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정유업계, 기름값 내리는 게 옳다
UPI뉴스
| 2022-07-11 15:52:02
정부 비호 속 SK, GS, 에쓰오일, 현대정유 4사 독과점 고착
2020년 5조 손실? 30조 이익 예상되는 올해 어울리지 않는 불평
기름값 고공행진이 멈추질 않고 있다. 정부가 유류세를 역대 최대인 37% 내렸음에도 휘발유, 경유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자영업자를 비롯해 모든 산업이 비싼 기름값에 신음하고 있고 기름값에서 촉발된 물가 상승 압력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방에서 기름값을 낮출 것을 요구하면서 횡재세를 거둬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정유사들은 요지부동이다. 이제는 정유사들의 원가를 공개하도록 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정유사들은 로비력을 앞세워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들의 주된 논리는 횡재세를 물리거나 원가를 공개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또 코로나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봤을 때처럼 또 손해가 나는 상황이 온다면 그것을 보전해 줄 것이냐며 항변하고 있다. 과연 정유사의 논리는 맞는 말일까?
정유산업은 경쟁이 배제된 전형적인 독과점 시장
시장경제 원칙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 산업이 시장 논리에 따라 경쟁체제가 작동해야 한다. 더 싸게 만드는 기업이 싸게 팔아서 많이 팔고 원가가 비싼 기업은 비용 절감에 절치부심하면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는 시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유업계의 현실은 어떤가? SK와 GS, 에쓰오일, 현대 정유 4개 회사가 쥐락펴락하는 전형적인 독과점 시장이다. 한마디로 사지일근(四枝一根)의 해괴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 정유업계의 현실이다. 어쩌다가 이런 독과점 시장이 형성됐을까?
과점의 폐해는 국제 기름값을 기준으로 하는 이상한 원칙에서 초래
만약 소수의 사업자가 한 산업을 좌우하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서 그 폐해를 단속하는 게 원칙이다. 이때 가장 강력한 수단이 독과점 사업자들이 가격담합을 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단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유업계는 굳이 모여서 가격담합을 하지 않더라도 서로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기준을 가지고 있다. 바로 국제 가격이다. 싱가포르 현물시장 가격이 그 기준이라고 말한다. 원유를 들여와 정제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었건 간에 국제 가격이 기준이 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말하자면 태생적으로 가격담합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런 품목은 공산품 가운데 하나도 없다. 좀 과장된 비유를 하자면 라면의 수출 가격이 비싸다고 국내에서 판매하는 라면 가격을 높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출할 때는 국제 가격에 맞춰서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옳지만 국내에서 팔 때는 서로가 경쟁을 통해 원가에다가 적정 이윤을 더해 파는 게 상식이고 논리에 맞는 일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정유사들이 내수는 외면하고 수출만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우리 정유산업의 경쟁력이 미천할 때 그들이 주장한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위상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타이거 오일의 기억...정부의 비호 속에 존속한 것을 잊어서는 안 돼
정유업계의 아픈 기억 속에는 타이거 오일이라는 회사가 있다. 1998년 불쑥 등장한 이 회사는 그때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휘발유, 경유 등의 수입에 나섰다. 당시 국내 정유사들은 원유를 들여와 국내에서 정제한 휘발유 경유를 팔았는데 국내 가격이 싱가포르 국제 가격보다도 두 배정도 비쌌다.
타이거 오일 창업자는 당시 30대의 박상준 회장이라는 인물이었다. 대기업 상사에서 석유 딜러로 이름을 날렸던 박 회장은 해외에서 값싼 석유제품을 들여와 국내 정유사보다 리터당 100원에서 200원 정도 싸게 팔았다. 자본금 1억 원으로 시작한 타이거 오일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2001년에는 매출이 2800억 원에 이르렀다. 이후 동특, 리드코프, 바울석유 등 석유 수입사들이 연이어 생겨났고 정유사들의 시장은 급격히 잠식돼 나갔다.
대형 정유사들은 처음에는 수입한 석유가 가짜 휘발유라고 비난했다. 이게 먹히지 않자 수입 기름에 의존하면 전쟁과 같은 위기 시에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을 할 수 없다는 에너지 안보론까지 들고 나왔다. 그러나 값싼 기름에 열광하는 소비자들을 붙잡아 두기에는 힘에 겨웠던 게 현실이었다.
정부가 정유사 손들어줘…관세 조정으로 수입 기름 가격 경쟁력 무산
그때까지 정유사가 수입하는 원유와 수입사가 수입해 오는 휘발유와 경유에 매기는 관세는 5%로 똑같았다. 정유사들은 전방위 로비에 들어갔다. 가공이 안 된 원유와 가공이 끝난 휘발유나 경유에 붙는 수입 관세가 같으면 정유사에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정유사 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처음에는 원유 수입 관세는 5% 그대로 두고 석유제품 수입 관세를 7%로 올렸다. 그러나 그 정도로도 정유사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자 한 차례 더 관세를 조정해 원유 수입 관세를 3%로 낮춰준 것이다. 두 차례 관세 조정으로 당초 5%로 같았던 수입 관세가 휘발유 경유는 7%로 높아지고 원유는 3%로 낮아졌다.
관세 차이가 4%로 벌어지면서 수입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국내 석유 시장은 다시 4개 정유사의 독과점 구조로 굳어졌고 그 구조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때 만약 수입 석유사 하나라도 살아남아서 가격담합을 저지하는 조정자로 남았다면 지금 이런 상황이 왔을까?
수출 산업으로 성장한 정유 산업,
공로는 인정하지만 지금은 사회적 책임을 해야 할 때
정유사들은 상반기 석유제품 수출로 303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다. 반도체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수출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정유사들이 그동안 쏟은 기술 개발 노력과 투자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정유 4사 합쳐서 1분기에만 4조 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고 2분기 이익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수출량과 내수소비량이 엇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은 국내 시장에서 벌어들인 셈이다.
이쯤 해서는 국내 휘발유나 경유 가격을 낮추는 게 옳을 것이다. 국내 경제 환경이 석유류의 국제 가격을 운운할 상황은 이미 넘어섰다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각국이 국내 물가 안정을 위해 전략 물자의 수출을 제한하는 것을 보면 우리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코로나가 닥친 2020년에 입은 5조 원의 손실을 볼멘소리로 되뇌는 것도 30조 원에 이르는 이익을 기대하는 올해에 어울리지 않는 불평이다. 더구나 2020년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다.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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