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우크라군 공격으로 원전 연료저장고 지붕 뚫렸다" 사진 공개
우크라 "원전 사고시 남동풍, 러 주민 1500만명 위험" 풍향예측 공개
IAEA "더 이상 시간 낭비 안돼"…유럽 최대 원전의 첫 전쟁터 위험제어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이 29일(현지시간) 위험에 처한 자포리자(Zaporizhzhia) 원전단지를 점검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도착한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당국과 언론은 선전전을 전개하며 '네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
▲ '이즈베스티야' 등 러시아 언론은 2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군이 쏜 포탄이 자포리자 원전에서 원자로 연료를 저장하는 건물 지붕 위에 떨어졌다"며 러시아가 임명한 자포리자주 행정부 수반인 블라디미르 로고프가 이날 텔레그램 채널에 공개한 포탄으로 구멍이 뚫린 지붕 사진을 소개했다. [이즈베스티야 캡처]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원전 연료 저장고의 지붕이 뚫렸다며 사진을 공개했고, 우크라이나 측은 자포리자 원전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면 방사선 구름이 러시아를 향해 남동쪽으로 이동해 최소 1500만 명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며 풍향예측도(아래 참조)를 공개해 경고했다.
유럽 최대의 원자력발전 시설인 자포리자 원전단지(ZNPP)는 지난 3월 이곳을 점령한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지만, 원전 운영은 우크라이나 국영 원자력공사인 에네르고아톰(Energoatom) 직원들이 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양국 정부는 원전에 대한 포격이나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네탓 공방을 벌여왔다. 발전소에 대한 가장 최근의 공격도 양국 정부가 원전 인근에서의 포격에 대한 비난을 교환하는 가운데 이날 유엔의 IAEA 사찰단이 키이우로 향하던 중에 발생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자포리자 원전을 겨냥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원자로 연료 저장고 지붕이 뚫렸다"고 주장했다.
로고프가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구멍이 뚫렸다며 공개한 지붕 사진에는 포탄을 맞은 것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고, 찢긴 벽면과 검게 그을린 흔적이 선명하다.
로이터 통신은 로고프의 발언을 전하면서도 이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하기 어렵다고 단서를 달았다.
BBC 방송은 전문가를 인용해 "원전이 두꺼운 보호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원전 주변의 포격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라고 말한다"면서 "하지만 전원 공급이 중단되면 뜨거운 원자로 노심을 냉각하는 펌프가 가동되지 않아 연료가 녹기 시작하기 때문에 전기 공급을 차단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전했다.
실제로 최근 포격으로 인한 근처 화재로 원전에 전기 공급이 끊어져 비상 발전기를 가동하는 아찔한 사태까지 발생했다.
이에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5일 자포리자 원전이 우크라이나의 전력망에서 잠시 차단되고 예비 발전기가 가동되어 전력을 공급했을 때 유럽이 방사능 재해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화재가 가공 전력선을 손상시켜 역사상 처음으로 발전소를 차단했다"면서 이렇게 경고했다.
▲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가운데)과 지원팀이 유럽 최대의 원전시설인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단지로 출발하기에 앞서 29일(현지시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트위터] 이렇게 위기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가운데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사찰단의 출발 소식을 전하며 "거의 매일 자포리지아 원자력 발전소 또는 그 근처에서 새로운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AP통신에 따르면 그로시 사무총장은 중립국 출신이 중심이 된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지원단을 이끌고 키이우에 도착했다.
IAEA는 이번 주 안에 원전을 방문할 것이라고 성명을 통해 계획을 밝혔다. 그러면서 "시설의 물리적 피해를 확인하고 주 안전·보안 체계와 보조 안전·보안 체계가 제대로 기능하는지 확인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찰단은 원전 제어실 인력의 업무 환경을 살펴보고, 핵물질이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그간 IAEA는 각국의 농축 우라늄 사용을 사찰하는 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찰 대상이 전장에 있는 거대한 원전단지여서 이례적인 '사건'이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이 전쟁 중에 적국에 점령된 사상 초유의 사태에서 양국이 원전 주변에서 공방전을 벌였고 통제와 운영의 주체가 달라서 수많은 안전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BBC는 우크라이나 정부는 자포리자 원전에 대한 IAEA 임무가 러시아의 발전소 점령을 합법화할 것을 두려워했지만 마침내 방문을 지원했다고 전했다.
▲ 러시아군이 지난 3월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한 가운데 한 러시아 군인이 원전 주변을 지키며 통제하고 있다. [프랑스24 캡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자국 관영언론에 지원단 파견을 환영하고 협력하겠다며 "IAEA가 나서 우크라이나가 원전과 주변 지역을 향한 공격을 중단하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반면에 에네르고아톰은 성명에서 "러시아의 ZNPP 부지에 대한 공격으로 원전 직원 4명을 포함한 주민 10명이 다쳤다"면서 "점령군이 원전을 군사기지로 사용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점을 IAEA에 숨기려고 직원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국 정부 당국과 관영매체들이 포격전보다 더 치열한 선전전을 벌이고 있어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BBC는 이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피해를 일으킨 공습에 대해 서로를 비난했다"면서 "어느 쪽이 책임이 있는지 독립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의 원전 점령과 통제로 원전이 방사능 누출 위험에 처해 있다"면서 러시아군이 자포리자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며 원전 주변에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바실리 네벤자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지난 11일 유엔에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원전을 무시무시한 도발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설에서 러시아군의 철수는 재앙으로 바뀔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자포리자를 '인질'로 삼은 양국의 교전 속에 유럽은 원전 시설이 파괴될 경우 방사성 물질 누출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유럽에까지 해악을 끼칠 것을 우려하고 있다.
▲ 우크라이나 국영 원자력공사인 에네르고아톰은 29일(현지시간) 누리집에 풍향예측도를 싣고 "원자로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면 방사선 구름이 남동쪽으로 이동해 러시아 주민 1500만 명이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네르고아톰 누리집] 에네르고아톰은 29일(현지시간) "ZNPP의 원자로 중 하나에서 심각한 사고가 발생하면 방사선 구름이 러시아를 향해 남동쪽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네르고아톰은 "우크라이나 국가 원자력 규제 당국의 전문가들은 8월 29일부터 31일까지 3일 동안 이에 상응하는 풍향 예측을 했다"면서 풍향도 지도를 누리집에 실었다.
이어 "바람의 방향은 남동쪽이어서 방사선은 자포리자, 헤르손 및 루한스크 지역의 일부로 확산되고 크림, 돈네츠크 지역 및 러시아 인접 지역인 로스토프, 크라스노다르 및 스타브로폴 지역도 완전히 덮을 것"이라며 "러시아는 핵 테러 행위를 저질러 최소한 1500만 명의 자국민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