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위기대응 정책결정자에게 프로골퍼의 자세가 필요한 이유
UPI뉴스
| 2022-07-07 08:54:15
정책결정자, 정책에 수반되는 경제·사회적 비용 살펴야
본질보다 이미지,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의사결정은 위험
과다확신 오류 경계하고 겸손한 자세로 통찰력 간구해야
1.8 미터 거리에서 퍼팅을 성공시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 PGA 골퍼들을 대상으로 물었더니 75~85%로 예상한다고 답했는데 실제 퍼팅에 성공한 확률은 55%였다. 이런 모습을 과다확신 오류(hubris bias, overconfidence bias)라고 한다. 프로 골퍼들에게만 이런 오류가 있을까.
미국 항공기 제작사 보잉의 B737 맥스 기종이 두 차례나 연속해서 대형 추락 사고를 겪은 것은 최고 수준의 보잉 엔지니어들이 그들의 전문성에 대한 지나친 확신으로 숨은 위험을 제대로 못 본 데서도 기인했다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 분석이 있었다. 전문성에 대한 내부의 믿음뿐만 아니라 외부의 믿음도 강하게 마련인 전문가 그룹에서 이러한 과다확신 오류에 빠질 개연성이 오히려 높을 수 있다.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내가 이 우주의 절대적 중심이며 가장 중요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믿음이 누구나 의식 속에 태생적으로 새겨져 있다고 보았다. 인간의 이런 본연적 속성이 전문가 그룹에서 증폭될 수 있는 위험성은 정책 결정자들도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직면하고 있는 예상치 못한 높은 인플레이션, 원유 등 핵심적인 자원 생산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 경제성장의 둔화, 긴축적 통화정책에 대한 두려움 등과 같은 상황은 1970년대에 겪었던 세계 경제의 주된 특징과도 닮은 측면이 있다.
당시 미국의 강도 높은 긴축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은 1980년대에 들어 급속하게 진정되었다. 반면 강력한 통화 긴축의 여파는 경기침체와 함께 국제금리 급등 등으로 대외채무가 과다한 중남미 국가들의 외채위기를 초래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했다.
신속하고 과감하게 행동하는 데서 수반될 수 있는 경제적, 사회적 비용 등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과거가 그대로 반복되지는 않겠지만 지난 성공의 좋은 경험은 살리되 실수였다고 보이는 부분은 피해야 하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위기 대응에는 지나친 낙관도,패닉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양 극단에서 과다확신 오류 등에 빠질 수 있는 위험성을 경계해야 한다.
1970년대 석유파동은 각국 정치인들에게 에너지 패권의 중요성을 각인시켰고 50여 년이 흐른 2022년에도 그러한 인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다가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수개월 앞둔 시점에 정치적으로 최근 가깝지 않았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원유 공급 촉진 등을 위해 방문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 맥락이다. 아울러 지금 직면하고 있는 에너지, 식량 등 공급요인 인플레이션이 상당 부분 정치의 영역에서 풀어나가야 할 문제에서도 비롯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야기된 원유, 가스 등 에너지 위기가 석탄과 같은 가장 전통적인 화석연료로 회귀하려는 각국의 수요를 이미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기울여온 국제적인 기후변화 위기 대응 노력마저 정체되거나 후퇴할 우려 또한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다. 정치 영역과 경제 영역 등이 한층 더 상호복합적으로 엮임으로써 그 해법 모색에도 융합적 접근과 노력이 긴요하다.
이코노미스트이건 정치인이건 특정 전문가 그룹이 모든 것을 전적으로 맡아서 풀어나가기가 점차 어려워지는 현실에서는 정책 결정자가 아무리 뛰어난 이라도 과다확신 오류를 더욱 경계해야 할 당위성이 있다. 팬데믹 이후 복합적으로 전개되는 패러다임 대변화기의 바람직한 덕목은 과다확신이 아닌 겸손이다. 변화하며 진화하는 세계는 필연적으로 불완전성과 불확정성을 내포하게 마련임을 겸허히 인식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복합 위기 상황을 헤쳐나감에 있어 과다확신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퍼팅 샷에 겸손한 프로 골퍼의 자세는 위기에 대응하는 정책 결정자에게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태생적이고 본연적인 속성이며 고도의 전문가 그룹이나 엘리트 그룹에서도 볼 수 있는 과다확신 오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우선 스스로 완전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역량 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견적 접근에서 벗어나 넓은 안목과 통찰력을 갖출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의 관점에서 현대인은 미디어 등 환경요인의 영향을 받는 가운데 현상의 근본과 본질보다 겉으로 나타나는 이미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랑스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인, 특히 정치인은 이미지의 포로(prisoners of image)라고 했다. 그만큼 단선적인 또 표면적인 행동 유인이 작용할 수 있다.
여기에 데이터에 의존하는(data-dependent) 의사결정이 현대적 정책 수행에서 일상화되고 있다. 데이터가 나오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가 중요하다. 하지만 데이터에 지나치게 의존하려는 성향이라면 유의해야 한다. 제한된 설명력을 갖는 데이터에의 과다한 의존이나 기계적 의존일 경우 과다확신 오류 등을 초래할 위험성이 적잖다. 데이터에는 신호(signal)와 소음(noise)이 함께 섞인다.
이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만 쉽지는 않다. 그래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긴 호흡의 예측과 때로는 직관이 필요하며 통찰력과 지혜를 끊임없이 간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위기 시에 사람들의 심리는 마치 양 극단을 오가는 '청룡열차'와도 같이 변화의 진폭이 크다. 이럴 때일수록 정책 결정자는 눈앞에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만을 보는 데 그쳐서는 안된다. 위기의 바다를 항해하는 정책 결정자는 해면의 포말을 보되 심해의 흐름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humanity)을 함께 이해해야 한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美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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