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귀신을 울리고 싶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6-13 07:17:24
팔순에 이르러 깨달음으로 빚어낸 시편들
"사랑과 불효의 무게가 같은 모자의 서러움"
"시인은 세상의 모든 울음을 울어주는 사람"
김초혜 시인이 새 시집 '만나러 가는 길'(서정시학)을 펴냈다. 사십대 초반에 '사랑굿' 연작시를 써서 밀리언셀러 시인으로 각광받았던 그가 팔순에 이르러 세월과 사람과 사랑에 대한 노년의 깨달음을 시의 언어로 펼쳐냈다. 196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시력(詩歷) 60년을 앞둔 그가 생각하는 시란 "시인의 가슴속에 고여 있는 눈물"이다.
"시인은 세상의 모든 울음을/ 우는 사람이다/ 억울하게 누명 쓴 이의/ 억울함도 울고/ 병들어 아픈 사람의/ 아픔도 울고/ 자식 잃은 에미의/ 울음도 울고/ 사별의 아픔을 겪는 이의/ 그리움도 운다/ 심지어 죄를 짓고/ 도망다니는 죄인의/ 고통도 운다/ 시인은 우는 사람이다/ 울음의 기록이시다"('만나러가는 길')
시인은 세상 모든 억울하고 슬픈 것들을 대신해서 울어주는 곡비(哭婢)인 셈인데, 그 길은 "굶주리면서도 배가 부른 길"('시인의 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가 정작 두려워하는 대상은 성직자이다.
"시인이 성직자를 두려워하는/ 까닭을 아시는지요/ 성직자의 깨달음에/ 시인의 깨달음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시는 이치로/ 쓰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쓰이니까/ 어설픈 깨달음을 들켜버릴까/ 성직자를 두려워하는 것이지요" ('신성한 두려움')
이번 시집은 깨달음으로 빚어낸 짧은 시편들로 채워졌다. 중언부언하지 않고 간명한 언어로 의표를 찌르는 시들이다. 그는 "톨스토이는 200년 전에 벌써 자기가 왕이 된다면 뜻을 모르고 쓰는 시인의 권리를 박탈해 백 번 볼기를 치는 형벌에 처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했다"면서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런 글 협잡꾼들이 있었다는 것에 새삼 놀란다"고 말한다. 이어 "자기도 잘 모르고 남도 모르게 쓰는 시인, 그 시를 평론가 나으리들이 대단한 작품처럼 논하고, 무지한 독자들은 그것이 마치 빼어난 시인 줄 알고 무작정 박수를 보낸다"면서 "논리가 안 서는 말, 앞뒤 호응이 안 되는 말, 고저장단이 엉망인 말, 불필요한 단어들이 겹치고 엉겨붙는 말, 된발음이 숱하게 틀리는 말, 이런 행태가 갈수록 심해지는 현상을 보면서 암울함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어머니와 아들은/ 제일 비싼 도가니탕을 시켰다/ 늙은 어머니는 연신/ 아들의 뚝배기에/ 도가니를 건져 넣는다/ 더 먹어라/ 어머니 드세요/ 자주 오겠습니다/ 얼핏 아들의 얼굴에/ 울음의 그늘이 스친다/ 차차 익숙해지실 거예요/ 조심해서 올라가거라/ 사랑과 불효의 무게가 같아서/ 서러운 어머니와 아들" ('요양원 앞 식당 소묘')
근년에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요양원에 맡긴 부모를 면회도 못하고, 심지어 임종도 지키지 못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늙고 병든 부모를 요양원에 둔 채 오가야 하는 이들은 늘 우울하다. 이들의 심정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절창의 깨달음이 '사랑과 불효의 무게'에 담겨 있다. 아들이 시켜놓은 비싼 도가니탕 뚝배기에서 자꾸만 도가니를 아들에게 건져주는 어머니의 '사랑'이나, 그 어머니를 떨어뜨려놓은채 발길을 돌려야 하는 아들의 '불효'는 무게가 같다고 시인은 썼다. 단 삼행으로 끝나는 이런 시편은 어떤가.
"꽃잎마다/ 네가 보낸/ 편지다" ('꽃말')
긴 말이 필요 없다. 꽃잎 하나하나에서 그리운 이의 마음을 읽는 시인의 감성은 늙지 않았다. 노년은 단순히 늙은 연배가 아니라 지혜로 빛나는 시절이기도 하다. 시인이 생각하는 '부부'란 "목련나무와 목련꽃/ 달과 달빛/ 해와 햇빛/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닌"관계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라는 오묘한 의미가 '부부'에 깃들어 있다. 집을 짓고 사는 일은 "마음을 여는 일"이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자신을 내어주는 일/ 다른 이를/ 내 안에서 머물 수 있게/ 집을 짓는 일" ('집')
시인은 "너는 네 속에/ 감추었고/ 나는 내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헛바퀴만/ 도는 것"('마음')이라면서 "내게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제일 쉬운 줄 알았다/ 지난 일 돌아보니/ 그 쉬운 것들이/ 가장 어려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난 모든 길')고 쓴다. 노년의 지혜가 깨달음으로 단단해져 시의 언어로 설파되는 전형적인 경우다.
