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에 멍드는 금융, 커지는 시장 왜곡 우려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2-07-04 17:20:28
"은행 경영에 정부 영향 커"…은행주 PBR 0.3~0.4배 저평가 '극심'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민간 주도 성장을 추구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달 16일 발표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어려울수록 민간·시장 주도로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는 달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임금 인상에 제동을 거는 등 경제 전반을 '관치'하고 있다. 금융 분야에서는 윤 대통령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모두 은행 측에 대출금리를 낮출 것을 압박했다. 은행은 즉시 반응했다.
우리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최대 0.9%포인트 인하했다. KB국민은행은 전세대출 금리를 최대 0.55%포인트 낮췄다. NH농협은행도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금리를 0.1~0.2%포인트 가량 내렸다.
신한은행은 더 파격적인 대출금리 인하 안을 내놓았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한을 연 5%로 정했다. 연 5%가 넘는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차주의 금리는 전부 1년 간 연 5% 이하로 억누르는 것이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7월 이후 신규 주택담보대출 차주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대신 신규 차주의 금리는 최대 0.35%포인트 깎아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또 이미 연 5%로 금리가 내려간 차주더라도 7월 이후 갱신주기가 돌아와 금리가 상승할 때는 연 5%를 초과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높은 대출금리에 신음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당장의 금리인하가 반가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여러 모로 시장 왜곡을 일으킨다.
우선 은행이 손실을 입는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보통 '준거금리+가산금리 – 우대금리'로 책정된다.
준거금리는 코픽스, 금융채 금리 등 시장금리에 따라 움직인다. 가산금리는 인건비, 점포 임대료 등 은행의 비용에 이익을 더한 값으로 각 은행이 자율적으로 책정한다. 우대금리는 고소득·고신용자 등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다.
준거금리는 은행이 결정하는 값이 아니므로 결국 은행이 대출금리를 내리려면 가산금리를 인하하거나 우대금리를 높여야 한다. 둘 모두 은행의 이익에 마이너스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번 금리인하 탓에 은행별로 연간 수백억 원의 손해를 봤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앞으로도 한국은행이 긴축 기조를 이어갈 텐데, 한은 기준금리 인상폭이 대출금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손실이 1000억 원을 넘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정책에 은행 대출금리가 좌우될 수 있다는 현실은 은행주를 멍들게 하고 있다.
6월 한 달 간 코스피가 9.3% 떨어지는 사이 KB금융과 하나금융지주의 주가는 17.7%씩 하락했다. 우리금융지주는 16.1%, 신한지주는 9.7% 낮아졌다.
7월에도 은행주의 주가 흐름은 좋지 않다. 4일 하나지주는 3.64%, 우리지주는 2.92%, KB금융은 2.59%, 신한지주는 1.72%씩 떨어졌다. 같은 날 코스피 하락률(0.22%)을 훌쩍 넘는 수치다.
특히 은행주는 저평가가 심하다. 4일 종가 기준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1배인데, 은행주는 0.3~0.4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PBR은 기업의 주당순자산을 주가로 나눈 값이다. PBR이 1배 이하란 건, 현재 주가가 주당순자산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통상 PBR 1배 이하는 저가 매수의 기회로 일컬어진다. 현재 코스피도 저평가 상태인데, 은행주의 저평가는 극심한 셈이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은행의 경영에 미치는 정부의 영향이 커서 주가 오름폭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과거부터 이런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현 정부 들어서도 나아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독립 증권리서치사 더프레미어의 강관우 대표는 "은행주는 외국인 비중이 높은데, 실제 경영은 정부 뜻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며 "투자를 꺼리게 만드는 요소"라고 진단했다. 이어 "은행 대출금리 결정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은행이 '이자 장사'로 너무 큰 돈을 벌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이 약 9조 원에 달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은행 대출금리는 단편적인 시각으로 접근하기에는 물가, 부동산 등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다.
지금 세계경제 최대 이슈는 물가다. 미국을 필두로 금리를 끌어올리는 건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하지만 한은이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운용해도 시중금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해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위험이 높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한문도 연세대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은행 대출금리 인하는 인플레이션 자극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또 "집값의 경우 현재 '집값 고점론' 등 하방 압력이 더 강하다"면서도 "금리인하가 부동산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KPI뉴스 / 안재성·김해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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