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러 국영 가즈프롬사, 제재대상 LPR·DPR에 전쟁기금 지원

김당

dangk@kpinews.kr | 2022-09-30 10:05:27

러 합병투표 종료 직후(28일) 자사 누리집에 전쟁기금 지원사실 공지
가즈프롬이 전쟁기금 기탁한 '인민전선'은 "푸틴이 이끄는 대중운동"
'인민전선', DPR-LPR 軍지원 포털…가즈프롬 CEO, 푸틴의 오랜 친구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운영하는 러시아 공기업 '가즈프롬(Gazprom)'사가 도네츠크(DPR)·루한스크(LPR) 인민공화국에 전쟁 승리 기금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예상된다.

▲ 러시아 공기업 가즈프롬사가 28일(현지시간) "인민 전선(НАРОДНЫЙ ФРОНТ)의 '승리를 위한 모든 것(ВСЕ ДЛЯ ПОБЕДЫ)' 프로젝트에 참여해 DPR과 LPR의 군대와 인민을 지원하는 기금을 이체했다"고 공지했다. [Gazprom 누리집 캡처]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 대러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유럽에 가스를 수출해 돈을 버는 러시아 국영기업이 DPR-LPR 군대에 전쟁 자금을 지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영국 등 일부 국가는 DPR-LPR에도 추가 제재를 시행하고 있는 마당이다.

UPI뉴스는 가즈프롬사가 지난 28일(현지시간) "인민 전선(НАРОДНЫЙ ФРОНТ)의 '승리를 위한 모든 것(ВСЕ ДЛЯ ПОБЕДЫ)' 프로젝트에 참여해 DPR과 LPR의 군대와 인민을 지원하는 기금을 이체했다"고 공지한 사실을 가즈프롬사 누리집에서 확인했다.

가즈프롬사는 이날 누리집에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 요청을 무시하지 않고 우리의 군인과 지역 주민들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는 자회사 라디크 카리소프 총괄이사의 말을 전하면서 DPR과 LPR에 전쟁 기금을 지원한 사실을 공개했다.

'인민 전선 - 승리를 위한 모든 것' 프로젝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돈바스(DPR-LPR) 지역을 침공한 것을 계기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맞서 싸우는 돈바스 지역의 친러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중 운동이다(관련 기사 참조).

가즈프롬이 DPR과 LPR 군대와 인민을 위한 전쟁승리 기금 지원 사실을 공지한 28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점령한 돈바스 지역과 남부 자포리자-헤르손 주 등 4개 지역의 합병 투표(9. 23~27)가 종료한 다음날이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DPR과 LPR이 합병 주민투표를 강행한 것에 대해 '러시아의 각본에 따른 불법 가짜선거'라며 합병을 인정하지 않고 DPR과 LPR에 대한 제재를 시행하거나 예고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즈프롬사의 전쟁 기금 지원은 가즈프롬과 DPR-LPR을 제재해야 한다는 여론을 더 촉발시킬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최근 가즈프롬사가 운영하는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누출 사고의 원인을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가 그 배후로 각각 러시아와 미국을 지목하는 가운데, 이 회사가 전쟁 기금을 지원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예상된다.

미 CNN은 28일 서방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26~27일 이틀간 러시아 해군의 군수지원함들이 가스 누출이 일어난 해역에서 관찰됐다"고 전해 '푸틴 개입설'에 힘을 실었다. 가스 누출은 EU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 상한제 도입, 수입 제한 등 추가 대러 제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가즈프롬사가 기금을 기탁한 모금 포털 사이트('승리를 위한 모든 것 - 인민전선')에는 "도네츠크인민공화국과 루한스크 인민공화국(ДНР И ЛНР, 영어 약칭 DPR and LPR)의 군부대를 지원하기 위한 '인민전선(НАРОДНЫЙ ФРОНТ)'의 프로젝트"라고 명시돼 있다.

▲ 가즈프롬이 전쟁기금을 이체한 '인민전선(НАРОДНЫЙ ФРОНТ)' 누리집의 첫 화면. 러시아로 "LPR과 DPR의 투사들은 돈바스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적대 행위에 영향을 받는 공화국의 군인과 주민을 지원하시오!"라고 전쟁 자금 및 물자 기부를 안내하고 있다. ['인민전선' 누리집 캡처]

또한 '인민전선' 누리집의 첫 화면에는 전투원들 사진과 함께 러시아로 "LPR과 DPR의 투사들은 돈바스의 해방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적대 행위에 영향을 받는 공화국의 군인과 주민을 지원하시오!"라고 돼 있다.

