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10대 그룹 '1000조 투자 계획은 결국 쇼였나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2-12-25 15:13:48

반년 전 1000조 투자계획은 새 정부에 보낸 립서비스?
직원 호응 못 받는 비상경영 계획…임원 혜택 되레 늘려
정부 지원 절실한데…아쉬운 법인세·설비투자 세액공제

2023년, 새해 기업들의 최대 화두로 비상, 긴축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 이어지는 데다가 국제 경제 환경이 더욱 악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삼성은 프린트 용지까지 아끼라는 말을 하고 LG는 이름도 거창한 '워룸(War room:전시상황실)'의 가동을 본격화했다고 한다. 대부분 기업은 투자계획을 축소하거나 미루고 신규채용도 꺼리는 분위기다.

반년 전 호기롭던 투자계획은 새 정부에 던진 추파

기업은 경제 상황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 지금처럼 국내 자금시장,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고 국제 경제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면 예상했던 계획을 바꾸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불과 반년 전 기업들이 호기롭게 쏟아냈던 5년짜리 투자계획을 떠올리면, 역시 새 정부에 던진 추파에 불과했다는 의심이 사실로 증명된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지난 5월 각 그룹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쏟아낸 투자계획은 10대 그룹만 뭉뚱그려도 5년 동안 무려 1000조 원에 달했다. 또 채용계획은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다. 10대 그룹의 현재 임직원이 100만 명 수준인데 40만 명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다소 현실성은 떨어지지만 잘 해보자는 의욕으로 받아들였던 게 사실이다. 또 그때와 비교해 상황이 더 나빠졌다는 변명도 수긍이 가는 점이 있다.

▲ 국제 경제 환경이 더욱 악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대부분 기업은 투자계획을 축소하거나 미루고 신규채용도 꺼리는 분위기다. [UPI뉴스 자료사진]

지난 5월 이미 세계 경제의 비관론이 제기된 시기

그러나 세계적 기업의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 10대 그룹의 경제 예측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인가? 기업들이 투자계획을 떠벌였던 5월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이 3개월을 넘기면서 장기전의 조짐이 확실했고, 미국도 빅스텝( 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이후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일부에서는 깊고도 긴 침체가 올 것이라는 비관론이 쏟아져 나온 시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앞뒤 가리지 않고 투자계획, 고용계획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래놓고 불과 반년 남짓 만에, 발표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비상을 내세우고 긴축을 강조하면서 투자계획 철회와 축소를 선언하고 있다. 지금이 위기라고 떠드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앞뒤 가리지 않고 새 정부 입맛 맞추기에 나섰던 행태가 얄미운 것이다. 이러니 기업들의 투자계획을 믿을 수가 있겠느냐는 회의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평소 경영 자세를 의심케 하는 비상경영

삼성전자의 비상 경영 계획을 보면 갸우뚱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프린터 용지를 비롯한 소모품비를 50% 줄이고 해외 출장도 50% 축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불필요한 해외 출장도 많았고 프린트 용지도 헤프게 사용했다는 것인가. 직원들에게 위기의식을 불어넣는다는 의도는 이해되지만, 한국 1위 기업으로는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내년도 임금 교섭에 들어간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이재용 회장이 BMW 올리버 집세 회장을 만난 이후 한 대에 2억 원에 달하는 BMW 뉴 i7을 10대나 구입해 임원들에게 제공하기로 한 점에 대해 노조가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프린터 용지까지 아끼라고 하고 성과급도 줄이면서 임원들에게 이러한 혜택을 주는 것이 과연 비상체제냐고 따지고 나선 것이다.

직원들에게는 비상경영, 정작 총수는 더 많은 연봉

계열사를 부당지원하고 그 돈의 일부를 배당으로 챙긴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한국타이어 그룹의 조현범 회장은 비상경영을 내세우지만, 본인은 정작 작년보다 많은 연봉을 챙긴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타이어 그룹은 비상경영을 내세우며 임원들의 급여를 20% 반납하기로 했다. 그런데 조현범 회장은 올해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의 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연봉이 크게 올라 20%를 반납해도 작년보다 20% 이상 더 많은 연봉을 챙기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올해부터는 계열사인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로부터도 급여를 받고 있다. 적어도 조현범 회장의 연봉만 놓고 보면 비상, 긴축이 아닌 어느 때보다 넉넉한 시절을 보내고 있다. 

공격적 경영이 필요하고, 정부 지원도 절실

우리 기업들의 긴축 경영과는 달리 인텔과 TSMC는 오히려 공격 경영에 나서고 있다. TSMC는 지난 6일 애리조나주에서 가진 공장 기공식에서 설비투자금액을 당초 120억 달러에서 400억 달러로 3배 이상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인텔 역시 최근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생산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투자는 줄이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들이 이렇게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수 있는 것은 반도체 공급망을 재건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기 국회에서 법인세율이 불과 1%포인트 인하되고 반도체 등의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폭이 8%에 머문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위기 때마다 적극적인 투자와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를 탈출하고 새로운 도약을 이뤄낸 경험이 있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정치권, 기업은 머리를 맞대고 위기 탈출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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