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위험한 진실' 마주하는 지독한 체험의 글쓰기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10-06 20:52:39
직접 체험한 것만 소설로 써서 "집단적 구속의 덮개 벗겨"
연하 유부남과의 '단순한 열정', 생생하고 지독하게 묘사
"숨김없이 털어놓고 쓰는 행위, 노출증 환자 오해 곤란"
국내에도 15권 이상 번역 출간, 열성 독자들 거느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 1940~)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6일(현지시간) 아니 에르노가 "사적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구속의 덮개를 벗긴 용기와 꾸밈없는 예리함을 가진 작가"라고 선정 배경을 밝혔다.
에르노는 국내에도 최근 3년 동안 15권에 이르는 작품들이 번역됐을 정도로 많이 알려진 작가다. 섹스와 불륜을 포함한 지독하고 은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 생생한 글쓰기를 감행해왔다. 철저하게 자신의 경험을 객관적 관찰의 시선으로 분석해 글쓰기를 진행하는 작가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에르노는 1940년 9월 1일 프랑스 노르망디의 소도시에서 카페 겸 식료품점을 운영하는 소상인의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에서 공장 노동자를 거쳐 자영업자로 정착했다. 어머니도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분투하는 억척어멈이었다. 에르노는 이들 사이에서 하나뿐인 딸로 태어나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사립학교에 입학한 뒤 다른 동급생들의 현실과 비교하게 되면서 열등감을 학업성적으로 보상하려고 했다. 루앙대학 문학부에 진학하고, 중산층 엘리트 남편과 결혼하고 문학교수가 되면서 부모의 세계와 멀어지게 됐다.
빈곤층 출신 여자가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과정에서 겪은 모멸감과 소외의식은 『빈 장롱』 『그들이 했던 말, 혹은 하지 않았던 말』 『얼어붙은 여자』 등 초기작에서 소설 형식을 빌려 자유분방한 언어로 표현된다. 1974년 발표한 데뷔작 『빈 장롱』은 자신이 받은 불법 낙태 수술을 비롯해 열악한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사춘기의 상처, 가족에게 느끼는 수치심, 자신의 뿌리를 잊기 위한 노력과 부르주아 남자 아이에게 버림받은 일까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분리되는 과정을 그렸다.
1984년 발표해 르노도상을 받은 『남자의 자리』 이후 에르노의 글쓰기 스타일은 그녀만의 분명한 개성을 확보한다.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글, 문단 사이의 여백, 단숨에 독자의 관심을 끄는 첫 대목, 담담한 문체, 오로지 사실만을 기록하고자 애쓰며 기억의 확실성을 저울질하는 자기성찰'이 되풀이된다.
에르노를 가장 논쟁적이고 폭발력을 지닌 작가로 각인시킨 작품은 1991년 발표한 『단순한 열정』이다. 국내에도 번역돼 많은 열성 독자를 거느리게 된 이 작품은 연하의 외국인 유부남과의 사랑을 다루었다. 유명 작가이자 문학교수의 불륜이라는 선정성과 그 서술의 생생한 사실성 탓에 출간 당시 평단과 독자층에 큰 충격을 안겨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체험을 객관화해 논픽션의 경계를 오가는 창작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작품 속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을 나는 조금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자기가 겪은 일을 글로 쓰는 사람을 노출증 환자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서술했다.
