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고 이건희 회장을 KH로 부른 삼성의 속뜻

UPI뉴스

| 2022-10-27 13:21:29

정치권서 시작한 영문 이니셜 호칭…기업인은 소통 위해 사용
삼성, 긍정적 측면 강조하며 KH 호칭…JY도 긍정적 노력 기대
회장 취임 JY, 친숙한 이미지로 직원과 소통해 경쟁력 높여야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2주기를 맞아 삼성이 느닷없이 KH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문화재와 미술품 2만3000점 기증을 포함해 감염병 극복지원, 소아암 희귀 질환 지원등 이 회장의 사회 환원을 'KH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전달했고 상당수 언론이 KH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기사를 실었다. 이건희 회장을 KH로 부르는 것이 생소해서 기사 제목만 보고는 누구를 말하는지 어리둥절한 독자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영문 이니셜 호칭은 정치권에서 시작

영문 이니셜 호칭을 사용한 것은 정치권에서 시작됐다. 해방 이후 백범(김구), 우남(이승만) 처럼 거물 정치인들을 아호(雅號)로 부르던 것이 1970대 들어 영문 이니셜 호칭이 등장했다. 원조는 김종필이다.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애칭 JFK를 본 따 JP라는 약칭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후 YS(김영삼), DJ(김대중) 등장으로 영문 이니셜 호칭이 친숙하게 됐다. JP, YS, DJ의 '3김' 시대를 거치면서 영문 이니셜로 불리는 것 자체가 정치 거물을 상징하게 됐다.

그래서 그런지 3김 이후 대선주자를 노리는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영문 이니셜 호칭을 추구했다. 1992년 대선에 출마했던 정주영 회장은 자신도 YS나 DJ처럼 CY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으나 귀에 익숙할 만큼 통용되지 못했다. 이후 여러 거물 정치인들이 영문 이니셜 호칭을 내세웠지만 대부분 실패했고 그나마 영문 이니셜 호칭이 남아있는 사람은 이명박, MB 정도로 봐야 할 것 같다. 

경제인의 영문 호칭은 친숙함을 강조하려는 것

정치인들이 자신의 마케팅을 위해 영문 이니셜 호칭을 사용하는 것과 달리 경제인들, 특히 기업 회장이 영문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회장님, 의장님,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너무 무겁고 딱딱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직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소통을 위해 무거운 호칭 다는 친숙함을 강조하기 위해 영문 호칭이나 약칭을 사용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직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영문 이름인 토니로 불러 달라고 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도 타운홀 미팅에서 직함으로 부르면 벽이 생긴다면서 자신의 이니셜인 JH로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도 사내 게시판에 직함보다 KH로 불러줄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KH는 고 이건희 회장의 KH와 겹치기 때문에 앞으로 경계현 사장이 사용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영문 호칭에 대한 거부감, '님'자가 사용되기도

영문 호칭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무거운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G의 구광모 회장은 '님'자가 주는 딱딱한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냥 구 대표로 불러 달라고 했다. 또 일부 기업에서는 아예 직함을 빼고 '님'으로 호칭하는 경우도 있다. CJ그룹이 오래전부터 직함을 뺀 '님'자를 사용하고 있다. 이재현 회장을 이재현 님으로 부르는 것처럼 모든 임직원을 직함을 빼고 '님'으로 부르고 있다. 권영수 LG 부회장도 임직원들에게 "편하게 '권영수님'으로 불러 달라며 '님'자 호칭 대열에 합류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업의 의사소통이 상하, 수직보다는 수평적 소통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MZ세대가 회사의 중추로 등장하면서 수평적 의사소통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 고(故) 이건희(왼쪽) 삼성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UPI뉴스 자료사진]

고 이건희 회장을 KH로 부른 이유는?

그럼에도 생전에는 KH라는 표현을 쓰지 않던 고 이건희 회장에 대해 사후에 그것도 2주기를 맞아 KH라고 호칭한 것은 숨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첫 번째가 27일 회장으로 취임한 이재용 회장의 위상과 관계가 있다는 해석이다. 이재용 회장은 부회장 시절부터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삼성그룹 내부에서, 그리고 일부 언론에서 JY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고 이건희 회장에게 KH라는 영문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두 사람을 같은 수준에 올려놓았다는 것이다. 다소 억지스러운 해석이지만 마냥 틀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두 번째는 고 이건희 회장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우고 밝은 측면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고 이 회장은 경제인으로서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비자금 등 부정적 이미지도 혼재해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2주기를 맞아 문화재 기증과 같은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KH라는 새로운 별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긍정적이고 친숙한 JY를 기대하며

삼성그룹이 고 이건희 회장을 KH로 불렀으니 이재용 회장의 JY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히 삼성그룹이 고 이 회장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영문 이니셜 호칭을 사용했으니 JY라는 호칭도 긍정적 이미지로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숙한 이미지로 직원들과 소통해 삼성의 경쟁력을 높인다면, 왜 하필 영문 호칭이냐는 비난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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