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기업 퇴직임원 관리, 국가 경쟁력의 문제다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2-12-27 13:46:25

퇴임 임원, 회사의 기술·비밀에 접근한 인물
'관리의 삼성'조차 퇴임 임원 공격으로 '곤욕'
반도체 퇴직 인력 연 1500여명, 관리 시급

국내 5대 그룹을 포함한 대기업들의 연말 인사가 마무리됐다. 인사철이면 으레 임원 승진자 명단이 발표되고 이들에 대한 축하로 떠들썩하다. 그러나 그 뒷면에는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퇴직하는 쓸쓸한 퇴장도 있기 마련이다. 

기업들은 누가 퇴직하는지, 퇴직 임원은 얼마나 되는지는 발표하지 않는다. 탓할 일은 아니다. 퇴임하는 입장에서도 자랑스러운 것도 아닌데 알려지는 게 달가울 리 없다. 그래서 매년 퇴임하는 임원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년 전 한 민간연구소가 조사한 것을 보면 신규로 승진하는 인원에 버금가는 만큼의 숫자가 기존 임원에서 탈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거나 경제 상황이 좋을 때는 전체 임원 숫자가 늘어나지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신규 승진 임원보다 퇴임하는 임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올해는 신규 승진해 축하를 받는 임원보다 짐을 싸서 직장을 떠나는 임원이 더 많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뉴시스]

비정한 퇴직 통보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 임원이 될 확률은 올해 기준으로 0.83%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의 0.76%보다는 다소 높아졌지만, 여전히 100대1 이상의 경쟁을 이겨내야 하는 직장인의 '별'임에 틀림없다. 

대부분 기업에서 임원의 시작은 화려하지만, 마지막은 쓸쓸하기 마련이다. 퇴직 풍경은 비정하기 짝이 없다. 퇴직 통보는 보통 하루 전에 이뤄진다. 그것도 휴일 전날, 금요일에 통보해서 토요일, 일요일에 짐을 싸서 직장을 떠나게 한다. 직원들과 마주쳐서 회사 분위기에 좋을 일이 없고 후임 임원이 출근해서 바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는 배려(?)가 깔려있다.

그렇다고 퇴임 임원에 대해 기업이 비정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기업 대부분은 퇴임 임원에 대해 현직 때 받던 급여의 50%에서 최대 80%까지 2년 동안 주고 공동 사무실도 제공한다. 물론 출근이 전제 조건도 아니다. 또 일부 기업은 퇴임 임원들의 모임을 만들어 퇴임 이후에도 회사에 대한 연대의식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배려는 그동안 노고에 대한 감사이거나 예우 차원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퇴임 임원, 회사의 비밀을 알고 있다

IMF를 겪으면서 사라진 그룹이지만 임원 인사 시절이면 재계에 회자하는 재벌그룹이 있었다. 이 그룹은 2세 승계 과정에서 아버지에 이어 총수로 등극한 2세가 아버지를 보필하던 충직한 임원을 해고했다. 느닷없이 해고당한 그 임원은 여러 차례 새 회장을 만나려 했지만, 번번이 거부당했다. 그러자 서류 봉투 하나를 비서실에 맡겨 놓고 나왔는데 그 봉투 안에는 비자금과 관련한 비밀이 담겨 있었고 2세 회장은 당시 돈으로 수십억 원을 주고 무마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 얘기는 검증되지도 않았고 사실이라 하더라도 다소 과장됐을 수도 있겠지만 기업에서 임원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많은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 우리 재계가 과거처럼 비자금이나 비리가 많지는 않겠지만 기업이 숨기고 싶은 약점은 있을 테고 또 그 비밀을 아는 임원을 끝까지 함께 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3세, 4세 승계가 본격화되는 시점에서는 그런 돌발 사태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퇴임 임원의 공격으로 곤욕 치른 삼성전자

올해 초에는 삼성전자의 퇴임 임원이 회사를 공격하면서 삼성뿐 아니라 재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삼성전자에서 10여 년간 특허 분야 수장을 맡았던 전임 부사장이 회사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이 일을 두고 재계에서는 10년간 몸담았던 회사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의견과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겠느냐는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삼성은 '관리의 삼성'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퇴임 임원에 대한 예우가 좋기로 소문나 있다. 그러나 반대로 문제가 많은 기업으로도 꼽힌다. 2007년에는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이 퇴사 후 비자금을 폭로해 문제를 일으켰고 2020년에는 40년 삼성맨인 장원기 전 삼성전자 사장이 중국의 반도체 업체로 이직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반도체 전문인력 매년 1500명 퇴직…퇴직후 관리가 중요

퇴임 임직원 관리는 단순히 개별 회사 차원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주요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체에서 매년 퇴직하는 임원 등 전문 인력은 15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금까지 주로 중국 기업들의 스카웃 대상이 됐다. 연봉의 3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하고 주택과 자녀 학자금까지 얹어주면서 무더기로 데려갔다. 우리나라 LCD가 중국에 무너진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이제는 중국뿐 아니라 미국, EU까지 우리나라 반도체 인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회에서 여당의 반도체 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향자 의원은 최근 세미나에서 미국의 마이크론이 어떻게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보다 빨리 232단 낸드플래시 양산에 성공할 수 있었겠느냐며 인력 유출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했다.

퇴직자를 돈으로 관리하려면 더 큰돈을 주는 또 다른 유혹을 이겨낼 수 없다. 기업들은 헤어질 때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퇴직 임원 관리는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도 나서야 한다. 우리가 조금 앞섰다는 반도체는 물론이고 배터리, 수소 모두 인력 유출이 발생하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3세 4세 승계를 앞두고 있거나 시작한 기업들은 퇴직 임원 관리에 진정성을 보여야 할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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