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마약에 빠진 탈북민③] 탈북민 넷중 한명 "나 또는 동료 탈북민 남한서 마약했다"
특별취재팀
realsong@kpinews.kr | 2022-10-27 16:26:20
국내 언론 최초 탈북민 100인 대상 설문조사
생활고에 지쳐 마약으로 도피하는 탈북민들
응답자 절반 이상 "북한에서 이미 경험했다"▲한 탈북민이 10월18일 서울 모처에서 UPI뉴스 서창완 기자와 만나 탈북민 마약 실태를 털어놓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UPI뉴스가 탈북민 사회 마약 실태를 들여다보기 위해 탈북민들을 만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부터다. 만난 이만 수십명에 달했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에게서 찾은 공통점은 "북한에선 빙두(氷豆·필로폰)를 (경험)했다"는 것이었다.
"귀순 후 통일부 등 관계당국에 모두 신고했다"고, 또 "남한에 와선 해본 적이 없다"고도 했는데, 이는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매년 범죄로 수감되는 탈북민 중 마약사범이 30% 이상으로 가장 많다.
그들은 어쩌다 북한 사회에서 마약을 접하게 됐고, 남한에 와서도 마약에 손을 댄 것일까. UPI뉴스는 국내 언론으론 처음으로 탈북민 100명을 대상으로 마약 실태 설문조사를 벌였다. 국내 대표 탈북민 단체인 '통일을 준비하는 탈북자협회'와 '숭의동지회' 도움을 받았다.
응답자 100명 중 17명 '탈북민 남한서 마약하는 거 봤다'
남한에 와서도 마약을 경험한 이는 얼마나 될까. 탈북민 1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5명이 '본인 혹은 주변에서 남한 내 마약을 해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4명 중 1명꼴이다.
UPI뉴스는 익명조사라고 해도 남한에서의 본인 마약 경험을 직접 물을 경우 응답률이 크게 낮아지는 것을 감안해, 문항에 '주변 지인 경험'까지도 포함시켰다.
응답자 '네 명중 한 명'이란 직간접 마약 경험 비율은 탈북민들이 얼마나 마약에 노출되어 있는지 실감케 한다. 2020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여론조사기관 월드리서치앤컨설팅에 의뢰해 실시한 '마약류 심각성에 대한 국민 인식도' 조사에선 응답자의 7.5%가 마약류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탈북민 마약 경험비율이 일반 시민의 3배 이상 높게 나온 것이다. 17명은 '주변에서 마약을 하는 것을 직접 본적이 있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했다. 32명은 '탈북민 사회 내 마약이 심각하다'고 대답했다.
2014년 중국 베이징을 거쳐 남한으로 온 성정우(35·가명)씨는 설문조사에 앞서 "친한 탈북민에게 '빙두 좀 사줄까'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탈북민들은 서로 신뢰 하에 마약을 거래하는데, 완전히 점조직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마약으로 처벌받은 이는 얼마나 될까.'귀하 혹은 주변에서 마약을 유통·복용하다 적발돼 실형을 선고받은 적 있냐'는 질문에 31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2회 이상 복용해 처벌받은 이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18명이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들이 남한에 와서도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북한 내 경험'이라고 답한 이가 49명으로 가장 많았고, '호기심 또는 재미'(20명), '지인 권유'(12명), '생활고'(11명)가 뒤를 이었다. 이외 기타 12명, 무응답 4명이었다. 8명은 복수로 대답했다.
응답자 중 14명은 "북한에선 마약을 하지 않았는데, 정작 남한에 와서 마약에 빠졌다"고 대답했다. 마약 경험이 없던 탈북민까지 마약의 덫에 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유로는 '지인 권유'(6명)가 가장 많았고 '호기심 또는 재미'(5명), '생활고'(3명)가 뒤를 이었다.
마약 관련 정보를 얻는 경로에 대해선 '주변 지인'이라고 답한 이가 46명으로 가장 많았고, 인터넷(18명), SNS(6명)가 뒤를 이었다. 기타는 35명이었고, 5명은 복수로 표기했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국내 탈북민 사회 마약 실태는 예상보다 심각해보였다. 스스로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탈북민 사회 마약이 심각한 수준이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51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32명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니다'라는 응답은 17명에 그쳤다.
생활고에 지쳐 도피하듯 마약의 유혹에 빠지다
탈북민들이 특히 더 마약의 유혹에 취약한 건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들의 처지와 관련있어 보인다. 궁핍과 억압을 피해, 자유와 풍요를 찾아 목숨 걸고 탈북했지만 남한에서의 삶은 기대와는 딴판이기 십상이다. 마약은 그들에게 고단한 현실을 잊게 하는 일종의 도피처였다.