이 작품은 "글쓰기의 소재와 방식, 기억과 기록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기존 작품과의 연장선상에 위치하며, 임상적 해부에 버금가는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나'라는 작가 개인의 열정이 아닌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한 반(反)감정소설"이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그녀는 한 작품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검열과 변형으로부터 자유로운 일기 같은 글쓰기를 병행했는데, 이 '내면 일기'는 10년 후 『탐닉』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에르노가 이 일기를 쓸 당시 그녀는 마흔여덟 살의 이름난 작가였으며, 남자는 서른다섯 살 파리 주재 소련 대사관 직원이었다. 작가들의 소련 여행을 수행하던 그 남자와 레닌그라드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파리로 돌아와서도 그가 소련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내연의 관계를 이어나간다. 소련 대사관에서 주최하는 영화상영에도 참석해 애인의 아내와 나란히 앉아 있기도 했는데, 애인의 아내와 자신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주부와 창녀'라고 묘사하며 자신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내면 일기'로 분류되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사용한 문법적으로 어긋난 문장을 그대로 작품의 제목으로 차용한 작품이다. 작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며 느낀 죄책감과 공포, 좌절감을 기록한 문병일기로, "나는 글쓰기가 세상을 향한 전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문병하고 있는 현재의 글쓰기를 통해서는 가혹한 피폐 상태를 확인하게 될 뿐이었다"면서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어머니의 죽음이 더욱 명백한 현실로 규정지어진다"고 고통스러워 했다.
2000년에 펴낸 『사건』에서는 임신 중절 경험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소설에 쏟아 부었지만 이 이야기만큼은 이야기하기가 고통스러웠다고 그녀는 털어놓았다. 섹스를 할 때는 자신도 남자와 다를 바 없다고 느꼈지만 임신을 하고 나서야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절절히 깨닫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이 작품은 오드레 디완 감독이 스크린에 옮겨 봉준호 감독이 심사위원장을 맡은 2021년 베니스영화제에서 1등상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다니엘 아르비드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단순한 열정'은 2020년 칸국제영화제 진출작으로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03년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되었고, 2008년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 텔레그람 독자상을 수상했다. 2011년 선집 『삶을 쓰다』가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되었다.
프레데리크 이브자네 교수와 이메일로 나눈 대담 『칼 같은 글쓰기』에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위험한' 글쓰기를 감행해온 에르노의 작품세계에 대한 고백이 응축돼 있다. 굴곡 많은 문학의 여정을 되짚어본 이 대담집에서 에르노는 "문학 때문에 고통 받으므로 문학은 존재한다"면서 "한 문장 한 문장이 실제 사물들의 무게를 싣고 단어들이 단어이길 그치고 감각이 되고 이미지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에르노는 '노출증'이라는 오해까지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에 대해 "그 진실은 내가 위험을 무릅써서 얻어낼 가치가 있는 것이며, 내가 위험을 무릅쓸 것을 요구하는 진실"이라면서 "난 오직 그 위험을 대가로 치르고서야 그 진실을 얻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든다"고 말했다. 에르노는 "글쓰기가 주는 기쁨 가운데 가장 강렬한 것은 누군가 내게 '당신은 바로 내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또는 '이 책은 바로 나예요'라고 말할 때"라고 덧붙였다. 에르노의 말.
"내 책에는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여성작가에서 기대하는 '로맨스'도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 책이 외설로 치부되는 것입니다. 그런 멸시와 모욕은 나를 단련시켜줄 뿐입니다."
◆아니 에르노 연보
1940년 프랑스 노르망디 소읍 이브토에서 소상인의 딸로 출생.
1960년 루앙 대학교 문학부 입학.
1971년 현대문학교수 자격시험 합격, 2000년까지 문학 교수로 재직
1974년 자전적 소설 『빈 장롱』 발표.
1981년 자신의 결혼을 다룬 『얼어붙은 여자』 발표.
1983년 '내면일기'로 분류되는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집필 시작.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사용한 문법적으로 어긋난 문장을 그대로 작품의 제목으로 차용.
1984년 『남자의 자리』로 르노도상 수상
1988년 『한 여자』 발표.
1991년 『단순한 열정』 출간.
1997년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부끄러움』 출간.
2000년 『사건』 출간.
2001년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 『탐닉』 출간
2003년 프레데리크 이브자네 교수와 이메일로 나눈 대담 『칼 같은 글쓰기』 출간. '아니 에르노 문학상' 제정.
2008년 『세월들』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 상, 프랑스어상 수상
2011년 열두 편의 자전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들을 담은 선집 『삶을 쓰다』로 생존 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총서에 편입
2020년 단편선집 『카사노바호텔』 발표.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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