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모든 사람 가슴에는 아름다운 그것이 있습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12-16 09:33:28

새 장편 '원청' 한국판 펴내고 방한한 중국 작가 위화
정확하게 찾을 수는 없어도 서로 공명하는 그 무엇
존재하지만 우리 눈앞에 나타지 않는 '원청' 같은 것
청나라 말기 무정부 혼란 상태 인물들이 겪어낸 삶
"'인생' '형제' '제7일' 이어 중국 현대사 100년 완성"

청나라 말기, 군벌들이 나뉘어 싸우고 토비들이 창궐해 무자비한 약탈과 무참한 살육이 휩쓸던 시절, 어린 딸에게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사라진 여자를 찾아 유랑한 남자가 있다. 중국 대표작가 중 하나인 위화(余華·62)가 장편소설 '원청_잃어버린 도시'(문현선 옮김·푸른숲) 에서 그려낸 '린샹푸'라는 인물이 그 사내이다.

▲청나라 말 무정부 상태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새 장편 '원청'을 펴낸 위화. [푸른숲 제공]

황허 북쪽 부유한 집안의 남자였던 그에게 남매라는 남녀가 찾아들었다가 여자는 남고 남자만 떠난 뒤, 그 여자 '샤오메이'와 정이 든 린샹푸는 신바람이 났지만 그녀는 두 계절을 함께 지낸 뒤 금덩이를 훔쳐 사라지고 만다. 상실감을 겨우 달래던 터에 그 여자가 뱃속에 아이를 품고 나타나 용서를 청하자, 린샹푸는 그녀를 받아들여 딸을 얻는다. 그 딸이 나온 지 한달 만에 그 여자는 다시 사라진다. 이번에는 작심한 린샹푸, 아이 울음소리 들리는 집을 찾아 무작정 엽전 한 냥 내밀고 딸의 젖을 청해가며 '원청'을 향해 물어물어 떠난다. 양쯔강을 건넌 뒤에도 600여 리를 더 가야 한다는 강남 물의 고장, 그 먼 남쪽 도시에 무사히 당도해 여자를 찾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원청이 있다'는 말은 중국 독자가 했던 말인데,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굉장히 아름답지만 표현할 수 없는,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인생에 항상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그런 것이죠. 그것을 이 소설에서는 '원청'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 장편 출간을 계기로 방한한 위화는 15일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최한 '교보 인문학석강' 자리에서 '원청'이란 누구의 가슴 속에나 깃든, 아름답지만 구체적으로 그 존재를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이라고 했다. 눈이 내리는 날 서울을 찾은 위화는 자신의 소설에서 린샹푸가 폭설이 내릴 때 딸을 안고 원청을 찾는 장면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이 겪어왔던 한 세기의 이야기들을 모두 담고 싶었는데, 한 편의 소설에서 이것을 다 담을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편의 소설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 거죠. 하지만 저는 여전히 제 생애에 반드시 한 세기를 담은 소설을 쓰고 싶은 구상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에서 출간된 이래 150만 부가 팔렸고, 해외 20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는 '원청'을 두고 중국 출판사는 "'인생'을 썼던 위화가 돌아왔다!"고 홍보했다고 전했다. 문화혁명기 이전을 다룬 '인생'에 이어 '형제', '제7일'과 함께 현대 중국의 뿌리라 할 청나라 말기 무정부 상태가 배경인 '원청'까지 4부작으로 묶어, 이 네 작품을 보면 중국을 이해할 수 있다고 내세우고 있다고 했다. 1992년 집필한 '인생'은 중국에서만 2000만 부 넘게 팔렸다. e북과 해적판까지 합치면 1억명 이상이 이 작품을 본 셈이다.

"처음에 '인생'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3인칭 시점으로 썼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써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푸구이 같은 사람을 묘사한다는 건, 그 사람의 생활이 괴로움밖에 없는 것처럼 보여서 계속 쓰기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1인칭 시점으로 바꾸고 나서 아주 순조롭게 이 소설을 다 쓸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대통령을 보면 굉장히 위풍당당해 보이는데요,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가 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도 그 사람들의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을 겁니다."

▲15일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인문학석강에서 열강하는 위화. [대산문화재단 제공]

'원청'은 1998년부터 쓰기 시작해 그 과정이 힘들었다고 했다.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쳤고, 소설 속 다양한 묘사들에 공을 들여 써야만 했는데, 문학 작품 안의 논리성과 합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일찍이 젊은 시절 '전기(傳奇)소설'을 쓰고 싶다는 원을 세웠다고 했다.