UPI뉴스는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마약에 손을 댄 복수의 탈북민 인터뷰를 통해 그들에게 마약이 어떤 의미인지 좀 더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2011년 탈북한 김철수(37·가명) 씨는 하나원에서 간단한 직능교육을 받았지만 남한 사회에서 이렇다할 직업을 찾지 못했다. 공사판을 전전하거나, 골프연습장에서 잡일을 했다. 소득은 월 180만 원. 서울시내 반지하에서 빠듯한 삶이 이어졌다. 2013년 탈북 여성과 가정 꾸렸으나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알게모르게 탈북민 차별까지 당했다.
마약은 그런 처지의 김 씨를 유혹했다. 탈북자 모임에 갔다가 "이거 해보면 괜찮다. 울화통이 싹 사라진다"는 말에 북에서도 한 번 해보지 않은 빙두를 처음 맛봤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예 판매책으로 나섰다. 마약이 생계 수단이 된 것이다. 김 씨는 결국 2017년 마약유통책으로 체포돼 실형을 살고 나왔다.
북한에서 발전소 노동자로 일하다 2014년 탈북한 김장수(38·가명)씨는 남한에 온 뒤인 2017년 처음으로 마약을 접했다. 김 씨는 "그때 여자친구와도 헤어지고, 가정적으로 불행한 일들이 많았는데, 홧김에 그걸 하면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했다. 김 씨 역시 결국 체포돼 징역 1년을 살았다. 김 씨는 "지금은 후회뿐"이라고 했다.
북한서 10~30대에 대다수 마약 경험… 남한 내 교육 경험 적어
취재 과정에서 만난 탈북민들은 남한 내 마약 경험에 대해 털어놓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처벌을 우려해서다. 반면, 북한 생활 중 경험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털어놓았다.
조사결과도 비슷했다. 북한에서의 마약 경험에 대해서는 남한 내 경험(31명)보다 2배 이상 많은 77명이 '해봤다'라고 답했다.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인 64명이 '북한에서 이미 양귀비를 경험해 봤다'고 말했고, 필로폰인 '빙두'를 경험해 봤다는 응답자는 55명이었다. 양쪽 모두 표시한 응답자는 42명이었다.
마약 경험자 연령대는 10~30대 집중돼 있었다. 북한에서 마약을 경험했다고 답한 77명 중 20대는 29명, 30대는 25명, 10대는 15명, 40대는 8명이었다.
이들은 남한 일반시민에 비해 더 마약에 노출되어 있음에도 정부의 마약 치료 프로그램을 경험한 이는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 정부로부터 '마약을 할 경우 법에 따라 처벌된다는 교육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25명만이 '그렇다', 14명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아니다'라는 대답이 61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중독 치료·재활 경험이 있는 탈북민은 7명에 그쳤다.
'남한에서 불법으로 처벌받는 마약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조금 안다' 50명, '아주 잘 안다' 11명으로 과반(61명)이 '안다'고 답했다. 22명은 '거의 모른다', 17명은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마약중독상담사 최진묵 마약류중독재활센터장은 "현재 하나원 마약 교육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데다 일회성 교육은 큰 의미가 없다"며 "어린 아이일수록 예방 교육의 실효성이 높은 것처럼 탈북민들도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하는 이 시기 예방 교육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마약 실태 조사에 응한 탈북민들 >
9월 6일부터 20일까지 진행된 이번 '북한이탈주민 마약에 관한 인식 조사'에 참여한 이는 모두 100명이었다. 남성은 48명, 여성은 52명이었다. 연령별로는 20대 5명, 30대 30명, 4대 41명, 50대 23명, 60대 1명이었다.
탈북시기별로는 2010~2015년 사이가 50명으로 가장 많았다. 2016~2019년은 26명, 2005~2009년은 9명, 2001~2004년은 7명, 2020년 이후는 5명, 1996~2000년은 3명이었다.
최종 학력은 고등중학교 42명, 대학교 16명, 전문학교 15명이었고, 고등중학교 중퇴 12명, 대학교 중퇴 7명, 전문학교 중퇴 6명, 소학교 중퇴 2명이었다.
북한 내 거주했던 지역에 대해서는 북·중 접경지 양강도 출신이 33명, 함경북도가 26명, 평안북도가 12명, 자강도가 8명이었다. 평양시 8명, 함경남도 7명, 평안남도 3명, 강원도·황해북도·황해남도 각각 1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