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꿈이 와서 살고 있으면 서둘러라"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12-30 12:02:41

막상스 페르민 색채 3부작 완결편 '꿀벌 키우는 사람'
희고, 검고, 황금빛 세계를 받치는 꿈과 광기와 사랑
로망과 꽁트와 시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시소설' 형식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이 가장 중요"

-나는 꿈입니다. 나는 한 편의 꿈에서 왔어요. 그런데 이제 나는 그 꿈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어요.

▲시 같은 소설 형식으로 흰색, 검은색, 황금빛 '색채 3부작'을 완성해 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프랑스 작가 막상스 페르민. [난다 제공]

한 해가 저물고 다시 새로운 날들이 온다. 우리가 꾸었던 꿈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 꿈에는 얼마나 다가갔는가. 비록 실현 되지 못했더라도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면, 너무 아쉬워할 것 없다. 꿈조차 꾸지 못한 채 걸어온 길이 더 서글픈 것이다. 해가 저물고 새로 떠오를 해를 기다리는 이즈음, 우리는 어떤 꿈을 다시 꿀까.

세밑에 국내에 소개된 '꿀벌 키우는 사람'(임선기 옮김·난다)은 프랑스 작가 막상스 페르민이 집필한 '눈' '검은 바이올린'과 더불어 이른바 색채 3부작 중 마지막 매듭이다. 촘촘한 밀도의 소설이라기보다는 시에 가깝고, 시라고 하기에는 서사가 앞선다. 짧은 조각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어 '꽁트'라고 볼 수도 있다. 역자는 이를 통틀어 편의상 '시소설'이라고 명명하는데, 꿈과 광기와 탐미가 바탕이다.

오렐리앙 로슈페르는 꿀벌을 키우는 사람이다. 꿀을 수확해 큰 돈을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인생의 금'을 찾기 위해 탐미적인 마법의 순간을 동경한 까닭이다. 그에게 삶이란 신기한 금빛 꿀벌이다. '멀리에서 반짝거리고, 날아가고, 향기와 향기 사이에서 취하고, 채색 유리창에 부딪히고, 하늘의 광대함 속에서 자신만의 꽃에 들어 있는 꿀을 찾는 것이었다.'


오렐리앙이 꿀벌들에 대해 말할 때 그의 시선 속에는 알 수 없는 섬세한 빛, '광기의 작은 빛'이 반짝였다. 이 광기와 꿈은, 막상스 페르민의 색채 3부작을 공통으로 떠받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미친 열정, 광기가 수반돼야만 하는 것일까. 오렐리앙은 프로방스 들판의 꽃들을 모두 다 돌아다녀 가장 달콤한 꿀을 찾아낼 작정이었지만, 그의 호기심과 열정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공간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는 어딘가에 있을 더 황홀한 금빛을 찾아 아프리카 사막으로 떠난다.

-그날 밤, 오렐리앙은 사막 속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러면서 죽음의 순간에만 들 법한 생각을 했다. 삶이란 결국 한줄기 실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마시는 기쁨보다 갈증 해소의 욕구가 언제나 더 강력한 것임을 이해하는 날, 사는 기쁨보다 생존 욕구가 언제나 더 아름다운 것임을 이해하는 날과 같은 날들로 짜인 금실. 그는 결코 그 실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이러한 사유는 그의 출세작, 색채 3부작의 첫 작품 '눈'에서 이미 명징하게 드러낸 것이다. 하이쿠 하나 얻기 위해 눈속을 헤매는 '유코'는 '직선의 단 한 줄에 삶과 생명이 걸린' 곡예사였다. 유코의 스승은 '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가장 어려운 건 지상 위에 떠서, 언어의 줄 위에서, 필봉의 도움을 받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세. 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 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힌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막상스 페르민은 "'사랑'과 '예술'이야말로 삶의 섬세함이 나타나는 세계"라고 말한다. [난다 제공]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스승의 말은, 페르민이 3부작 내내 바탕에서 강조하는 대목이다. 꿀벌 키우는 사내 오렐리앙도 이 꿈을 안고 아프리카 사막을 헤매고 죽음의 고비를 넘기다 프로방스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고흐를 연상케 하는 화가가 선험적인 예지력으로 일찍이 모험을 떠날 때 그에게 그려주었던 여인의 초상을 발견한다.

