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성동 25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
연좌제 서슬 아래 출가, '만다라' 집필
질곡의 현대사 뿌리 우리말로 '국수'에 담아▲25일 별세한 소설가 김성동. 연좌제의 서슬 아래 그는 문학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솔 출판사 제공] 장편 '만다라'와 '국수'를 집필한 김성동 소설가가 25일 오전 7시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5세.
고인은 충남 보령에서 1947년 태어났다. 고인의 부친 김봉한(1917~1950)은 일제 때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공간에서 서북청년단에 체포돼 6·25전쟁 국면에서 같이 수감됐던 이들과 함께 집단 처형돼 시신도 찾을 수 없었다. 2018년 96세로 작고한 모친도 고문과 수감 생활을 되풀이했다. 아버지가 처형될 때 네 살이었던 김성동은 할아버지 아래서 구술 역사를 들으며 성장했고, 서슬퍼런 연좌제 아래 제대로 사람 행세를 할 수 없다는 절망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입산했다가 결국 문학의 길로 들어섰다. 문학은 그나마 그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1965년 출가했고 1976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모집에 '목탁조'가 뽑혔다. 이 작품이 악의적으로 불교계를 모독했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승적에서 제명됐다. 1979년 승려의 수행과 방황을 담은 장편 '만다라'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로 부각됐다. 이 장편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회자됐다. 1981년 첫 소설집 '피안의 새'와 산문집 '부치지 않은 편지'를 펴냈다. 1983년 부친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장편 '풍적'을 일간지에 연재하다 중단했다. 이후 자전적 장편 '집'과 '길', 산문집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등을 출간했다.
'만다라'에 이어 고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국수'는 1991년 연재를 시작한 지 27년 만인 2018년 전5권으로 완간했다. 임오군변(1882)에서 시작해 동학농민운동(1894) 전야까지 충청도 내포지방(예산 덕산 보령)을 배경으로 양반과 노비, 선승과 동학접주, 빼어난 기생과 미천한 계급의 인물들까지 다양하게 등장시켜 그 시대의 삶을 구체적으로 풀어냈다. 고인은 당대 내포지방의 언어를 충실하게 살려내, 아름다운 우리말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김성동은 질곡의 가족사를 배태한 현대사의 뿌리를 장편 '국수'에 담아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고인이 승려 생활을 바탕으로 쓴 '만다라'가 성공한 이래 짧은 시간 각광을 받고 한 서린 가족사를 써서 잠시 호평도 받았지만, 이후로는 줄곧 고난의 세월이었다. 1990년대 접어들어 피어린 가족사를 직접 쓰는 대신 그들이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배태한 뿌리를 톺아보기 위한 시도로 시작한 소설이 바로 '국수'였다. 그는 "마지막 조선왕조 노을진 그 시절의 삶을 전통적 어법으로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다른 이들은 안 쓰는지 못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언어는 시대와 계급과 장소의 산물"이라고 생전에 강조한 바 있다.
고인은 신동엽창작기금, 행원문화상,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받았다. 빈소는 충북 충주 건국대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9시다. (043)840-84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