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보물이던 딸…지금도 '사랑해'라고 문자 보내요"
탐사보도부
seogiza@kpinews.kr | 2022-12-14 17:42:46
"보호자처럼 의지한 딸…아직 내 옆에 있는 것 같아"
다른 유가족 만나고 싶어 합동분향소에 딸 영정 안치
이애란 씨 삶은 10·29 이태원 참사 이후 한 달 넘게 멈춰 서 있다. 시간이 흘렀건만 딸(조한나)이 세상을 떠났다는 게 여전히 실감나지 않는다. 그보다 그를 힘들게 한 건 정부 대처다. 축소, 은폐, 졸속이란 단어로도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정부 대처는 엉망이었다.
발인 다음날 받은 포도…"우리 딸이 엄마 먹으라고 보냈구나"
이 씨는 이태원 참사 때 잃은 한나 씨 발인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난달 1일, 포도 한 상자를 배달받았다. 보낸 이는 한나 씨였다. 억장이 무너졌다.
기억을 짚어보니 사고가 난 그날 오후 이 씨는 딸과 SNS 메신저로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 집에 포도 시켰는데 왔어?"
"아니."
"알았어. 연락할게."
"조심히 안전하게 놀다 들어가."
당일 오후 8시 33분에 보낸 문자를 끝으로 딸은 세상을 떠났다. 전화 한 통이라도 했었다면 안타까움이 덜 했을까. 이 씨는 마지막 대화에서 한참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대화 밑으로 이 씨가 한나씨에게 보낸 '사랑해' '보고싶다'는 문자가 이어졌다. 그녀는 딸에게 답장이 올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문자를 보낸다. 문 앞에 놓여 있던 포도 상자에서는 딸의 온기가 느껴졌다. "평소 우리 딸 마음씨가 이래요. 저 포도상자를 보고 있자니 그 아이가 아직도 내 옆에 있는 듯해요."
한나 씨는 2년 전 독립해 경기도 수원에 살았다. 엄마가 사는 분당신도시와는 한시간 거리. 한나 씨는 독립한 뒤에도 매주 토요일 분당으로 와 이 씨와 점심을 함께 했다. 사고 당일에는 그러지 못했다. 이 씨가 딸이 손에 쥐여준 용돈으로 그날 자신의 지인들에게 밥을 샀기 때문이다. 딸 자랑을 하면서 말이다. 한나 씨와는 그 다음 주 토요일 점심을 함께하기로 약속했었다.
한나 씨는 의젓한 딸이었다. 때론 보호자처럼 든든했다. 힘들다는 불평보다 엄마를 위로하는 마음씨 넓은 딸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모델 일을 하면서 자립심도 컸다. 대학에서 모델학을 전공한 그녀는 졸업 후 학자금 대출을 다 갚고도 2000만 원을 모았다. 알뜰히 붓던 청약적금통장에는 460만 원이 쌓여 있었다.
시신 안치 과정 미스터리…명단 공개됐다면 더 빨리 찾았을 것
딸이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진 과정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떤 경로를 거쳐 시신이 거기까지 간 건지 알 수가 없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후 기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딸 시신이 안치된 시각은 오전 1시 10분, 오전 2시 30분 과학수사대가 지문을 채취했다. 딸이 살던 경기 수원 정자동 지구대에서 오전 4시쯤 딸의 오피스텔을 방문했고, 오전 8시 30분이 돼서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지구대로 사건이 넘어갔다.
이 씨는 "경찰이 현장에 함께 갔던 사람들의 협조를 받아 신원 조회를 했거나 사고자 명단이 언론에 공개됐다면 더 빨리 찾지 않았겠냐"며 한탄했다.
유가족 간 접촉은 철저히 차단됐다. 그는 "발인이 끝난 뒤 담당 공무원에게 유가족들 전화번호 좀 알려달라고 했더니 '개인정보라서 안 된다'고 했다"며 "'제 전화번호라도 (다른 유가족들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는데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전국에는 영정·위패 없는, 기이한 합동분향소가 차려졌다. 다른 유가족들을 애타게 만나고 싶던 이 씨가 기댈 수 있는 게 합동분향소뿐이었다. 한나 씨 영정과 위패는 지난달 7일 오후 9시부터 9일까지 경기도청 합동분향소에 모셔졌다.
이 씨는 "성남시청, 분당구청, 서울시청, 행정안전부 어디에 물어봐도 유가족 정보를 알 수가 없었다"며 "조문 오지 못한 딸 친구들을 위해, 그리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유가족들이 보고 연락이 올까 싶어 영정과 위패를 놓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은 늦었고, 장례비 사인 독촉만 빨랐다
반대로 장례비 사인 공지는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됐다. "장례비는 급한 게 아니다, 이렇게 주는 건 안 받을 것"이라는 이 씨에게 성남시청 담당 공무원은 전화·문자로 사인을 독촉했다. 이 씨는 "(담당 공무원이) '말씀만 하시면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 사인 하나만 부탁한다'는 식으로 계속 연락이 왔다"며 "법률사무소에 큰 문제가 없는지 문의해보고 나서야 사인을 했는데,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맘 편히 울 수도 없다. 열 살 막내 딸을 지켜야 할 엄마라서다. 참사 한주 만에 마음을 추스르고 일터로 복귀한 것도 그 때문이다. 평소 버스로 출근하던 그는 지금은 자신의 차로 출퇴근한다. 직장을 오가는 17분 동안만이라도 맘 편히 울기 위해서다.
"그날 이후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 것 같아요. 마치 하늘에 거꾸로 매달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아요. 우리 막내딸이 다 클 때까지야 내가 옆에서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겠지만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선 어쩌죠?"
KPI뉴스 / 서창완 기자 seogiza@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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