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캐나다 '사죄의 여정'…원주민들, '발견의 교리' 철회해야
김당
dangk@kpinews.kr | 2022-07-25 18:33:21
로마가톨릭 운영 원주민 기숙학교서 4천명 방치∙학대로 숨져
'주인없는 땅' 발견의 교리, 토지몰수∙집단학살 신학적 정당성 제공
"캐나다의 친애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저는 여러분 가운데 인디언 원주민들을 만나러 왔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참회의 순례(penitential pilgrimage)가 이미 시작된 화해의 여정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함께 기도해주세요."(프란치스코 교황의 트윗)
"오늘 프란치스코 교황이 캐나다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퍼스트 네이션, 이누이트, 메티스(Métis) 생존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지속적인 고통과 고초를 안겨준 기숙학교를 운영한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역할에 대한 사과를 공식적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캐나다 총리실 트윗)
교황과 캐나다 총리실이 트윗으로 전한 대로, 24일(현지시간) 전용기 편으로 캐나다 인디언 원주민과 화해를 모색하는 여정(the journey of reconciliation)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날 앨버타주(州) 애드먼튼에 도착해 기숙학교 원주민 아동 학살 생존자의 손에 입 맞춤을 했다.
앞서 캐나다 진실화해위원회(The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TRC)는 주로 가톨릭교회가 운영한 기숙학교에서 원주민 아동 4000여명이 방치되거나 학대로 숨졌다고 밝혔다. 바티칸 교황청이 교황의 이번 캐나다 방문을 '참회의 순례'로 명명한 배경이다.
교황은 이번 주 역사적인 방문을 통해 캐나다 전역에서 가톨릭이 운영하는 기숙학교가 저지른 피해에 대해 공식 사과할 예정이다. 85세의 고령에 무릎이 좋지 않은 교황에게 이번 여정(7. 24~29)은 '고행의 순례'이기도 하다.
캐나다는 최근 몇 년 동안 원주민과 비원주민, 정부 간의 관계를 회복하는 화해의 길을 모색해 왔다. 특히 캐나다 진실화해위는 2015년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기숙학교 생존자들이 겪은 학대를 공개했다.
진실화해위 보고서에 따르면, 캐나다 의회는 1857년 원주민을 동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점진적인 문명법'(the Gradual Civiliza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어 캐나다 정부는 '퍼스트 네이션'과 이누이트 인디언의 7~15세 아동들을 캐나다 전역의 원주민 기숙학교에 강제 수용했다. 이들은 머리를 자르고, 제복을 입고, 모국어를 말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며 종종 신체적, 정신적 학대를 받았다.
학교는 대부분 가톨릭 교회들에 의해 운영되었고 연방 정부에 의해 자금이 지원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마지막 학교가 문을 닫은 1997년까지 약 100년 동안 15만 명의 원주민 아이들이 캐나다 전역의 139개 기숙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이 기숙학교에서 겪은 참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이들이 입을 열기까지는 수십 년이 걸렸지만, 기숙학교 생존자들은 퍼스트 네이션 의회 및 이누이트 조직의 지원을 받아 연방 정부와 교회를 법정에 소환했다.
이들의 소송은 캐나다 역사상 가장 큰 집단 소송 합의인 2007년의 '인디언 기숙학교 정착 협정'(The Indian Residential Schools Settlement Agreement)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08년 6월 스티븐 하퍼 총리는 캐나다 정부와 모든 캐나다인을 대신해 기숙학교 학생들에게 그들이 겪었던 잔학 행위와 정부가 학교 시스템을 설립하는데 했던 역할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어 2015년 진실화해위 최종보고서를 받은 저스틴 트뤼도 총리는 성명에서 "이 보고서가 인디언 기숙학교 시스템으로 인한 고통을 일부 치유하고 오래 전에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서 교황의 공식 사과를 요청했다.
