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과감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필요한 시점…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UPI뉴스
| 2022-10-29 19:52:10
대형 증권사는 제2 채안펀드 조성에 협조하고
대통령이 주도하는 비상대응시스템 가동해야
부동산 개발로 꽤 큰돈을 번 사업가를 만났다. 늘 사업 대상지를 찾아 분주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유를 보이는 모습이 의아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이제 곧 헐값에 물건이 나올 것"이라며 "돈 들고 기다리면 더 큰돈을 벌 기회가 올 것"이라는 대답을 했다.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각종 개발사업이 자금조달에 차질을 빚고 있으니, 그런 사업들은 곧 망해 헐값에 시장에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금융시장은 지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금리가 오르고 기업들이 채권 발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대기업마저 정상적으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다는 소식에 불신이 자라나고 있다. 돈을 빌려줬다가 받을 수 있는지 의구심이 커지자 서로가 몸을 사리면서 자금시장 경색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 누군가가 망하기를 바라는 하이에나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긴축, 한전의 적자 그리고 강원도의 악의 한 수
금융시장이 이렇게 혼란에 빠진 첫 번째 이유는 미국에 있다. 미국 연준이 연이어 세 번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0.75%p 인상)을 밟으면서 우리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앞으로도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자이언트 스텝을 내디딜 가능성이 크다는 예상이 금융시장을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다가 우리 내부적으로는 한전의 적자가 금융시장의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정권의 탈원전 정책과 맞물려 전기요금 인상을 미루는 바람에 한전은 천문학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적자가 6조 원에 이르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14조 원의 적자를 냈다. 한전은 채권을 찍어 이 적자를 메울 수밖에 없다. 올 들어 한전채 발행물량은 무려 23조 원으로 작년의 2배를 훨씬 넘는다. 한전채는 사실상 정부가 보증하는 신용도가 최고등급이다. 한전채가 쏟아지자 다른 기업들은 회사채를 발행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이렇게 꼬여가던 시장에 강원도가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레고랜드 개발과 관련한 채권의 지급보증 약속을 지킬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결국,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불안하던 금융시장에 불신의 폭탄을 터뜨렸다. 마치 유증기(油烝氣)가 차오른 방에 불씨를 던진 셈이다.
불안한 고리, 증권사의 부동산 PF대출
이렇게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가장 약한 고리로 떠오른 것이 증권사 중심의 부동산 PF대출이다. 증권사들은 부동산 호황기 때 PF대출로 손쉽게 떼돈을 벌었다. 장기의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이 채권을 바탕으로 단기 금융 상품, ABCP(자산 유동화 기업어음)를 발행해 수익을 내 왔다. 한마디로 단기의 저금리로 돈을 조달해서 장기의 고금리로 운용해 돈을 벌어온 것이다. 그런데 자금시장이 경색되면서 단기 상품인 ABCP가 소화되지 못하자 사단이 발생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불똥은 건설사에도 번져나갔다. 부동산 개발에 시공사로 참여하면서 보증을 섰다는 사실이 불안을 키운 것이다. 유수의 대형 건설사가 제대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다는 소식은 시장 불안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 위기를 증폭시킨 것이다.
정부, 제2 채권시장 안정 펀드 등 돌파구 모색
사태가 이렇게 전개되자 정부가 나섰다. 증권사의 PF ABCP의 해결책 모색에 나선 것이다. 골자는 대형 증권사가 돈을 내서 중소형 증권사가 가지고 있는 PF ABCP를 사주자는 것이다. 미래에셋 등 9개 대형 증권사가 참여해 대책회의를 열어 이 문제를 논의했지만, 결론이 나온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경쟁 증권사를 돕는 것에 거부감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부 부실한 PF ABCP가 소화되지 않으면 결국에는 우량한 PF ABCP까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형 증권사라고 피해를 비껴가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또 대형 증권사들은 지난 2020년 코로나 위기 당시 주가연계증권(ELS)의 폭락으로 추가증거금 문제로 정부로부터 5조 원이 넘는 자금을 수혈받았던 빚이 있다. 따라서 현재 업계 분위기로 봐서는 정부의 의도대로 진행될 것 같다는 관측이 높다. 다만 이 정도 대책으로 위기를 벗어날지는 미지수인 것도 사실이다.
느닷없는 부동산 규제 완화…언 발에 오줌누기?
지난 27일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가 통째로 생중계됐다. 정부가 현재 상황을 비상국면으로 본다는 것 이외에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부동산 규제의 일부를 푸는 내용이었다. 15억 원이 넘는 아파트에도 담보대출을 허용하고 무주택자, 1주택자에 대한 담보인정비율(LTV)을 50%로 완화한다는 것이었다. 또 신축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도 현재 분양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확대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에 대해 총부채상환비율(DTI)은 묶어둔 채 LTV만 완화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또 중도금 대출 규제를 더 적극적으로 완화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시됐다. 다만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현재 금융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부동산 시장의 침체를 방관할 수 없다는 뜻을 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고 있다.
불안감을 잠재울 과감한 대책이 필요한 시기
정부는 자금시장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늦었지만 여러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50조 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 펀드를 조성했고 증권사의 PF대출 부실에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또 한전채나 은행채의 발행을 자제시켜 채권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물론 이런 대책들이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왼쪽으로 옮기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있다. 또 이번 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더라도 회사채 발행이 몰리는 내년 1분기에 더 큰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불안한 분석도 나오고 있다.
금융시장은 신뢰를 바탕으로 기대를 먹고사는 곳이다.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과감한 대책을 선제적으로 내놔야 한다. 한전의 적자를 끝내기 위한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급하다. 또 지금까지 시장 원리에 맞지 않는 과도한 규제가 남아있는 부동산 시장도 고칠 것은 빨리 고쳐야 한다.
무엇보다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번져 우량한 기업이나 사업장이 도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혼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이명박 정부는 새로운 상황이 생기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대통령과 관계부처 장관이 모여 해법을 내놨던 것은 배울만한 사례다. 기획재정부, 한은, 금융위와 같은 관계부처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르고 해법도 다르기 때문에 공조가 쉽지 않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해법을 제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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