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균 칼럼] 암호자산의 미래, '신뢰'에 달렸다
UPI뉴스
| 2022-06-23 09:05:02
시장 대혼란, 금융 민주화·인간화 다시 생각케 해
암호자산(crypto), 세간의 뜨거운 이슈다. 일부에서는 암호화폐, 가상화폐라 부르기도 하나 교환의 매개, 회계의 단위, 가치의 저장 등 화폐의 3대 기능에 부합되지 않음은 명백하다. 현대 국가에서 화폐는 국가가 법적으로 그 가치를 보장하는 법화(法貨, legal tender)를 의미한다. 그러면 암호자산은 증권인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자산을 증권으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법적 실체조차 확실치 않은 암호자산에 사람들은 왜 열광한 것일까. 유럽중앙은행(ECB)과 미 연준(Federal Reserve)의 최근 서베이에 따르면 유로지역 가구의 10%가 현재 암호자산을 보유 중이고 미국 성인의 12%가 2021년 중 암호자산을 보유했거나 사용했다. 전 세계 암호자산 시장은 최근 변동성이 매우 큰 가운데 1조3000억 달러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전통적인 증권인 주식과 채권에 60% 대 40% 비중으로 분산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했을 때 2008년부터 2021년 사이 미국에서의 연평균 수익률은 11%에 이르렀고 2022년 들어서는 마이너스 10%로 전환되었다. 투자대상으로서의 암호자산 시장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른 자산시장과 더불어 팽창했는데 최근 전통적 증권의 투자심리 침체 속에서 암호자산 시장에서 수익을 보려는 투기적 속성(attributes of speculative assets)은 극대화했다.
블록체인 등 기술을 기반으로 이른바 탈중앙화 금융(decentralized finance, DeFi)이라는 혁신의 기치까지 내세우던 암호자산 시장이 현재 붕괴 수준에 가까운 일대 혼란 상태에 빠져 있다. 암호자산의 대표주자 격인 비트코인을 포함하여 이른바 스테이블코인들의 가격이 대폭락하였고 암호자산 시장 자체의 신뢰성마저 흔들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얼마 전까지도 새로운 금융시스템의 한 축을 꿈꾸며 법화의 지위까지도 넘볼 듯한 기세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앞으로 암호자산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인류가 창조한 많은 구조물이 그러하겠지만 암호자산의 미래도 궁극적으로 그것을 만든 인류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암호자산의 미래는 본질적으로 암호자산을 바라보는 인식의 문제로 귀결되리라고 본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이슈지만 금본위제도(gold standard)를 채택했던 시절 디플레이션이 문제였던 때가 있었다. 1865년부터 1895년 사이 미국의 물가가 무려 47%나 하락함에 따라 동북부의 채권자들은 엄청난 혜택을 봤지만 남부와 서부의 농민과 근로자들은 빚의 실질가치 급등으로 불만이 극에 달했다. 이렇게 되자 금과 함께 은도 화폐로 유통하자는 대안이 등장했다. 금과 은을 화폐로 같이 쓰는 복본위제도(bimetallic standard)로 바뀌면 화폐 공급량이 늘어나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이었다.
이 문제는 189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쟁점이 되기에 이른다. 물가하락에 수반되는 채무자의 고통을 대변하던 민주당의 후보 윌리엄 브라이언은 금·은 복본위제를 주장한 반면 보수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던 공화당의 후보 윌리엄 매킨리는 금본위제의 고수를 각각 공약으로 내걸었다. 금본위제 고수를 주장한 매킨리가 대선에서 승리한다.
그로부터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른 후 등장한 암호자산을 바라볼 때 순수 금본위제의 고수냐 아니냐의 선택을 했던 당시의 상황이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 있다고 생각된다. 알고리즘에 토대를 둔 암호자산, 이는 법화와의 관계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운 존재다. 화폐와 금융을 바라보는 철학의 문제다. 화폐와 금융은 제도의 산물이며 제도는 다시 인식의 산물이다. 1896년 미 대선에서도 금본위제의 고수냐 아니냐를 둘러싸고 화폐와 금융의 고결성(integrity)에 관한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바로 금융에 대한 인식의 문제다. 암호자산의 문제도 기술의 문제, 블록체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신뢰를 창출할 수 있느냐 하는 인식의 문제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금융의 기반은 신뢰이기 때문이다. 신뢰는 공시(disclosure), 투명성(transparency) 등 보편타당한 법의 지배(rule of law)와 상호작용하며 쌓일 수 있다. 기술의 구현방식이 탈중앙화 내지 분권화된 시스템이건, 집권화된 시스템이건 신뢰라는 필수요소가 결여되어 있다면 그 시스템은 지속가능하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2009년 하버드대 주관 심포지엄에서 금융의 민주화(democratization)와 인간화(humanization)를 언급했다. 금융의 민주화에 대해 특정 파트가 아닌 모든 당사자를 위한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 for everyone)를 강조했고 이것이 자본주의와 금융의 원리로 작동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주었다. 금융의 인간화는 투기적 속성을 포함한 인간 본성을 이해하고 반영하는 금융시스템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한 슬로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시에도 그랬지만 코로나 위기 이후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리스크와 취약성을 직시해야 한다. 암호자산 시장의 대혼란을 보면서 금융의 민주화와 인간화를 다시 생각한다. 모든 당사자를 위한 리스크 관리, 그리고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현실 속에서 금융과 사회를 디자인하고 운영하는 데 긴요하다.
여기서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인류는 팬데믹 위기 이후 원시 미개사회가 아닌 더 나은 삶과 세계를 위한 미래 문명을 준비하려 한다. 대공황을 포함한 역사에서 보았듯이 위기 이후 자유방임(laissez-faire)이 경제주체들에게 항상 최적의 삶을 보장하지는 않았음을 인식해야 할 시기다. 일부 국가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조홍균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원장/美워싱턴대 법학박사(J.D./J.S.D.,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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