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산불 성금, 권력 눈치 보기는 아니길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3-04-16 17:41:12

집권 여당 사무총장, 특정기업 겨냥해 공개 비난
기업 오너 비리까지 파헤치는 검찰 수사의 칼날
업계의 건전한 경쟁 위해서 법치주의 지켜져야
기업의 권력 눈치보기는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

강릉 산불로 큰 피해를 본 강원도 지역 복구와 이재민 지원을 위해 기업들이 잇따라 성금을 기탁하고 있다. 삼성그룹 30억, SK그룹과 현대차 그룹, 포스코가 각 20억, 롯데와 농협, 네이버, 카카오가 각 10억 원을 쾌척했다. 일요일인 16일에도 두산그룹 5억, 현대백화점 그룹이 3억 원을 기탁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인들도 성금 기탁에 나서는 마당에 기업이 재난을 당한 이웃을 돕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또 ESG 경영 차원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재계에서는 뭔가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경쟁 기업이 얼마나 냈는지, 자신들이 뒤늦은 것은 아닌지, 그래서 나중에 미운털이 박히는 것은 아닌지 신경쓰는 모양새다. 마치 권위주의 정부 시절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성금을 기탁하던 때의 기시감을 떨칠 수가 없다면 과한 반응일까?

▲ 검찰의 기업 비리 수사가 심상찮다. 여당 핵심 인사들의 입도 거칠어지고 있다. 재계엔 긴장감이 팽배하다. 산불 피해지역 돕기 성금도 눈치보며 내는 분위기다. 사진은 국회의사당과 검찰 깃발. [뉴시스·UPI뉴스 자료사진]

집권 여당 사무총장의 막말 "네이버,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이철규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을 내놨다. 네이버 쇼핑몰의 가짜 후기와 전자문서를 이용한 광고를 비판하면서 "간이 부어도 단단히 부었다"는 비난을 쏟아냈다. 

네이버를 편들자는 것이 아니다. 네이버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공정위를 포함한 규제 당국이 나서서 법대로 제재하면 된다. 또 법망을 교묘하게 피하는 것이 있으면 국회가 법을 만들어 우회로를 차단하면 된다. 공기업도 아닌 사기업에 대해서 그것도 공개된 자리에서 폭언에 가까운 발언을 내놓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다.

검찰, 고발 내용을 넘어 오너의 개인 비리까지 수사

최근 들어 기업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도 심상치 않다는 말이 재계에서 흘러나온다. 지난달 27일 구속기소 된 조현범 한국타이어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빌미가 됐다. 애초 공정위가 조 회장을 검찰에 고발한 내용은 한국타이어가 계열사인 한국프리시전웍스를 부당하게 지원해 회사에 131억 원의 손해를 입힌 부분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수사를 확대해 조 회장이 2017년 이후 회삿돈으로 자택의 가구와 외제차 등을 구입한 개인 비리까지 파헤쳤다.

지난달 28일 구속기소 된 김용빈 대우조선해양건설 회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수사를 담당한 남부지검 금융증권 범죄 합동 수사단도 당초 고발 내용보다 수사를 확대해 김 회장이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사용해 회삿돈 1억 원을 횡령한 내용까지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검찰의 이러한 수사 과정을 볼 때 앞으로 기업 비리가 드러나면 기업 자체, 법인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기업의 오너까지 수사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긴장하고 있다.

재계, 가구업계의 담합 수사·중대재해처벌법에 긴장

현재 수사가 예정돼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당장 불안한 기업들은 가구업체다. 공정위와 검찰은 작년 5월 공정거래법상 자진신고자 감면제도인 리니언시를 통해 가구업체의 담합 사실을 인지했다. 공정위는 현장조사를 벌였지만 특별한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그런데 검찰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범죄혐의를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지난 13일 공정위에 이 사건에 대한 고발을 요청했다. 

이 사건에는 한샘, 현대리바트, 에넥스 등 국내 주요가구업체들이 포함돼 있다. 2015년 이후 전국 400여 개 아파트 단지에 들어간 특판 가구로 담합 규모는 1조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 담합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담합이라는 어두운 거래를 뒷받침하는 비자금이나 횡령 등이 드러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

재계를 긴장시키는 것은 또 있다. 바로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현재 SK지오센트릭, 현대제철, 여천NCC, 쌍용 C&E 등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고 재판에 넘겨진 기업도 14곳에 달한다. 특히 양주 채석장 붕괴사고와 관련해 검찰은 지난달 31일 등기임원이 아닌 정도원 삼표 그룹 회장을 기소했다.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책임자 등을 따로 둬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했지만, 검찰은 경영 책임자의 범위에 그룹 회장을 포함시킨 것이다.

법대로, 법이 정한 만큼의 처벌이 원칙이 돼야

기업이 법을 어기면 처벌받는 것은 너무도 마땅한 일이다. 기업의 명백한 위법, 탈법은 끝까지 추적해 응징하는 것이 법의 정신이고 업계의 건전한 경쟁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법을 적용하는데도 원칙은 있어야 한다. 법에 정한 절차에 따라 법이 정한만큼의 처벌을 내리는 것이 법치주의다. 온갖 규제에 둘러싸인 기업들이 이제는 검찰의 수사를 걱정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면 우리 경제에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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