오렐리앙은 지상의 '아피폴리스', 꿀벌들의 나라를 만들고 싶었다. 거대한 절벽을 만들고 그곳에 꿀벌들의 집을 촘촘히 심어서 꿀이 빛줄기처럼 흘러내리는, 그 꿀들이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듯 황금빛 오케스트라를 들려주는 황홀한 꿈을 꾸었다. 오렐리앙의 꿈을 이루어졌을까. 그가 찾아헤맨 금은 그곳에 있었을까.

색채 3부작을 완역한 역자 임선기는 "마치 말라르메가 시를 음악과 문학 사이에 정위치시켰 듯, 페르민은 자신의 글쓰기를 로망과 콩트, 그리고 시 사이 어딘가에 위치시킨다"면서 "페르민의 색채 3부작이 윤회하는 세 가지 바퀴라면, 그 작품들은 모두 꿈"이라고 말한다.

눈 속 크레바스에 갇혀 젊은 채 죽어 있는 아름다운 여인, 오래 그리워한 그 여인 곁에 누워 죽음을 청하는 늙은 남자. 꿈속이 아니면 그려내기 어려운 사랑이다. 자신의 영혼을 바이올린에 담아 아름다운 여인과 합일되는 꿈도 마찬가지다. 황금빛 꿀이 나신에 흘러내리는 여인과 꿈을 꾸는 마지막 작품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하룻밤을 보내고 사라진 황금빛 여인의 행방을 찾아 사막의 왕과 나누는 오렐리앙의 대화.
▲막상스 페르민 '색채 3부작' 외서 표지. 왼쪽부터 '눈' '검은 바이올린' '꿀벌 키우는 사람'.

-그녀는 지금 어디 있나요?
-아무도 모른다. 그 부족은 일 년 내내 찾을 수 없다. 오직 한 번, 매년 같은 날에, 꿀을 따러 절벽에 간다. 그리고 사라진다."
-그렇다면 절벽으로 돌아가야겠군요."
-안 된다. 금색 피부를 가진 여인은 자신의 정인들과 오직 하룻밤만 같이 지내기 때문이다. 하룻밤 이상을 지내는 건 자신의 사형선고에 동의하는 것이다.

그가 방황 끝에 프로방스로 돌아가는 길, 영국 영사는 가장 대담한 탐험가들조차 목숨 걸고 들어가는 적대적인 지역에서 살아돌아온 그에 말한다.

-당신이 처음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갑니다. 그 절대를 찾는 여행자들, 그 금을 찾는 사람들은 실은 살아야 할 이유를 찾고 있는 거지요. 그들은 척 보면 식별할 수 있어요. 그들은 전보다 더 빈손으로 돌아옵니다. 헛된 생각마저 사라졌으니까요.

▲다시 한 해가 저물고 새날을 기다린다. 막상스 페르민은 "꿈을 서둘러 실현하지 않으면 현실이 꿈을 앗아간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사람들, 그들은 단순히 권태로운 존재들일까. 기실 각박한 현실에서 숨돌릴 틈 없이 살아가는 이들도, 명백히 살아야 할 이유를 붙들고 있다고 볼 수만은 없을 터이다. 그 이유를 젊은 시절에는 보다 명확하게 갈구하겠지만 관성에 익숙해지는 늙어갈 무렵이면 무의미한 쳇바퀴만 돌리다 병고에 시달리며 이승을 떠나기 십상이다.

프로방스 지방 '랑그라드'에서 꿀벌을 키우다 멀리 방황한 사내 오렐리앙. 그는 그 여행에서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운 모든 것에 대해 관심 있는 기술자' 이폴리트 루아죌을 만나 새로운 벌들의 나라를 세울 것을 꿈꾼다. 이폴리트가 오렐리앙과 헤어지면서 다짐하는 약속. 다시 올 아침, 기적처럼 다시 꿈이 찾아 든다면 서두를 일이다. 

-내가 랑글라드로 갈게. 최대한 빨리. 너처럼 꿈이 와서 살고 있으면 서둘러서 꿈을 실현해야 해. 아니면 현실이 꿈을 앗아갈 거야.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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