'돈바스 해방'은 지난 2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내건 이른바 '특별 군사 작전'의 핵심 명분이다.

또한 '인민전선'을 소개하는 Q&A 코너의 '우리는 누구인가(КТО МЫ?)'에는 러시아어로 "'인민전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끄는 대중 운동이다(НАРОДНЫЙ ФРОНТ – ОБЩЕСТВЕННОЕ ДВИЖЕНИЕ, ЛИДЕРОМ КОТОРОГО ЯВЛЯЕТСЯ ПРЕЗИДЕНТ РОССИИ ВЛАДИМИР ПУТИН)"라고 명시돼 있다.

이어 "2022년 2월부터 DPR 및 LPR의 주민들에게 임시 수용소 정착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수집 및 전달하고 있다"고 밝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대국민 연설에서 강조한 '돈바스 해방을 위한 특별 군사 작전'과 궤를 같이 하는 대중 운동임을 적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EU는 자국의 식량-에너지난 등의 희생을 감수하며 푸틴의 전쟁 자금을 죄기 위해 러시아 금융기관과 군수회사, 그리고 올리가르히(신흥 재벌)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푸틴의 에너지 돈줄'의 하나인 대표적인 가스 공기업이 보란 듯이 DPR과 LPR의 군대와 인민에게 전쟁 승리 기금을 지원한 것이다.

앞서 영국 외무부는 지난 2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4개 지역 시행된 러시아 연방 편입 찬반 투표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러시아 고위관리 및 기관, 그리고 올리가르히 등 92명에 새로운 제재를 부과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는 가즈프롬의 자회사 가즈프롬방크의 임원도 포함됐다.

카린 장-피에르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28일 브리핑에서 합병 주민투표에 대해 "러시아의 행동은 명백한 사기 행위이며 법적 의미가 전혀 없다"며 "이에 대응해 동맹국 및 파트너와 협력해 러시아와 이 조치를 지원하는 개인 및 단체에 추가 경제적 비용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알렉세이 밀레르 최고경영자(CEO). 푸틴의 오랜 친구로서 푸틴의 뜻에 따라 가즈프롬을 대리 운영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러시아 대통령실 제공]

가즈프롬사는 러시아의 3대 에너지 기업의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천연가스업체이다. 알렉세이 밀레르 최고경영자(CEO)는 푸틴이 199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 대외 관계위원회를 이끌던 시절부터 함께 일한 오랜 친구로 알려져 있다.

밀레르는 이런 인연으로 푸틴이 집권하자 2000년에 러시아연방 에너지부 차관에 이어, 2001년부터 파격적으로 가스프롬사 CEO를 맡아 푸틴의 뜻에 따라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밀레르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당시 제재 명단에 오르지 않았으나 2018년 4월 푸틴과 가깝다는 이유로 미국의 제재 대상이 됐다.

그러자 그는 "첫 번째 제재 명단에 내 이름이 없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의심했는데 마침내 제재 대상에 포함됐다"며 "우리가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자랑했을 정도다.

러시아 최대 공기업인 가즈프롬(PJSC Gazprom)은 모스크바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글로벌 에너지 기업이다. 1993년 민영화되었다가 2004년 러시아 정부에서 50% 이상의 주식을 확보해 다시 국영화됐지만 외국인의 지분 소유에 대한 한도는 없다.

특히 2006년부터는 영국∙프랑스 가스 공급업체를 인수하는 등 유럽 가스시장에도 진출해 독일과 합작 설립한 '노르트스트림1∙2' 가스관 운영업체인 '노르트스트림 AG' 등 20여개의 외국기업을 자회사로 두고 있어, 지분을 가진 글로벌 주주들은 DPR-LPR에 대한 제재에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가즈프롬 미디어' 그룹은 일간지 '이즈베스티야'와 3대 전국 방송의 하나인 NTV 등 언론사를 계열사로 두고 푸틴 정적들의 스캔들을 폭로하는 등 정부 언론 통제 정책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다.

가즈프롬사는 DPR-LPR의 러시아 합병을 앞두고 자사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전쟁승리 기금을 '인민전선'에 이체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체한 금액이 얼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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