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족들 "지금도 우리에게 국가는 없다"

탐사보도부

tamsa@kpinews.kr | 2022-12-08 22:15:29

부산 유족 5명 UPI뉴스 인터뷰서 정부 성토
"현 여당은 '국민의힘' 아니라 '국민 누르는 힘'"
"수습과정 전체가 혼돈…수소문 끝에 겨우 찾아"
"범죄 가능성 운운 부검 재촉에 억장 무너져"

2022년 10월29일 밤 서울 이태원에 국가는 없었다. 10만 인파가 몰려 시민들이 압사하는 절체절명의 순간 그곳은 무정부 상태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런데 참사 전만이 아니었다. 비명에 자식을 떠나보낸 유족들은 지금도 국가의 존재를 실감하지 못한다. 그들은 여전히 "국가는 없다"고 토로한다. 

참사 후에도 정부는 유족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했다. 내 자식의 어이없는 죽음을 국가는 제대로 밝혀주지 않았다. 그래서 유족들은 느닷없이 객사한 자식을 가슴에도 묻지 못하고 있었다.

UPI뉴스는 8일 오후 부산시 연제구 부산시청 근처 카페에서 부산을 연고지로 둔 이태원 참사 희생자 6명 중 5명 유가족과 합동인터뷰를 가졌다. 유족들은 한목소리로 정부 사후 수습에 분통을 터트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을 잃었다는 이미영 씨는 "16일 49재를 연다고 하는데, 무슨 49재냐, 나는 우리 딸(김도은 씨)을 떠나보낼 준비가 안됐다"며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간호사로 일하다 유명을 달리한 고(故) 노류영 씨 어머니 정미진 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이번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 국가대표팀이 지길 바랬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이모 정숙진 씨도 "16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은 불러다가 밥 먹이는 대통령이 왜 유가족을 한데 모아놓고는 사과조차 안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 부산에 연고를 둔 10·29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8일 부산시청 근처 카페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창섭 기자]

이들은 "시신 수습 과정 전체가 혼돈이었다"고 말한다. 시신을 찾는 과정부터 혼란스러웠다.

고(故) 김산하 씨 모친 신지현 씨는 "보통 이런 큰 사고가 나면 사망자 명단이 언론을 통해서라도 나오지 않나. 이번에는 그런 것 자체가 없어 아이가 죽은 사실조차도 모르는 부모가 많았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아직까지도 자식들 사망원인을 정확하게 모른다. 고(故) 김도은 씨 모친 이미영 씨는 "검안서에는 4시 이전 추정이라고만 나올 뿐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내 아이 시신이 어디 있는지도 수소문 끝에 겨우 알게 됐다"고 했다.

현장 구조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의심스럽다. 희생자 김도은 씨 모친 이 씨는 '당시 현장에 있던 친구가 간호사여서 긴급심폐소생술을 했는데, (구급대원이) 하지 말라고 했다'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이 씨는 "모 유가족으로부터 친구인 간호사가 구급차에 동승하려고 했더니 막더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도 했다.

고(故) 노류영 씨 이모 정숙진 씨는 "정부가 윤석열 대통령 명의로 조화를 보내왔는데, '조의를 표한다'식의 위로 글 하나 없이 대문짝만한 합판에 '대통령 윤석열'이라고 쓰인 종이만 붙어 있더라. 기본적인 예의조차 없는 것 같아 부숴버렸다"고 말했다.

▲ 10·29 참사 희생자 김도은 씨 어머니 이미영 씨. [서창완 기자]

▲10·29 참사 희생자 김산하 씨 모친 신지현씨와 부친 김운중 씨. [서창완 기자]

▲10·29 참사 희생자 노류영 씨 모친 정미진(오른쪽) 씨와 이모 정숙진 씨. [서창완 기자]

유족들은 시신 처리 방식부터 의문이었다. 고(故) 노류영 씨 어머니 정 씨는 "시신 확인차 영안실에 갔는데 우리 딸이 속옷까지 다 벗겨진 채로 흰 천에 둘러싸여 있더라. 부검에 동의한 적도 없는데 말이다. 그걸 보는 부모 심정이 어땠겠느냐"고 말했다.

유족 5명 모두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이 부모 동의 없이 발가벗겨진 상태로 있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현재 일부 유가족들은 시신 훼손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의견을 공유하는 SNS(소설네트워크서비스)에는 "(사망한) 우리 아이 목이나 가슴에 부검을 한 듯한 칼자국 같은 것들이 있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와 있다.

몇몇 유족은 "정부가 범죄 연루 가능성을 언급하며 시신 부검을 재촉했다"고 주장했다. 경기도 구리 한양대병원으로 이송된 고(故) 배현호 씨 어머니 전정숙 씨는 "경찰이 병원에 찾아와 '혹시 범죄에 연루됐을 수 있으니 부검을 해보는 건 어떠냐'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고 억장이 무너졌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게다가 참사가 일어난 지 40여일이 지났지만 정부는 여전히 유가족 모임 구성에 회의적이다. 이들이 뒤늦게 소통할 수 있었던 것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가 자리를 만들어줬기에 가능했다. 고(故) 배현호 씨 어머니 전정숙 씨는 "부산시청에 부산 거주하는 유가족 연락처를 달라고 했더니 없다고 딱 잡아떼더라"며 "시청에서 계속 각 유가족에게 전화를 걸어왔는데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민변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40여 유가족은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고(故) 김도은 씨 모친 이미영 씨는 "유가족 단톡방에 희생자 91분의 유가족이 있다. 외국인 26명 빼고는 절반이 넘었다"며 "그런데도 여전히 남은 유가족과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전정숙 씨도 "부산에 사는 유가족 중 1명이 누군지는 아직까지 모른다"고 했다.

▲10·29 참사 희생자 배현호 씨 모친 전정숙 씨. [서창완 기자]

▲10·29 참사 희생자 정아량 씨 모친 남지민(왼쪽) 씨와 이모 남지연 씨. [서창완 기자]

고(故) 김도은 씨 모친 이 씨는 "현 여당의 당명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국민을 누르는 힘'이라면서, 지난 대선 때 윤석열 대통령을 뽑은 게 너무 후회된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 씨는 그러면서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다. 우리 애가 하늘나라에 간지 한 달이 지났는데, 나도 죽은 지 한 달이 된 것 같다"며 고개를 떨궜다.

KPI뉴스 / 부산=탐사보도부 송창섭·서창완 기자 realsong@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WEEKLY H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