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질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발목 잡히나
김당
dangk@kpinews.kr | 2022-09-16 16:46:49
중-러 관영매체 "양국 관계 산처럼 견고"…서방 매체 "우정에 균열"
서방 전문가들 "중국의 첫 전쟁 비난…푸틴의 후퇴압력 첫 공개신호"
'무제한 우정'을 강조해온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이에 틈이 생긴 것일까?
15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중·러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푸틴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의문과 우려"를 표했다. 놀랍게도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이런 언급을 직접 인정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하여 중국 친구들의 균형 잡힌 입장(balanced position)에 감사한다. 이와 관련해 귀하의 의문과 우려 사항(your questions and your concerns)을 이해한다. 물론 지금까지 이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오늘 회의에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설명할 것이다."(러시아 대통령실 발표)
물론 늘 그렇듯이, 중-러의 관영매체들은 이날 개막한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중-러 정상회담 소식을 낙관과 우호를 담아 전했다.
중국 중앙TV(CCTV)는 두 정상은 대만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상대측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한편, 에너지를 포함한 양국 간 교역을 강화하는데 뜻을 같이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신화통신은 푸틴 대통령이 "오늘날 세계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러-중 우호와 상호 신뢰이며 러-중 전면적 전략적 조정 동반자 관계는 산처럼 견고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타스(TASS) 통신은 "두 정상은 코로나19 방역 조치에 의존하지 않고 마스크 없이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나눴다"며 두 정상의 친밀도와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타스 통신 보도처럼 중-러 정상이 마스크 없이 회담을 한 것은 맞다. 하지만 자신의 건강미를 과시하는 걸 즐기는 푸틴은 다른 SCO 회원국 정상들과의 회담 때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코로나19 국경 봉쇄 이후 이번이 첫 해외 나들이인 시 주석은 이번에도 일부 정상회담 때는 마스크를 썼지만 일부 정상회담 때는 쓰지 않았다.
물론 푸틴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우리로서는 실제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고히 준수했다(For our part, we have firmly, in practice, abided by the One China principle)"며 "우리는 미국과 그 위성 국가들이 대만해협에서 자행한 도발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발언의 맥락이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의문과 우려 사항"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바로 그 뒤에 '하나의 중국' 원칙 준수와 대만 문제 도발 규탄을 언급했다.
즉, 이는 러시아는 대만 문제에서 미국을 규탄하며 중국을 지지하는데, 중국은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러 제재를 규탄하지도 러시아를 지원하지도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막대한 방산무기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와 달리, 러시아는 미사일과 탄약이 부족해 이란과 북한에까지 손을 내미는 판이다. 그만큼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형국이다.
그동안 중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해왔다는 점에서도 시 주석의 발언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매우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 측이 발표한 시 주석의 발언 내용과 중국 측 발표자료에는 시 주석이 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언급했던 '제재 반대'도 담기지 않았다.
더구나 푸틴은 최근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주에서 러시아군을 철수시킴으로써 사실상 처음으로 패배를 인정해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공식적으로는 "병력 재편성 작전의 일환"이라고 하지만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의 대반격에 밀려 동북부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사실상 철수시켰다.
그런 탓에 국내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도 푸틴은 시 주석의 이런 발언을 직접 공개한 것이다.
서방 당국과 전문가들은 중국과 러시아 정상의 이 같은 반응을 미세한 기류 변화의 정황으로 주목했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시 주석의 우려 언급을 인정한 점이 놀랍다"면서도 "우려 자체가 놀라울 일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이 그런 우려를 받아들일지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존 커비 미국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CNN에 "러시아군의 성과가 좋지 않기 때문에 푸틴 대통령은 현재 압박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 발표의 행간을 읽는 학자들은 이날 보도문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묵시적인 비판으로 해석한다"고 전했다.
세르게이 라드첸코 존스홉킨스대 고등 국제대학원 교수는 NYT에 "중국은 러시아가 대국처럼 행동하지 않고 있으며,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고 비난하려 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안 브레머 미 컬럼비아대(정치학) 교수는 푸틴의 발언에 대해 "후퇴 압력을 인식한 푸틴의 첫 번째 공개 신호"라고 논평했다.
브레머 교수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략 때문에 주요 7개국(G7)에 '왕따'가 되었다"며 중국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트위터에 썼다.
그는 또 다른 트윗에서 푸틴과 시진핑의 정상회담 사진을 싣고 "xi(시)와 푸틴 사이…혹시 관인가요?"라고 풍자하기도 했다.
미국 백악관은 중-러 정상의 만남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려 하는 분위기다. 중국이 아직 러시아 관련 서방 제재를 어기지도 않았고, 러시아에 물질적 지원도 결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러 정상의 대면 회담은 푸틴이 지난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해 회담을 가진 이후 7개월여 만이다.
두 정상은 당시 회담에서 "양국 간 우정에 제한이 있을 수 없다"고 밀착을 과시했고,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제한 우정'을 강조해왔다.
이런 점에 비추어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푸틴의 질주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첫 패배 인정에 이어 시 주석의 '의문과 우려' 표출을 계기로 제동이 걸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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