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반도체 참회록의 원년이 될 2022년

김기성

bigpen@kpinews.kr | 2022-12-24 21:29:24

야당안에도 미치지 못한 투자세액 공제 폭
따로 노는 당정, 조정기능 포기한 대통령실
미국, 중국, 대만은 뛰는데 한국은 기는 꼴

국회가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K칩스법'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반쪽짜리, 용두사미라는 표현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핵심인 세액공제 폭이 여당이 추진했던 안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심지어 야당 안 보다도 후퇴한 내용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반도체 기업의 시설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현재 대기업 6%, 중견기업 8%, 중소기업 16%로 돼 있다. 여당은 반도체특위까지 구성해 산업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대기업은 20%, 중견기업은 25%, 중소기업은 30%씩 세액을 공제해 주는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초부자 감세를 이유로 내세우며 10%, 15%, 30%를 주장해 왔다.

그런데 막상 통과된 법안에는 대기업에 대해서만 세액공제 폭을 6%에서 8%로 높이고 중견, 중소기업은 그대로 두는 내용으로 돼 있다.

▲ 반도체와 배터리 등 국가 첨단전략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K칩스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당초안에서 대폭 후퇴해 용두사미 꼴이다. 미국,중국, 대만은 뛰는데 한국은 기어가는 형국이다. [UPI뉴스]

여야 정쟁과 당정 엇박자로 축소된 K칩스법
 

이런 알맹이 없는 허깨비 지원법안이 통과된 이유가 더 기가 찬다. 여야가 정쟁으로 4개월을 표류한 끝에 세액공제 폭이 확대되면 법인 세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이 받아들여졌다는 설명이다.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어리둥절한 변명이다.

⓵ 법인세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오락가락 해석

기획재정부는 여당안대로 20% 세액공제를 해주면 법인세 세수가 2조7천억 원가량 줄어든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놓치기 싫어 미래의 큰 이익을 포기하는 소탐대실의 전형이다. 세액공제 확대로 반도체 산업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 성장한다면 세수가 오히려 늘어난다는 경제 논리를 기재부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1%포인트 인하로 결론이 난 법인세율과 관련해서 기재부는 3%포인트 인하를 주장했다. 당시 내세웠던 논리가 법인세를 인하해야 투자가 살아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반도체 투자에 대해서는 세수 부족을 걱정한다니 한 입으로 두말하는 꼴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⓶ 당정이 따로 노는데, 대통령실은 뭐했나 

윤석열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도체 산업 지원 입장을 밝혔다. "반도체는 국가 안보자산이자 산업의 핵심"이라고 밝혔고 국제 경쟁에 나서는 기업에게 "운동복도 신발도 좋은 걸 신겨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총리실 산하에 국가 첨단산업위원회를 구성했고 여당은 반도체특별위원회를 설치하는 부산을 떨었다.

그러나 막상 여당안은커녕 야당의 주장에도 못 미치는 K칩스법이 통과돼도 속 시원한 설명이 없다. 기재부의 입장이 대통령의 정책 기조와 어긋나거나 여당과 불협화음을 빚으면 나서야 하는 곳은 대통령실이다. 각 부처의 정책을 총괄적으로 조율하는 역할이 대통령실에 있기 때문이다. 과연 대통령실의 정책 조정 기능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발 묶고 뛰어야 하는 한국 반도체 기업

코로나 사태를 겪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반도체는 돈이 있으면 살 수 있는 단순한 제조품이 아니다. 반도체가 없으면 산업이 마비되고 군사 장비가 작동을 멈추게 된다. 돈을 벌어들이는 수많은 수출품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전략 품목인 것이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 2800억 달러를 지원하고 자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중국은 국가의 사활을 반도체에 걸고 있는 모습이다. 앞으로 5년 동안 무려 186조 원을 지원하고 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율은 100%에 달한다. 반도체 파운드리 산업을 놓고 우리와 경쟁 중인 대만 역시 연구개발(R&D) 설비투자 세액공제율을 15%에서 25%로 높이기로 했다.

쉽게 말해 삼성전자가 10조 원을 들여 공장을 지으면 국내에서는 세금에서 빼주는 금액이 8천억 원이지만 미국에서는 2조5천억 원을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외국 반도체 기업의 한국 투자를 기대하기는 언감생심이고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탈(脫)한국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 실기(失期)하는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적시에 대규모 투자로 기술을 발전시키고 생산 능력을 확충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산업이다. 타이밍을 놓쳐 한번 뒤처지기 시작하면 따라잡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은 일본의 반도체 역사를 봐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의 우위를 지켜야 하고 파운드리 부문에서는 대만을 추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반도체 산업 기반을 확대해야 하고 이를 위해 기업과 정부, 국회 그리고 학계와 연구기관이 한 몸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국회를 통과한 K칩스법을 보면 이런 기대가 허망하다는 느낌이다. 언젠가 우리 반도체 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된다면 2022년은 반도체 참회록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 같다는 암울한 생각이 든다.

KPI뉴스 / 김기성 대기자 bigpen@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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