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 "행복과 불행은 봄바람이나 안개처럼 번지는 것"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3-04-16 22:32:48

장편 '지니, 너 없는 동안' 펴낸 소설가 이은정
램프 요정 지니에게 비는 다섯 가지 불행의 끝
타인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 될 수 없는 이유
"행복과 불행은 공존… 유리하게 받아들여야"

행복과 불행의 분기점은 있을까. 어느 상태까지가 행복이고, 그 너머가 불행일까. 행복과 불행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게 가능한 것이기는 할까. 행복과 불행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서로 섞여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불행을 극복하고 행복을 추출해낼 수 있을까. 이은정의 첫 장편 '지니, 너 없는 동안'(이정서재)이 던지는 만만치 않은 질문이다.

▲첫 장편을 펴낸 소설가 이은정. 그는 작중 인물의 바람처럼 "재미있지만 심각하고 말도 안 되지만 궁금한 서사"를 지향했다. [이은정 제공]

따지고 보면 가벼운 주제는 아니지만 판타지를 가미한 외피는 밝은 편이다. 등장하는 인물들도 청소년이 중심이다. 중심 인물은 10대 중반을 관통해 가는 '마동안'. 동안의 아버지 마주공은 원양어선 기관부로 들어가 일 년에 한두 번 집에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폭력을 겪어야 하는 어머니 '강미애'의 고통은 참담하다. 마주공이 집에 올 때마다 들고 온 골동품 중 작은 주전자가 문제였다.

알라딘 램프에서 나온 '지니'가 소원을 들어주는 이야기가 새롭게 전개된다. 오랫동안 갇혀 있던 지니가 마동안에게 나타나 행복 말고, 불행을 비는 소원만 다섯 번들어줄 수 있다고 말한다. 11세기 무렵 어떤 자가 자기만 행복해지고 싶다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세상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불행하게 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같이 행복하기도 힘들지만 다 같이 불행해지는 것도 어불성성이었다고, 지니는 말한다. 임무를 완성하지 못한 지니는 좌천됐고, 이제야 마동안을 만나 행복 대신 불행만 들어주게 된 사연이다. 

마동안이 끔찍한 폭력에 노출된 어머니 강미애를 배려해 아버지 마주공의 불행을 바란 모양인데, 그때문인지는 모르되 아버지의 배는 원양에서 실종되고 만다. 그 결과 강미애와 마동안은 행복해졌을까. 설아의 아버지 윤지태와 강미애가 좋아하는 사이가 됐는데, 이들의 결합은 동안의 불행이다. 썸타는 설아와 남매가 돼야 하는 처지이니. 다시 윤지태의 불행을 비는 카드를 사용한 결과, 강미애는 좀비처럼 삶의 의욕을 잃고 만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다른 사람의 불행을 언급하거나 바라는 걸 많이 봤어요. 쉽게는 그냥 농담이지만 가다가 코나 깨져라,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기도 하고 진심으로 그 사람의 인생이 안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그때마다 생각했어요. 저렇게 바라면 본인들 마음 편하고 행복해지나? 그렇다고 그 사람이 진짜 불행해질까?"

전화로 만난 이은정은 "그동안 어두운 소설을 써와서 이 이야기도 어둡게 쓸 것 같았다"면서 "좀 밝고 건강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지니를 소환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정은 습작 시절부터 20년 넘게 글을 붙들고 살아왔고, 단편 '개들이 짖는 동안'으로 동서문학상(2018) 대상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 이래 다양한 폭력을 천착하는 소설을 써왔다. 첫 소설집 '완벽하게 헤어지는 방법'의 표제작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이 무대다. 이은정은 "어쩌다 보니 줄곧 폭력에 관한 소설을 써왔다"면서 "과연 세상의 모든 폭력을 다 쓸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 종류는 다양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불행을 겪게 되지만 어떤 불행은 삶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데, 마동안이 학교 앞 바바리맨의 불행을 빈 결과 그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이 상징적인 에피소드다. 어머니와 연인 관계인 설아 아빠의 불행을 빈 결과 자신이 행복해지기는커녕 죄의식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도, 행복과 불행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경우다.

▲이은정은 "다른 사람의 불행으로 인해 자신이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불행한 일"이라고 썼다. [이은정 제공]

"행복과 불행은 공존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불행이 왔을 때 너무 두려워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보통 행복을 지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행복이 뭔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한 글자 차이잖아요? 불안해하면서 사는 것보다 그냥 오는 대로 그 의미를 잘 바꿔가면서 내 마음에 유리한 쪽으로, 그렇게 받아들이며 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탈레반 지도자의 불행이나, 마동안의 절친 '왕부단'이 생모를 만날 수 있도록 불행을 이용하는 에피소드도 이어진다. 결국 지니에게 다섯 가지 불행의 소원을 다 빌어서 지니가 자유로워지도록 한 셈이지만, 정작 지니에게 그 소원을 빌지 않았어도 인생에는 인과율이 전혀 없는 우연과 필연들이 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지니라는 판타지 요소를 끌어들였지만 판타지가 현실 같고 현실은 판타지를 닮았으니, 기실 이은정이 추구해온 장르와 다르지 않다.

그는 "아이들은 좋으면 그냥 신나서 지금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지,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는 아이는 거의 본 적이 없다"면서 "어른들이야말로 이 소설을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안'이 자각하는 대목.

-어느 순간 경각심을 잃었을 때 벌어지는 일들과 뒤늦게 찾아오는 죄책감의 고통은 끔찍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은 한 사람의 인생만 바꾸는 게 아니었다. 행복이든 불행이든 오롯이 개인에게만 적용되는 줄 알았는데, 그런 것들은 봄바람이나 안개와 비슷했다. 주변 인물에게로 서서히 번지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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