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물가 잡겠다면서 금리 낮추라는 윤석열 정부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2-06-22 16:40:34
프리드먼 "유일한 인플레 해법은 통화 증가율 둔화"
물가 잡아야 성장 회복 가능…'톨 폴' 강단 배워야
지금 세계경제 최대 이슈는 물가다. 미국을 필두로 금리를 끌어올리는 건 물가를 잡기 위해서다. 한국경제도 예외가 아닌데, '윤석열 정부'의 갈지자 행보가 우려스럽다.
"물가를 잡기 위해 국회가 초당적인 협력을 해달라"고 주문한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는 "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사가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은행에 대출금리 인하를 주문한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은행들의 '이자 장사'를 비판했다. 은행들은 저마다 대출금리를 낮추기 위해 법석이다.
입으로는 물가를 잡아야 한다면서 손발은 물가상승을 부추기는, 모순된 정책이다. 윤 대통령이 '인생 책'으로 꼽은 '선택할 자유'의 저자 밀턴 프리드먼은 "유일한 인플레이션 해법은 통화 증가율 둔화"라고 했다.
물가는 아직 정점에 오르지도 않았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6~7월 물가상승률은 5월(5.4%)보다 높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은행 대출금리를 억누르는 건 위험하다.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건 한은 기준금리가 아니라 은행 대출금리 등 시중금리다. 한은이 '물가 중심 통화정책'을 운용해도 시중금리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을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해 통화정책의 효과를 반감시킬 위험이 높다.
이 총재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물론 고금리는 가계, 기업 등 경제 주체들에게 고통스럽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겹치면서 다수의 취약가구와 한계기업들이 파산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고통'을 감수하지 않으면 물가는 잡을 수 없다. 프리드먼은 "성장률 추락, 고실업을 겪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종식된 사례는 역사에서 찾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경제 철학에서 프리드먼과 대척점에 섰던 케인지언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도 "물가를 1% 낮추려면 국내총생산(GDP)의 4%를 포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톨 폴'(Tall Paul· 키 201cm)로 불렸던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볼커가 취임한 1979년, 미국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인기영합적 정책, '오일 쇼크' 등으로 인한 고물가에 시달리고 있었다.
1980년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4.6%에 달했다. 볼커는 살인적인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살인적으로 끌어올렸다. 연준의 기준금리는 1980년 17.60%, 1981년에는 21.00%까지 치솟았다.
그 과정이 평탄했을 리 없었다. 1981년 미국의 실업률은 11.0%에 달했다. 수많은 가계와 기업이 파산했다. 볼커는 살해 위협에 시달린 나머지 권총을 차고 다녔다.
볼커가 강단을 보인 덕에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1983년 3.2%까지 떨어졌다. 인플레이션이 진정된 덕에 1980년대 미국 경제는 황금기를 맞았다. 볼커는 '가장 위대한 20세기 중앙은행장'이란 찬사를 얻었다.
정부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반드시 물가를 안정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일 때 비로소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가라앉으면서 물가가 잡힌다. 나아가 물가가 안정화돼야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어중간한 태도를 보이다간 물가와 성장 어느 것도 잡지 못한 채 고통의 시간만 연장될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미 취임 초에 6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집행, 물가를 자극했다. 더는 실기하지 않기를 바란다. 모순된 정책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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