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2%를 위해 98%가 손해보라고?"…예금보호한도 상향 신중해야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3-03-24 16:53:08
SVB 파산 야기한 '뱅크런' 예방 목적
예금보호한도 초과 예금주 2%뿐
예금보험료 오르면 은행·이용자 모두 손해
여야가 예금보호한도 상향을 추진 중이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 등 의원 10명은 지난 20일 예금보호한도를 현행 5000만 원에서 1억 원으로 올리는 내용의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양기대 의원 등도 24일 같은 취지의 법안을 냈다.
목적은 '뱅크런'(은행 예금 대규모 인출) 예방이다. 요즘 글로벌 금융권을 뒤흔드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야기한 건 뱅크런이었다. 예금보호한도(25만 달러)를 넘는 예금이 약 90%에 달한 점이 핵심 원인으로 작용했다. SVB는 위험하다는 소문에 불안해진 예금자들이 앞다퉈 돈을 빼가면서 단숨에 쓰러졌다.
국내은행의 예금보호한도 초과 예금 비중도 작지는 않다. 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은행 개인예금 2884조 원 중 1504조 원(52.1%)이 5000만 원 초과 예금이다. 세계 최고 수준인 모바일뱅킹이 있기에 소비자들이 불안해할 경우 예금이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다.
예금보호한도가 과거 2000만 원에서 2001년 5000만 원으로 상향된 뒤 20년 넘게 묶여 있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국내은행과 SVB 등 미국 은행은 다르다. SVB는 예금의 절반 이상을 미국 국채에 투자해 급격한 금리 상승에 취약했다. 국내은행은 예금의 90% 이상을 대출에 투자하고 또 대부분이 변동금리대출이어서 금리 변화에 별로 취약하지 않다.
정부도 그 점을 들어 국내은행은 안전하다고 역설했다. 소비자들의 은행에 대한 신뢰 역시 탄탄해 아직 뱅크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금액 기준으로는 예금보호한도 초과 예금이 절반이 넘지만, 예금주 기준으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금융위원회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은행에서 5000만 원 초과 예금주는 2.2%에 불과했다. 나머지 97.8% 예금주의 예금은 5000만 원을 밑돈다.
지난해 예금보험료는 총 2조2089억 원(예보 집계)이었는데, 예금보호한도를 상향하면 이 금액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더 많은 예금보험료를 내게 된 은행이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올림으로써 예금보험료 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될 위험이 높다. 결국 2%의 고액 자산가를 위해 98% 서민이 손해 보는 셈이다.
이런 점을 잘 알기에 금융당국과 금융권은 예금보호한도 상향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은행 상황은 미국·유럽 은행과 다르다"며 예금보호한도 상향이 시급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행 제도로도 필요할 경우 언제든 예금보호한도 상향이 가능하다"며 굳이 법을 개정해야 할 필요성에는 의문을 표했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예금보호한도를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 입법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언제든 대통령령 개정으로 예금보호한도 상향이 가능하다.
1830년 7월 혁명을 통해 왕위에 오른 프랑스 왕 루이 필리프는 선거 제도를 개혁, 재산(토지)을 기준으로 단 25만 명에게만 선거권을 줬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 이후 모든 국민이 선거권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수를 전체 국민의 1% 미만으로 급감시킨 것이다.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을 경계한 조치였지만, 선거권을 잃은 대다수 하층민들의 분노를 샀다. 결국 루이 필리프는 2월 혁명(1848년)으로 쫓겨났다.
고대 로마 공화국의 군인이자 정치가인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내전에서 승리한 뒤 정치 체제를 철저한 귀족 중심의 연공서열제로 바꿨다. 귀족들 중에서도 만 40세 이상만 고위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규율했다.
술라는 연공서열제로 국정 안정화를 꾀했지만 평민과 젊은이들의 불만을 샀다. 술라 사후 그의 부하였던 두 젊은이,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가 앞장서서 연공서열제를 깨뜨렸다.
극소수만을 위하고 다수에게 손해를 입히는 정책은 언제나 실패하는 걸 역사가 증명한다. 여야는 예금보호한도 상향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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