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순열 칼럼] 이창용 총재는 왜 파월 의장처럼 과감하지 못할까
류순열 기자
ryoosy@kpinews.kr | 2022-08-27 13:20:18
미국 증시 3%대 폭락… '블랙 프라이데이'
가계부채 부담… '베이비 스텝' 밟은 한은
한미 금리역전에 자본유출, 환율상승 불가피
26일(현지시간) 미국 증시가 폭락했다. 하락률이 3%중후반에 달했다. 그야말로 '블랙 프라이데이'였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매파(통화긴축) 발언이 트리거였다. 파월은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큰폭의 금리인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잭슨홀 미팅은 미국 와이오밍주의 휴양지 잭슨홀에서 매년 8월 열리는 글로벌 경제 회의다. 글로벌 통화정책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리다. 이 회의에서 2005년 라구람 라잔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을 언급했고, 2010년에는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2차 양적완화 가능성을 언급했다.
잭슨홀에서 울려퍼진 파월의 강경 발언은 당연히 물가 때문이다. 파월은 "물가안정은 연준의 책임이자 경제의 기반 역할을 한다. 물가안정 없이는 경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물가상승률을 우리의 2% 목표치로 되돌리는 데에 초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높은 금리와 느려진 경제 성장, 약해진 노동시장 여건이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사이 가계와 기업에도 일정 부분 고통을 가져올 것이다. 이것은 물가상승률 축소에 따른 불행한 비용이지만, 물가 안정 복원의 실패는 훨씬 더 큰 고통을 의미한다."
파월은 고강도 금리인상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감수할 것이란 입장도 밝혔다. 고통스러운 희생을 치르더라도 더 큰 고통을 막기 위해 물가를 잡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이다.
파월의 매파 발언 하루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연 2.50%로 인상했다. 미국 기류와 달리 '베이비 스텝'(0.25%p 인상)을 밟았다. 긴축의 의지와 속도에서 차이가 확연하다. 기축통화인 달러 금리는 뛰는데, 원화는 걷는 형국이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물가상승률의 차이나 금리인상 시작 시점을 감안할 때 미국의 속도가 더 빠른 것은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미국 물가상승이 더 가파르고, 실기했다는 비판이 나올만큼 미국 금리인상 시작이 늦었다는 말이다.
문제는 한미 금리역전이다. 파월이 강하게 시사했듯 연준은 9월 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도 '자인언트 스텝'(0.75%p 금리인상)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연준은 40년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올해 3월부터 4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올렸고, 특히 최근 두 차례 자이언트 스텝을 밟아 기준금리를 2.25%~2.50%로 끌어올린 터다.
9월 자이언트 스텝을 밟는다면 미국 기준금리는 3.25%까지 오르게 된다. 한미 금리역전이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자본유출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고,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터에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자본유출은 곧 달러유출이다. 원·달러 환율 상승세는 더 가팔라지고, 무역적자 폭도 커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위험이 뻔한데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왜 파월처럼 과감하지 못할까. 한은 한 인사는 "무엇보다 가계부채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계부채는 한국경제 시한폭탄으로 지목된지 오래다. "가계부채는 한국경제 최대 위험 요소다. 터지면 수백만, 수천만명이 다치는 초강력 폭탄"이라고 윤석헌(전 금융감독원장), 이동걸(전 산업은행 회장), 이정우(노무현정부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학자 8명이 대담집 <비정상경제회담>에서 가계부채를 걱정한 게 2016년 초다.
지금은 폭발력이 훨씬 커졌다. 2016년 당시 1224조 원이던 가계부채는 지금 1869조 원(2022년 2분기 한은 집계 가계신용)으로 불어났다. 가계부채는 '미친집값'을 떠받치는 축이기도 하다.
결국 딜레마다. 물가를 잡으려 과감히 금리를 올리자니 가계부채 폭발이, 집값 폭락이 무섭다. 반대로 달러의 속도를 맞추지 못하면 한미 금리역전을 용인하고, 환율 상승을 감내해야 한다. 이창용 총재는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선택한 듯하다.
불가피한 선택이겠으나 논란도 불가피할 것이다. 한은 고위인사는 "연말 환율이 더 뛰면서 정치공방이 뜨거워질 것 같다"고 말했다. 가계부채를 놓고 여야 네탓 공방이 벌어질 거란 얘기다.
때늦은 뒷북이요, 부질없는 공방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계부채를 감축한 미국과 달리 한국 가계부채는 십수년간 증가 일변도였다. 여야 가릴 것 없다. 그 눈덩이같은 부메랑이 마침내 가공할 위력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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