"전기소설은 옛날 이야기를 풀어가기가 좋죠. 신해혁명 전후를 쓰기에 적합합니다. 신해혁명은 중국에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중국에서 나라라고 하는 것이 세워진 이래 신해혁명에 와서야 황제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황제의 통치가 완전히 사라지면서 그 당시엔 굉장한 혼란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북양군과 국민혁명군이 내전을 일으켰고, 토비들도 날뛰는 완전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이 시기 역사가 오늘의 중국에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배경으로 꼭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비로소 한 세기 100년의 중국이 완성됐습니다."

'원청'은 아이를 낳고 사라져버린 '샤오메이'를 찾아가는 '린샹푸'의 이야기를 축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실제 속살을 채우는 건 이 혼란기를 관통하는 많은 사람들의 고난과 죽음과 사랑과 연민이다. 농사를 지으면 토비한테 약탈당하거나 죽고, 토비가 되면 약탈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난세가 무간지옥처럼 펼쳐지는 한편으로는 가슴에 그리운 것을 품고 눈 속에서 죽어가는 가슴 아픈 풍경이 있다. 그동안 남성 중심 소설을 써 온 위화는 이번 소설에서 각별히 공을 들인 여성 '샤오메이'가 가장 애틋하다고 했다.

▲남성 중심 소설들을 써 온 위화는 '원청'에서 여성의 시각을 중심에 놓고 2부를 썼다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일본판 서문에 샤오메이는 이 소설의 심장이고 다른 인물들은 호흡이라고 썼습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쓴 2부에서는 샤오메이 속으로 들어가서,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시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샤오메이는 제 작품들에 없었던 여성의 모습입니다. 새로운 문학적 이미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수정을 했습니다. 매번 수정 후 와이프에게 보여주면 불허하면서 아직 당신은 샤오메이를 사랑하지 않았어,라고 하더라고요. 계속 수정을 하다가 마지막 원고를 쓰면서는 진짜 샤오메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와이프에게 보여주지 않고 그냥 출판사에 넘긴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샤오메이는 가난한 농부의 딸로 살다가 열 살 때 민며느리로 도시의 바느질 집에 들어가 그 집 아들과 혼인을 묵약한 처지로 살아간다. 그 아들 '아창'은 무기력한 캐릭터로, 샤오메이가 친정으로 쫓겨가자 모처럼 용기를 내어 집안 재물을 훔쳐 그녀를 이끌고 북행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자 남매인 척 린샹푸 집에 기숙한다. 둘러댄 가상의 그들 고향이 '원청'이거니와, 린샹푸가 그들이 사는 '시진'에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화들짝 놀라 도망갈 궁리를 하다가 린샹푸가 떠났다는 전갈에 아창은 안도한다.

-점점 멀리 갈 거야. 원청을 찾아갈 테니까. 원청이 어디 있는데?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 뜬구름 같은 원청은 샤오메이에게 이미 아픔이 되었다. 원청은 린샹푸와 딸의 끝없는 유랑과 방황을 의미했다.

▲위화는 "아름다운 것들은 구체적으로 찾지 못해도 서로 공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푸른숲 제공]

100여 집의 젖을 먹었다 해서 붙인 딸의 이름은 린바이자(林百家). 이 딸에게 젖을 얻어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에 찾아간 집의 큰아들 천야오우는 그 때 두 살이었다. 이들이 오누이처럼 성장해, 토비에게 인질로 끌려간 린바이자 대신 잡혀가 귀를 잘리기까지 하는 청년은 애틋하다. 그들의 사랑도 린샹푸와 샤오메이의 행로처럼 아프다. 몸을 팔아 남편의 아편 값을 대는 여자 추이핑, 그녀에게 의지하며 죽음을 예감하는 길을 앞두고 편지를 건네는 린샹푸, 상인회 회장 구이민을 비롯해 장도끼와 스님 일파의 잔혹한 토비들이 전개하는 '무정부' 중국의 혼돈기 삶이 중국판 '백년의 고독'처럼 유장하게 흘러간다.

'색도 냄새도 없는 새벽바람처럼 깨끗한 숨결'을 지닌 '금싸라기 같은 눈빛'의 샤오메이와 '북쪽 대지처럼 강인한 데다 선량하고 생기발랄하며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 린샹푸는 백가(百家)의 젖을 얻어 먹인 딸과 함께 결국 해후했을까. 587쪽에 이르는 분량이지만 속도감 있게 읽히는 이 서사의 끝은 직접 확인할 일이지만, 위화가 붙인 한국판 서문은 미리 읽어도 좋을 듯하다.

-책에 몰입했다가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인 부분에 이르렀을 때는 문득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감동과 감동은 바로 그렇게 만나고 우리는 순간적으로 뭉클해지면서 오래전에 눈물을 흘렸던 독자는 누구였을까 궁금해 하지요. 하지만 아무리 찾고 싶어도 알 길이 없고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원청'에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 미소 짓는지 알고 싶고 누가 눈물 흘렸는지 궁금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고 찾을 수 없습니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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