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회계사 김경율의 '부족주의'에 대한 투쟁

UPI뉴스

| 2022-09-26 09:27:14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공사 구분 엄격해야 하지만
한국 시민운동권은 '조국 사태'로 내로남불·위선 드러내
김경율 부정하며 자신들은 '인간적'이라는 엉뚱한 핑계
한국형 부족주의 작동 메커니즘 내재됐다는 것 자각해야

최근 출간된 <회계사 김경율의 '노빠꾸' 인생>이란 책을 읽었다. 김경율은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진보의 문제점들을 고발해 온 진보 인사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엔 부족하다. 김경율이 그 일을 위해 20년 넘게 몸 담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결별하면서 "그간 쌓아온 네트워크, 친구들의 80%가 떨어져 나"가는 희생을 감수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이상한 일이다. 그의 고발은 정의로운 것이었는데, 왜 정의를 추구하겠다는 목적으로 형성된 네트워크 친구들의 80%가 떨어져 나가야 한단 말인가? 바로 여기에 이 세상의 비밀, 특히 한국 사회의 비밀이 숨어 있다.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잘 지적했듯이, "현대의 집단도 심리적으로는 원시 역사 속 부족들과 같다." 왜 그렇다는 것인지 윌슨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인간의 두뇌는 지리적으로 좁은 공간, 제한된 친족의 범위, 자녀와 손자로 한정된 혈연까지만 헌신하도록 진화했다. 반면 멀리 떨어져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는 무시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이러한 본능은 구석기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의 유전자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 이유는 수십만 년의 세월 동안 친족과 친구의 작은 원 속에서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에만 집중한 사람들이 더 오래 살아남고 더 성공적으로 자식을 번식시켰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고 수긍할 수 있는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보통사람들이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그들이 그런 유전자의 명령이나 유혹에 저항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공사(公私) 구분을 엄격하게 해야 한다. 자신과 친하다거나 같은 편의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평가 기준이나 잣대를 적용해선 안된다. 물론 내로남불도 한사코 거부해야만 한다.

'조국 사태'는 한국 시민운동권에서 그런 당위나 원칙이 신화였다는 걸 폭로하고 말았다. 정의롭고 고매할 것처럼 보였던 진보 명망가들의 집단이 동네 계모임과 다를 바 없는 친목적 이익 집단에 불과했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들이 잠자코 평범하게 살았다면 문제될 게 없었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늘 사회를 향해 정의로운 율법과 도덕을 설교해온 사람들이었다는 점이다.

물론 드물게나마 김경율처럼 철저한 언행일치를 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이 위선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선 김경율을 부정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의 곁에서 떨어져 나갔을 게다. 이럴 때에 많이 쓰는 변명이 '인간적'이라는 말이다. 자신들은 인간적이고 김경율은 인간적이지 않았다는 주장인 셈인데, 정의 실현을 목표로 내세운 시민운동가들이 무슨 그런 엉뚱한 핑계를 대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김경율을 부정하면서 진심으로 자신은 위선자가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도 많을 게다. 이들의 믿음은 존중해야 하겠지만, 부족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게 부족주의의 작동 메커니즘에 내재돼 있다는 걸 이해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미국 예일대 로스쿨 교수 에이미 추아가 <정치적 부족주의>(2018)라는 책에서 그걸 잘 지적했다. 그는 "어느 집단이건 일단 속하고 나면 우리의 정체성은 희한하게도 그 집단에 단단하게 고착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족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단이 헌신하는 목표에 유리한 방식으로 세상을 보게 만들어서 현실을 대대적으로 왜곡할 수 있다. 또 집단정체성은 순응의 압력을 일으켜 사람들이 혼자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들을 하게 만든다. 개인의 책임은 집단 정체성으로 녹아들고 집단 정체성에 의해 부패한다. 그렇게 해서 잔혹하고 끔찍한 행동을 찬양하고 그런 행동에 가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정치적 부족주의>가 부족주의에 관한 이론서라면, 김경율의 책은 한국형 부족주의에 대한 투쟁의 기록이다. 심각하고 비극적인 이야기인지라 얼굴 빛을 좀 어둡게 하고 읽는 게 옳겠지만, 나는 그런 예의를 챙기진 못했다. 너무 재미 있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은 탓이다.

평소 지면을 통해 잘 알던 유명 진보 인사들이 정치적으로 이상한 주장을 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의문이 풀렸다. 이런 재미를 어디에서 누릴 수 있겠는가. 그래, 우리 모두 너무 심각하게 살진 말자. 공공영역에서 한국형 부족주의에 대한 도전도 재미있게 해야 우리가 보다 많은 진짜 의인들을 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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