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 소나무관 안치돼 中 뤼순감옥에 매장"…단서 찾아
허범구 기자
hbk1004@kpinews.kr | 2022-10-26 15:02:32
"日 당국이 '뤼순감옥 사형수 공동묘지 매장' 밝혀"
보훈처, 의거 113주년에 최근 발굴 中 간행물 공개
모친 조마리아 여사 장례식은 '사회장'으로 엄수돼
안중근 의사가 1910년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순국하면서 유해가 소나무 관에 안치됐다는 당시 중국 신문기사가 처음 발굴됐다.
국가보훈처는 26일 '안중근 의사 의거 113주년'을 맞아 안 의사 순국 직후 현지 언론이 보도한 관련 기사를 공개했다.
보훈처는 "안 의사 유해의 행방과 장례절차에 대한 과거 중국 신문 기사를 확인했다"며 "안 의사가 뤼순감옥 공동묘지에 묻혔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단서"라고 밝혔다.
보훈처는 주상하이총영사관과 독립유공자 발굴·포상에 필요한 입증 자료 수집을 위해 지난 1년여 간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발행된 신문·간행물 88종 중 독립운동 관련 기사 3만3000여 매를 발췌, 분석하는 과정에서 안 의사 관련 자료를 찾았다.
보훈처에 따르면 당시 중국 만주지역에서 발행됐던 '성경시보'(盛京時報)는 안 의사 순국 나흘 뒤인 1910년 3월30일자 기사에서 "안중근 의사 둘째 동생 안정근 지사가 형의 유해를 고국으로 옮겨 매장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일본 당국이 거부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일본 당국은 "유해는 다른 사형수와 동일하게 감옥이 관리하는 사형수 공동묘지에 매장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안 의사 유해가 당시 뤼순감옥 내 공동묘지에 매장됐을 것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안 의사 유해 매장 추정지로는 △뤼순감옥 묘지 △원보산 지역 △그 지역 인근 중국 단독발굴 지역 3곳이 꼽히고 있다.
보훈처가 이날 공개한 중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안정근 지사는 당시 친분 관계가 있던 감옥 관리자에게 형의 유해를 잘 수습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 관리자는 "고심 끝에 파격적으로 하얼빈의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유해를 안치하고 조선 풍속에 따라 관 위에 흰 천을 씌우도록 하고 영구(靈柩)를 감옥 내 교회당에 둔 후 우덕순 등 죄수 3명에게 조선 예법에 따라 두 번 절을 하게 해 고별식을 치르도록" 허락했다.
안중근 의사 연구 권위자인 오영섭 박사는 "안 의사의 관을 하얼빈산 소나무로 제작했다는 내용은 처음 밝혀진 귀중한 사실"이라며 "안 의사의 유해 찾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익한 단서를 얻은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했다.
이번에 발굴된 자료 중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된 '민국일보'(民國日報) 1927년 7월19일자엔 안 의사 모친 조마리아 여사의 생전 독립운동 활동과 사후 '사회장' 거행 소식이 실렸다.
이 기사는 안 의사가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을 당시 "친동생(안정근)이 장례를 위해 유해를 원했으나 일본 관리가 그 유해를 강탈해 돌려주지 않았고" 조 여사는 이에 분노해 다른 두 아들 정근과 공근을 데리고 러시아로 이주, 애국 사업에 매진했다고 소개했다.
조 여사와 두 아들은 이후 1919년 우리나라에서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상하이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조 여사는 병환으로 1927년 7월 15일 향년 66세에 눈을 감았다. 기사는 "상해의 많은 한국 동포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에 따라 특별히 사회장이 거행돼 19일에 발인하기로 했다"라고 전했다.
러시아 지역 독립운동 연구 권위자인 박환 수원대 교수는 "그동안 대한민국임시정부 산하 상해 한인교민단 교민장으로 알려졌던 조 여사 장례식이 그보다 높은 예우인 사회장으로 치러졌단 점이 새로 확인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안 의사 순국 관련 기사와 자료를 집중 수집함으로써 유해 발굴이 하루라도 더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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