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의 경제분석] 재벌들의 1000조 투자 계획, 그 믿지 못할 '성대한 말잔치'

UPI뉴스

| 2022-07-03 15:04:34

LG 에너지솔루션, 2조 투자계획 석달만에 "재검토"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 쏟아낸 5년짜리 투자계획
실행된다면 경제에 큰 힘 되겠으나 과연 진정성 있나

배터리 대장주로 꼽히는 LG에너지솔루션 주가가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이후 연속 나흘 하락하면서 하락폭이 13%를 넘었다. 지난 1월 상장 이후 60만 원에 육박했던 주가는 40%가 넘게 떨어져 종가 기준으로 지난 금요일(7월 1일) 35만6500원으로 신저가를 기록했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 하락은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경기가 침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1000만 주가량의 보호예수 물량이 곧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예상도 주가 하락의 이유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경기 침체의 문제는 비단 LG에너지솔루션만의 문제가 아니며, 보호예수 물량이 풀리는 문제도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돼 온 것이다. 따라서 LG에너지솔루션의 주가 하락은 다른 이유를 찾아봐야 한다.

LG엔솔, 1.7조 원 규모 미국 애리조나 공장 건설 '재검토'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29일 미국 애리조나주에 건립하려던 배터리 단독 공장에 대해 재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 3월 미국 애리조나주 퀸크릭에 17억 달러, 2조 원을 투자해 11GWh 규모의 신규 원통형 배터리공장을 건설한다고 밝혔었다.

그런데 경제 환경 악화에 따른 투자비 급등으로 투자 시점이나 규모와 내역 등을 면밀하게 재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불과 3개월 만에 2조 단위 투자를 재검토한다는 것이다. 말이 재검토지 사실상 없었던 일로 하겠다는 내심을 드러낸 것이다.

지난 3개월, 무엇이 얼마나 바뀌었나?

LG에너지솔루션은 경제 환경 악화를 재검토 이유로 꼽고 있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경제 상황은 미국이 이미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 전쟁도 발발한 지 한 달 가까운 시점이었다. 2조 단위의 투자를 결정하고 발표하는 상황이라면 이런 변수에 따른 환율 문제나 경기 침체 가능성은 충분히 고려했어야 마땅하다.

또 LG에너지솔루션은 애리조나주 공장에서 생산한 배터리를 리비안이나 루시드 같은 미국의 전기차 업체에 납품할 계산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업체의 성장 가능성이 밝지 못하다는 것도 투자 재검토의 이유가 됐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대규모 투자에 앞서서 미리 챙기지 못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LG에너지솔루션에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더구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예정대로 투자를 진행하더라도 배터리를 생산하는 시점은 2024년 하반기라는 점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하더라도 그때 가서는 경기가 다시 반등하는 시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침체기에 투자해서 호황기에 수확하는 투자 원칙도 무시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2조 원이라는 투자 규모가 석 달 만에 말을 바꿔도 될 만큼 가벼워 보이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 기업들이 원래 발표하고 약속하는 데 대해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일까?

재벌들의 낯간지러운 5년짜리 투자 계획

정권이 바뀔 때면 언제나 그래 왔지만,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에 맞춰서 각 재벌 그룹들이 천문학적인 투자에 나서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삼성 450조 원, 현대차 63조 원, SK 247조 원, LG 106조 원 등. 10대 그룹이 발표한 투자 규모를 모두 합치면 1000조 원이 넘는 수준이다. 다만 이번에는 재벌들이 한날한시에 어디 한 군데 모여서 발표를 한 것은 아니다. 또 내용을 보면 나름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디테일도 갖추고 있어서 한층 세련됐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투자 기간이 대체로 5년에 맞춰진 것을 보면 속이 드려다 보이는 투자 계획이라고 해도 변명할 것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투자를 비아냥거릴 생각은 없다. 실행된다면 우리 경제에 큰 힘이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과연 이 투자 계획들이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믿어도 될까? LG에너지솔루션의 투자 계획 재검토 발표를 보면 우리 재벌들에게 조 단위 투자 계획도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10대 그룹, 5년간 40만 명 채용하겠다?

재벌 그룹의 투자 계획이 미덥지 못한 것은 인력 채용 계획을 보면 더 실감이 난다. 10대 그룹의 현재 고용 인원이 모두 101만 명 수준이다. 그런데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신규 채용 규모는 5년간 40만 명에 달한다. 그룹별로 고용 인원의 30%에서 많게는 70%에 달하는 인력을 단 5년 만에 채용하겠다는 얘기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40만 명을 채용하겠다는 말을 고용을 40만 명 늘리겠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5년 전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을 때도 몇몇 그룹은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발표한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계획대로 채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해당 그룹의 전체 고용 인원은 큰 변화가 없다. 퇴직과 이직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재벌들이 대규모로 채용을 늘리겠다는 발표를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고용난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믿었다가는 발등 찍히기 일쑤라는 얘기다.

자본주의의 근본은 약속과 약속에 대한 믿음

이해관계가 다른 수많은 불특정 다수의 투자로 이뤄지는 자본시장의 속성을 볼 때 상대방에 대한 믿음은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근본적인 조건이다. 그래서 기업들이 공시나 발표를 통해 투자자에게 하는 약속은 지켜져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리고 못 지키게 됐을 때 재검토라는 식으로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될 일이다. 투자 계획을 세웠던 때와 철회하게 된 때의 전후 사정을 소상히 밝히고 무엇을 잘 못 판단했는지 소명해야 한다. 그래야 신기루 같은 투자 계획 발표로 주가가 요동치면서 그 피해가 일반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일을 최대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김기성 경제평론가

● 김기성

△ 서울대 사회학과 △ SBS 경제부장 △ SBS 뉴욕 특파원 △ SBS 보도제작국장 △ SBSCNBC 대표이사 △ TV조선 뉴스센터장 △ 서울예술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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