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가해'와 싸우는 이태원 참사 유족들 "세상 참 잔인하네요"

송창섭

realsong@kpinews.kr | 2022-12-19 16:53:02

10·29 이태원 참사 유족 인터뷰② 정아량 씨 모친 남지민 씨
미성년 아들 생존자에게 무리하게 사실관계 확인 요구
소방당국·경찰 당국 신원 확인 혼란 계속돼
소방·경찰 사망자 신원 소통 여전히 안돼

10·26 이태원 참사 49재 추모제가 열린 지난 16일. 남지민 씨는 부산발 고속버스가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서둘러 택시를 잡아탔다. 금요일 오후 상행선에 차가 몰리면서 도착 예정시간(5시)을 훌쩍 넘겼다.

오후 6시 10분경 해밀톤호텔 옆 참사 현장에서 그는 멈춰섰다. 추모 메모로 가득한 그 곳을 차마 쳐다볼 수 없었다. 그 좁고 차가운 바닥에서 딸이 숨을 거뒀다. "이렇게 좁은 곳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도대체 경찰은 뭘 한 건가." 함께 올라온 언니 남지연 씨가 허망한 눈으로 혼잣말을 했다.

맏딸 정아량 씨가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지 두 달이 다 되어 가지만 남 씨는 온전한 추모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있다. 유족 가슴을 후벼파는 무도한 정부,세상의 편견과 맞서야 했기 때문이다. 

▲ 생전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고(故) 정아량 씨 [남지민 씨 제공]

추모제 이틀 전 현장에서 사고당한 아들 병원치료에 하루를 다 보내고, 하루 전인 15일에는 경남 창원시를 찾았다.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의원 망언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김 의원은 최근 자신의 SNS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향해 '나라구하다 죽었냐' '시체 팔이 족속들' 등 막말을 쏟아냈다.

"소식을 듣고 너무 분해 그냥 있을 수 없었어요. 정치인을 떠나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는지…"

남 씨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은 멋진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모두 다 아량 씨 작품이다. 생전 그녀는 서양화가를 꿈꿨다. 대학(경성대 미대) 졸업 후 프랑스 유학을 준비할 정도였다. 코로나19 만 아니라면 아량 씨는 지금쯤 프랑스에서 캔버스 위에서 자기 꿈을 이뤄가고 있었을 터다.

▲고 정아량 씨 작품 [남지민 씨 제공]

"계획했던 유학이 힘들어지니 애가 서울 가서 새로운 직업을 찾아보겠다고 했어요. 서울 집도 모았던 유학자금을 털어서 스스로 마련한 것이지요. 그렇게 1년간 국비 지원을 받아가며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웠어요. 짧은 시간에 유명 온라인 쇼핑몰에서 실력을 인정받을 정도로 열심이었지요."

남 씨에게 아량 씨는 순수한 딸이었다. 여느 젊은 여성들과 달리 화장에도 관심이 없었다. 술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평소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했다. 그날 이태원을 찾은 것도 15살 어린 막내 동생이 서울에 놀러와 "핼러윈 축제를 보고 싶다"고 해서 였다.

해밀톤호텔 근처에서 동생과 저녁 식사를 하고 현장을 지나가던 중 아량 씨는 인파에 휩쓸려 참사현장으로 떠밀려갔다. 동생은 가까스로 구조돼 목숨은 건졌지만 아량 씨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남 씨가 딸의 사망과 시신을 확인한 것은 참사 이튿날 오후 4시30분. 딸의 싸늘한 주검은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에 안치돼 있었다. "지금도 소방본부에 연락해 '어떤 이유로 우리 딸이 여기로 왔는지를 물으면 경찰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지 않아 잘 모르겠다'는 답만 합니다. 소방당국 자료에 여전히 우리 아량이는 '사망 미상'으로 처리돼 있지요."

동생은 자신 때문에 큰 누나가 세상을 떠났다는 죄책감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수능시험도 포기했다. 가족 외에 그 누구와도 만나지 않는다. '그냥 저녁만 먹고 누나 집으로 돌아왔다면…' 동생은 매일매일 후회 속에 살아간다.

▲ 맞딸 아량 씨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남지민(오른쪽) 씨 [남지민 씨 제공]

남 씨는 사고 현장에서 살아온 아들이 걱정이다.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존자에게 정부 당국은 무심하고 모질기만 하다. 최근 아들에게 서울경찰청 특수본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고정황을 듣고 싶으니 통화가 가능하냐"고. 아들은 당시 상황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 거부했다. 그랬더니 경찰은 본인 동의도 구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부산 해운대경찰서로 사건 조사를 넘겼다. 

"뻔히 개인정보를 보면 미성년자라고 나올 텐데, 최소한 부모에게 연락해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다짜고짜 상처가 심한 애한테 전화를 걸어 고압적으로 말하는 게 말이 됩니까. 총리라는 사람이 기자간담회에 나와 부상자들이 마음을 굳건히 먹어야 한다는 말이나 하니, 경찰이 이렇게 오만한 짓을 하는 겁니다. 정부는 아직도 피해자나 유가족 마음을 헤아릴 줄 모릅니다." 남 씨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렸다.

부상자 치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남 씨는 "치료를 받으려 병원에 가면 '우린 공단으로부터 그런 부상자 치료 지침을 듣지 못했다'며 치료비 대납을 거절하기 일쑤"라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건강관리보험공단과 부산 해운대구청 담당자를 상대로 매번 큰 소리를 낸다.

▲지난 16일 시민추모제 현장 스크린에 정아량 씨의 어머니 남지민 씨의 추모글이 소개되고 있다. [송창섭 기자] 

12월16일 시민추모제 현장 스크린에는 사망자별로 유가족들의 애절한 편지가 소개됐다. 잠시 후 딸을 떠나보내는 남 씨의 글이 소개됐다.

"너의 꿈도 제대로 피우지도 못하게 한 이 땅의 삶을 미련 없이 버리고 천국에서 평온하게 웃고만 살길 기도할게. 근데 지금 너무너무 보고 싶다. 내 사랑스런 딸 아량아~~~"

아량 씨 사진과 함께 자신의 추모 글이 대형 스크린에 나오자 남 씨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KPI뉴스 / 송창섭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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