. 준성이 운전하는 트럭 뒤에 두 노인을 싣고 출발하는 날, 눈은 내리는데 갑자기 트럭 짐칸에서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이들은 무사히 저 암울한 터널을 통과해 원하는 세상에 잠시라도 당도할 수 있을까. 문미순의 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나무옆의자)은 숨가쁘게 흘러간다.
"서민 가정들은 간병인을 쓸 수조차 없어요. 간병비 외에 병원비도 내야하는데 이 모든 것이 가족에게 다 일임된 것이 지금 상황입니다. 공공의료 차원에서 나라가 이런 것들을 보조하고 해결해주는 시스템으로 가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간병이 더 길어질 경우 가뜩이나 고령화사회로 가고 있는데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는 건 자명합니다. 나라가 외면하고 있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남편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75일 동안 병원에서 간병을 하면서 보고 느낀 것들을 토대로 이 소설을 착안했다는 문미순 씨는 "외려 간호가 필요한 팔순 노인이 60대 아들을 간병하는 경우도 보았다"면서 "가족 중에서도 대부분 간병은 여성의 몫"이라고 말했다. 문 씨는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두 남녀를 설정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간병 문제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문미순(57)은 젊은 시절부터 소설쓰기를 갈망하다가 아이들 양육을 끝낸 뒤 본격적으로 습작을 시작,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1년 심훈문학상을 받으면서 첫 단편집 '고양이 버스'를 펴내기까지 베이비시터, 마트 계산원 등 각종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면서 최저 시급 노동의 현실을 몸으로 체험했다. 아이들 개인 과외 정도의 세상 체험에서 벗어나 직접 최저 시급 계층과 함께 일하는 환경 속에서 사회를 보는 눈이 바뀌었다고 했다. 소설가 박상륭이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했다는 말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됐다.
-너무 젊어서부터 소설에 모든 걸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가 그 일에 전문가가 되고 그것에 관해 쓰면 그게 소설이 되는 거지, 소설이 뭐 별건가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어렵지.
응모 당시 제목은 '야만의 겨울'. 문 씨는 "굉장히 암울한 이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해서 야만이라는 단어를 붙인 것이었다"면서 "이 사람들이 그런 잔혹하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 어떤 봄을 맞이할지 기대를 조금 품을 수 있다는 면에서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말미에 이르면 스스로 자신들을 돌보는 이들의 따스한 연대가 희미하게 드러난다.
평론가 최원식은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민(民) 스스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는 희망의 정수박이가 빛나는 소설"이라고 평했고, 젊은 평론가 박혜진도 "자신이 따라야 할 것은 국법이 아니라 마음의 법이라며 왕명을 거슬러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었던 안티고네의 상황만큼이나 절박하고 철학적"이라고 보았다. 명주가 엄마를 미라로 만들면서 중얼거린 말.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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