그럼에도 기숙학교를 운영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사과하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작년 5월부터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 3곳에서 1200구 이상의 원주민 아동 유해가 발견돼 캐나다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이후 교황은 "매우 고통스럽다"고 심경을 밝혔고, 지난 4월 바티칸을 찾은 원주민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원주민들이 겪은 '이념적 식민지화'를 처음으로 인정하며 공식으로 사과했다.
"가톨릭 교인들의 비참한 행실에 대해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며 마음을 다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제 형제인 캐나다 주교들과 함께 여러분의 용서를 구합니다."
교황은 이번 '고행의 순례' 기간에 애드먼튼, 퀘벡주의 퀘벡, 누나부트준주(準州) 이칼루이트 등을 순방하며 기숙학교 참사의 생존자를 포함한 여러 원주민 대표자들을 만나 현지에서 공식 사과할 예정이다.
하지만 원주민 단체는 교황에게 사과를 넘어선 행동을 촉구하고 있다. 기숙학교에서 아이들의 사망 원인을 찾기 위한 교회기록보관소 접근권한과 바티칸 박물관에 보관된 토착 유물의 반환, 그리고 기숙학교에서 이뤄진 학대 책임자에 대한 처벌과 인권침해에 대한 배상 등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원주민 연구자인 크리스털 게일 프레이저 교수는 신원이 표시되지 않은 무덤의 발견이 교황이 방문한 가장 큰 이유라면서 교황의 방문은 수십 년간 원주민 공동체에서 책임을 요구한 결과라고 말했다.
국립진실화해센터(National Center for Truth and Reconciliation)의 책임자인 프레이저 교수는 "원주민 공동체는 교황의 사과, 그 이상을 원할 것"이라며 여기에는 생존자에 대한 보상과 학교를 운영했던 전 직원 및 성직자에 대한 문서 공개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프레이저는 이어 "우리는 여전히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일부 원주민 지도자들은 가톨릭 교회가 1400년대부터 내려온 일련의 교황 칙령의 교리를 포기하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중동의 '알 자지라' 방송은 24일 기숙학교 생존자 플로라(77)와 그 가족을 인터뷰해 교황을 맞이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전했다.
앨버타주 중부의 크리어로 "곰 언덕"을 뜻하는 마스크와시스(Maskwacis)에 거주한 플로라는 6살 때 강제로 부모와 떨어져 에르민스킨(Ermineskin)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당시 부모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를 거부하면 체포되었다.
이름 대신 '62번'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은 그녀는 그 후 10년 동안 크리어를 쓰지 못한 채, 전기 울타리가 쳐진 학교에서 사제와 수녀, 직원들에게 신체적, 영적, 언어적, 성적 학대를 겪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 자신의 정체성과 영혼을 잃은 그녀는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올해 4월초에 교황의 역사적인 사과를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울면서 지켜봤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수녀들은 아이들에게 "야만인", "이교도", "죄인"이라는 단어를 애용했으며 고해성사를 강요당한 아이들은 "고백하러 갔을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거짓말을 하게 됐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에게 각인된 가장 폭력적인 기억은 1968년에 학교정보 책자에 있는 사진을 보여준 신부에게 강간당한 것이다. 그녀는 세상이 그의 얼굴과, 그가 가한 악행을 알기를 원한다.
플로라는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과를 넘어 이른바 '발견의 교리'(the Doctrine of Discovery, DoD)를 철회하기를 희망한다.
'발견의 교리'는 15세기경에 발표된 일련의 교황 칙령에서 발전된 개념으로 라틴어 '테라 눌리우스(terra nullius)', 즉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땅' 원칙이었다. 즉, '주인없는 땅' 교리가 토착민들에 대한 토지 몰수와 집단 학살의 시대를 여는 데 신학적 정당화와 법적 지원을 제공한 것이다.
미국 성공회는 2009년 7월 8일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서 개최된 제76차 총회에서 기독교에서는 처음으로 '발견의 원칙을 반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과연 교황이 이번 '고행의 순례' 동안 로마 가톨릭이 수백 년에 걸쳐 식민지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겼던 '발견의 교리' 철회를 선언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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