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직설] 싸이의 '흠뻑쇼'와 '정치적 올바름' 논쟁
UPI뉴스
| 2022-07-18 08:56:11
PC 논쟁·갈등 해법? 비판의 형식 아닌 '겸손 모드' 필요
PC지지자, '언어·사상경찰' 비난 안받게 열린 자세 가져야
"(싸이의) 워터밤 콘서트 물 300톤 소양강에 뿌려줬으면 좋겠다."
"(위 발언은) '가뭄에 물을 뿌리며 콘서트나 하는 개념 없는 타인에게 일침을 가하는 정의로운 나'에 대한 과시에 가깝다. PC주의자들은 변화를 위한 행동보다 자신의 정의로움을 어필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가수 싸이의 '흠뻑쇼'를 둘러싼 논쟁의 한 장면이다. 이는 유명 인사들의 발언이지만, 온라인에선 늘 이런 유형의 논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가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말해준다 하겠다.
PC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언어 사용이나 활동에 저항해 그걸 바로 잡으려는 운동 또는 그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PC의 본고장인 미국에선 대체적으로 진보는 '친(親)PC', 보수는 '반(反)PC' 성향을 보여왔지만, 최근엔 진보 쪽에서도 '계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은 '반PC'로 돌아서고 있다.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 중엔 '반PC'를 외치는 이들이 많은데, 그 대표적 인물이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다.
지젝은 PC를 경제적인 계급 불평등을 은폐하는 '부르주아 자유주의의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방패'로 간주할 정도로 도발적이다. 그는 "PC는 자본주의 세계 체계의 기본적 동질성은 손대지 않은 채 문화적 차이를 위한 싸움에서 대리 분출구를 발견한 것"이며, "PC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자본주의는 승리의 행진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에 번역·출간된, 오스트리아 철학자 로베르트 팔러의 <성인언어: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 비판>도 계급 불평등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PC 비판서다. 그는 지젝의 친한 친구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지젝보다는 덜할망정 PC에 대한 독설이 만만치 않다.
팔러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어 사용은—자선, 윤리적 패션, 친환경적 소비 그리고 채식 요리와 마찬가지로—무엇보다도 차별의 자산이다"며 "이 무기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효과적으로 자신들과 동등하지 않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PC가 자기과시나 인정투쟁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은 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팔러는 "자신이 상처받거나 모욕당했다고 느끼는 이는 옳다"는 PC의 기본적인 원칙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의를 제기한다. "그것은 1960년대 소위 진보적인 문학이론이 발전시켰던, 텍스트의 의미는 저자가 아니라 독자에 의해 규정된다는 중대한 오류를 일상 문화의 영역에서 반복하는 것이다." 일상적 삶에서 단 한번이라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에요"라고 강하게 변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반갑겠지만, 상대방의 그런 부인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말로 인해 상처받거나 모욕당했다고 느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달리 생각할 것 같다.
이게 참 어려운 문제다. PC의 원칙에 충실하려면 순수하고 순결한 단어들만을 써야 한다는 게 아닌가. 이에 대해 팔러는 그런 언어가 가장 잔혹한 현실을 은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한다. 그는 현실은 추악함에도 "단어에 관해서 민감하게 굴고 그 누구의 감정도 해치지 않으려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놀랍지 않은가?"라고 묻는다. 이어 "매우 섬세하게 은폐된 현실의 잔혹함을 들춰내는 것이 올바르지 않겠는가?"라고 동의를 구한다.
팔러는 지젝이 먼저 지적한 것임을 밝히면서 "CIA가 이른바 '물고문(waterboarding)'과 같은 자신들의 고문 방식을 '강화된 심문기술(enhanced interrogation techniques)'로 표기하는 것은 어딘가 섬뜩한 방식으로 PC에 관한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고 말한다. PC의 주요 방법론이라 할 완곡어법이 소수자 내지 사회적 약자 집단과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잔혹한 현실 자체에도 똑같이 적용되고 있는 건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PC를 둘러싼 논쟁과 갈등에 무슨 뾰족한 답이 있을 것 같진 않다. 내가 평소 주장하는 소박한 해법 중의 하나는 PC에서 자기과시나 인정투쟁의 요소를 배제하자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PC 관련 발언을 하더라도 비판의 형식을 취하지 말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 모드로 하자는 것이다.
미국의 경험이 우리에게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교훈을 주고 있다. 미국의 PC는 자기과시와 인정투쟁의 요소가 두드러져, 진보적인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반감이 만만치 않다. 2018년 예일대 조사에선 심층 인터뷰를 한 3000명 중에서 80%가 PC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PC 비판자들도 극단적 사례를 들어 'PC의 도착'을 고발하는 식의 비판은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예컨대, 지젝의 PC 비판은 덴마크에서 떠도는 PC 조롱("제3세계 국가 출신의 이민 노동자들과 섹스를 하는 것이 백인 여자의 윤리적·정치적 의무")을 'PC의 도착' 사례로 제시하는 식이다. 무엇이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PC 지지자들이 PC 운동을 하더라도 '언어 경찰'이나 '사상 경찰'이라는 비난은 가급적 나오지 않게끔 좀 열린 자세를 갖는 게 어떨까 싶다.
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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