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부터 사달난 리즈 트러스의 '대처식 처방', 세계경제 강타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2-09-28 17:10:53
글로벌 금융시장 '충격'…코스피 2170선 붕괴·환율 1440원 돌파
올해 내내 '인플레이션 이슈'가 세계 경제를 뒤덮고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금리를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이럴 때는 정부도 보조를 맞춰 재정 지출을 축소하는 게 상식적인 방향이다. 서로 엇박자를 내면 시장의 혼란을 일으켜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그런데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는 취임 3주 만에 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연상케 하는 대규모 감세 정책을 내놨다.
영국 '리즈 트러스 내각'은 지난 23일(현지시간) 하원에서 소득세 인하, 법인세 인상 철회 등을 통해 2027년까지 450억 파운드(약 70조 원)를 감세하는 예산안을 발표했다.
"감세가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대처 전 총리 이래 영국 보수당 정부의 고전적인 논리지만 지금 상황과는 맞지 않는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로부터 영국 정부 감세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국제통화기금(IMF) "영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물가가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대규모의 재정지출을 조언하지 않는다"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추구하는 목표는 엇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대규모 감세는 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영국 경제성장률을 낮추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은 "영국과 미국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물가를 낮추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꼬집었다.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도 "영국은 오랫동안 주요국 중 최악의 거시 경제정책을 추구한 것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감세 정책으로 영국이 구제금융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1976년 IMF에 40억 달러 가까운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영국 정부는 "세제 혜택과 개혁을 통해 경제 회복을 꾀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영국 파운드화 투매가 일어나 가치가 폭락했다. 미국 달러화 대비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지난 26일(현지시간) 1.03달러, 사상 최저 수준까지 추락했다. 이전 최저치는 1985년 2월 26일의 1.05달러였다.
파운드화 가치는 이날 유로화 대비로도 3.7% 하락해 2년 만에 가장 낮은 1.079유로를 기록했다.
이날 국제금융시장에서 영국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0.4587%포인트로 전날보다 0.0906%포인트 급등했다. 영국 정부의 파산 위험이 상승한 것이다. 대규모 감세로 인해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가 불거진 탓으로 풀이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란은행(BOE) 기준금리가 2.25%로 연준(3.00~3.25%)에 미치지 못하는 것과 더불어 재정건전성 악화 염려가 파운드화 가치 하락을 부른 듯하다"고 진단했다.
성 교수는 "지출 구조조정 없이 감세만 하면 재정건전성을 해친다"며 "이는 채권시장에도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영국 국채가 대량 발행될 것으로 예상돼 국채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전망이다.
실제로 이날 영국 국채 5년물 금리는 연 4.603%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채권 가격이 내려갈수록 금리는 오른다.
영국 재정위기 우려는 글로벌 증권시장에 충격을 가했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 증시가 모두 하락세를 그렸다.
국내 금융시장도 패닉 장세였다. 28일 코스피는 전일 대비 2.45% 내린 2169.29로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 지난 2020년 7월 10일(2150.25) 이후 약 2년 2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8.4원 오른 1439.9원을 기록, 또 다시 연고점을 경신했다. 2009년 3월 16일(고가 기준 1488.0원) 약 13년 6개월 만에 장중 1440원 선을 돌파했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할 거란 보도가 나올 만큼 취약한 영국 상황, 이탈리아 극우 정권 탄생 등이 글로벌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판단했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같은 의견을 내놨다.
26일(현지시간) 치러진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연합이 승리했다. 이에 따라 극우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의 조르자 멜로니 대표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탈리아형제들은 강력한 재정 지출과 감세 정책을 공약으로 내세운 탓에 이탈리아 재정위기 가능성도 불거지고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영국 재정위기가 한국 경제에 직접적으로 큰 영향은 주지 않는다"면서도 "심리적인 영향은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안 교수는 "지금 시장은 패닉 상태라 약간의 재료에도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덧붙였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도 시장에 심리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다.
'윤석열 정부'도 리즈 트러스 내각처럼 출범부터 법인세·소득세·부동산세 등의 감세를 추진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적잖은 상황이다.
26일(현지시간) 5년물 한국 CDS 프리미엄은 0.5235%포인트로 전일 대비 0.0393%포인트 상승했다. 한국 CDS 프리미엄이 0.5000%포인트를 넘어선 것은 지난 7월 19일(0.5084%포인트) 이후 약 2개월 만이다.
이종빈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영국뿐 아니라 한국 CDS 프리미엄도 올랐다는 점은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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