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 테일러의 집 '딜쿠샤'에서 찾은 3·1운동의 의미

장한별 기자

star1@kpinews.kr | 2023-03-01 00:54:06

[인터뷰] 박지음 작가…'딜쿠샤' 배경으로 한 소설 펴내
"딜쿠샤에 독립운동 역사 기리려는 후손들 노력 담겨"
"UP통신원으로 3·1운동 전 세계 타전 사실 알려져야"
"독립운동 다각적 접근…역사공간 발굴 제도화 필요"

"앨버트 테일러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3·1운동이 전 세계로 알려지지 못했을 겁니다."

앨버트 테일러(Albert Taylor)는 1919년 당시 UP(United Press, 지금의 UPI)통신원으로 3·1운동 소식을 전 세계에 타전한 인물이다.

올해로 104주년을 맞은 3·1절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딜쿠샤(Dilkusha)'에서 UPI뉴스가 박지음 작가를 만났다. 박 작가는 최근 두 번째 소설집 '관계의 온도'를 펴냈다. 수록된 단편 '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의 주요 배경은 앨버트 테일러와 아내 메리 테일러(Mary Taylor)의 거처 딜쿠샤다. 왜 딜쿠샤였을까. 

▲ 박지음 작가가 지난달 28일 UPI뉴스와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딜쿠샤'와 420년 된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딜쿠샤는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다. 현재 서울 종로구 사직로2길 17에 있다. 

딜쿠샤는 1923년 짓기 시작해 1924년 완공됐다. 1926년 화재로 소실돼 1930년 재건되기도 했다. 테일러 부부는 조선총독부의 외국인추방령에 의해 1942년 5월 한국을 떠났고 딜쿠샤는 장기간 방치로 훼손됐다.

서울시는 2018년 딜쿠샤 복원 공사에 착수해 2020년 12월 공사를 완료했다. 2021년 2월 딜쿠샤가 정식 개관했다.

앨버트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적극 협조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UP통신원으로 독립선언문을 입수해 3·1운동을 해외에 알린 것은 물론 AP통신원으로 제암리 학살 사건 등 일제의 만행들을 기록했다.

그는 1919년 2월 고종의 장례식을 취재할 기자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UP통신원 자리에 지원, 명함을 받았다. 당시 아내 메리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출산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브루스는 2월 28일 태어났다. 앨버트는 막 출산한 아내와 아들을 보러 왔다가 침대 속 독립선언문을 발견한다. 메리는 앨버트가 '아들을 처음 만난 것보다 그 문서를 발견한 것에 더 흥분했다'고 회고했다.

그날 밤 앨버트는 동생 윌리엄을 시켜 독립선언문을 도쿄의 통신사로 전달한다. 윌리엄은 독립선언문을 구두 뒤축의 빈 공간에 숨겨 서울에서 도쿄까지 이동했다. 

미국 지역 언론들은 UP통신이 타전한 기사를 받아 3·1운동을 처음 소개했다. 실제 1919년 3월 10일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일간신문에는 '한국이 독립을 요구한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한국의 3·1운동과 독립 의지를 전한 기사였다. 기사의 바이라인은 'By United Press(UP통신)'로 적혀있다. 바이라인은 기사 작성자를 뜻한다.

▲1919년 3월 10일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치카샤 데일리 익스프레스' 신문에 실린 'UP통신'의 3·1운동 기사 [주성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원 제공]

같은 날 아이다호주의 '이브닝 캐피탈 뉴스', 인디애나주의 '사우스 벤드 뉴스 타임스' 등 다른 지역 언론들도 동일한 내용을 보도했다. AP통신을 인용해 1919년 3월 13일 관련 소식을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기사보다 사흘 빨랐다. 

그러나 일부 매체는 앨버트가 UP통신원이 아닌 AP통신원으로서 3·1운동 소식을 세계에 알렸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서경덕 교수가 삼일절을 맞아 지난달 28일 제작, 배포한 영상에서도 앨버트는 AP통신원으로만 소개돼 있다. 같은 설명이 박 작가 책에도 있다.

박 작가는 "앨버트가 UP통신원으로서 독립선언문을 알렸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며 "기사나 자료를 찾아보면 앨버트를 AP통신원으로 설명해 놓은 게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기회를 통해 앨버트가 UP통신원으로 3·1운동을 전했다는 정확한 사실이 알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딜쿠샤' 내부 1층 거실. 테일러 부부의 생활상을 담아 내부를 재현했다. [이상훈 선임기자] 

박 작가는 자신의 소설 속 '딜쿠샤'를 "누구나 돌아오고 싶은 공간, 제일 따뜻한 공간"으로 설정했다. 딜쿠샤로 상징되는, 자신이 진짜 원하는 공간을 찾아가는 게 소설의 골자라는 얘기다.

"독립을 열망했던 우리 민족의 역사, 그 안에 '딜쿠샤'가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딜쿠샤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다. 10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딜쿠샤 복원 등 역사를 기억하려는 후손들의 노력이 있었다."

딜쿠샤의 의미를 작가는 소설 속에서 복원 책임자의 목소리로도 전한다.

"딜쿠샤의 복원 사업이 중요한 이유는 앨버트 테일러의 업적 때문입니다. …독립선언문을 서양에 알린 일과 고종황제의 장례를 알린 일, 제암리 학살 사건을 보도한 일이 그가 우리나라에 해준 일이기 때문입니다.(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 

▲ 박지음 작가의 '너는 어디에서 살고 싶니'에는 벽난로가 주요 소재로 나온다. '딜쿠샤' 복원 과정에서 물건 대부분이 새 것으로 대체됐으나 이 벽난로는 100여 년 전의 벽돌로 만들어졌다. [이상훈 선임기자] 

딜쿠샤는 독립문역과 서대문역에서 도보로 찾아갈 수 있다. 주변에는 항일문화 유산인 경교장과 독립문, 서대문형무소가 있다. 박 작가는 딜쿠샤와 주변 유적지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높일 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독립운동을 조명할 때 다각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이 잠깐이라도 머물렀던 공간이 분명히 있을 거다. 예를 들어, 유관순 열사가 하룻밤이라도 머물렀던 공간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장소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역사적인 공간을 발견하고 세상에 드러내는 작업이 제도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

독립문역에서 딜쿠샤까지 걸어왔다는 그는 "거리도 하나의 공간이다. 딜쿠샤를 비롯해 독립운동과 관련한 주변 유적지들을 연결해 답사길로 부각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우리 후손들이 길을 걸으며 독립운동의 의미를 새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박 작가는 '나만의 기쁜 마음의 궁전'을 갖기 위해서는 함께하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거나 내가 구해주고 싶거나 돌봐주고 싶은 사람"이 공간을 완성한다는 거다. 

조상들이 지켜낸 공간인 이 땅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딜쿠샤와 주변 유적지를 나란히 걸어보는 것이 어떠한가. 3·1절을 맞아 우리가 자신만의 딜쿠샤, 기쁜 마음의 궁전을 짓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KPI뉴스 / 장한별·김명주 기자 star1@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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