소설가 조정래와 부부로 살아온 그는 오대산 월정사 아래 집필실 '세심헌'(洗心軒)을 오가며 '고요'를 경작하는 중이다. 그는 "오대산 세심헌에 들면/ 고요함에 비해/ 머릿속이 시끄럽다/ 소음을 피해 왔는데/ 더 큰 소음에 괴롭다니/ 장소가 아니라/ 원인은 바로 나였구나" ('원인')라고 자탄하면서 "마음을 고요케 했다니/ 어림이나 있나요/ 마음을 묶은 채로/ 고요인 줄 알았지요/ 오면 가면 하면서/ 칠십 년 제자리걸음/ 속임수라고 생각도 못했지요" ('바람벽')라고 고백한다. 그가 찾는 '고요'는 마음속에 있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길을 택하면/ 빛이 출렁여/ 기쁨에 넘치고/ 낮에도 밤에도/ 고요와 놀게 된다."('빛 속에서') 짧은 시편만 진설하던 그가 '그대에게' 전하는 긴 편지에는 노년의 청아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여보게, 쉴 곳이 있고 먹을 것이/ 있는데 더 무얼 바라겠소/ 앞산은 계절마다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고/ 찾아오는 이 반갑고 떠난 자리 섭섭해/ 그 마음의 울렁거림을/ 푸르고 맑은 하늘과 공유하며 지내니/ 어찌 행복하지 않겠소/ 젊은 날 삭혔던 인연/ 구태여 잊을 것은 무엇이며/ 더 구할 것은 무엇이겠소/ 밤새껏 계곡 물소리 세차게 들리고/ 아침에 울려 퍼지는 햇살을 바라보며/ 허둥지둥 살았던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 또한 귀하고 즐겁던 추억이었소/ 자연의 순리를 지키며/ 책 읽고 글 쓰며 음악을 듣는 일/ 그보다 안녕한 삶을 바라지 않았으니/ 한평생 누구에게 허리 굽혀/ 구걸한 적 없고/ 그러나 어쩌겠소, 세월은 야속하게도/ 도도하던 허리를 굽게 했구료/ 춥고 어려웠던 젊은 날이 있었지만/ 그날의 밑거름이 오늘을 주었으니/ 가난했던 그 시절이/ 어찌 귀하고 소중하지 않겠소/ 또한 억지로 헛웃음 웃으며/ 마음 노역으로 괴로운 적이 없었으니/ 팔십이 되어도/ 마음은 청정하기만 하다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신록의 봄이 오고/ 녹음의 여름이 오고/ 가을의 단풍과 겨울에 흰 눈이 내려 쌓이니/ 청아한 마음은 그대로라오/ 매일이 중요하지 않은 날이 없고/ 매순간이 고맙고 고맙기만 하구료"('그대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도 담아낸다. 이를테면 '보수와 진보'란 "사용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면서 "자기만/ 좋자고 하면/ 몰락"이라고 본다.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든 그 자체가 '악'이 아니라 어떻게 활용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이전투구를 피해 세상을 건강하게 가꾸어나갈 수 있다는 오랜 삶의 깨달음이다.
미구에 당도할 삶의 마지막 항구를 앞둔 심정은 깨달음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헛헛한 것이 사실이다. 그는 "우리는 영원을 항해하고 싶어 한다/ 항구에 닿지 않으려/ 먼 항해를 꿈꾼다// 언젠가는 기슭에서/ 노를 거두어야 되겠지만/ 세월이 흘러도/ 아직은 아니라고 우긴다"('거룻배를 타고')면서 "어르신, 하면/ 짐짓 못 들은 체한다/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이 아니다/ 내려놓을 걸 내려놓아야/ 어른이다"('어른 1')이라고 썼다.
"이누이트족이 사는/ 에스키모의 나라/ 100세 마을에 가보니/ 나이 많은 노인부터/ 마을을 보호할 수 있는 곳에/ 나앉아 얼어 죽고 있었다/ 한정된 양식이 바닥이 나기 시작하자/ 입 하나 줄이고/ 시체를 사냥 온 동물들을 나꿔채서/ 산사람 양식으로 하라는/ 무언의 순교였다"('어른 2')
몇차례 인터뷰를 청했지만 그는 개인 사정을 들어 유보하곤 했다. 시집 뒤에 적은 '단상'을 다시 들춰보다가 뒤늦은 자각을 했다. 그는 시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시를 설명하는 것, 설명하라고 하는 것, 그것은 시인의 몫이 아니다. 읽는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고 깨달으면 되는 것이다. 열 번 읽어 해득되지 않은 문장은 없다는 명언이 있다. 시는 운율이 있는 문학이다. 읽고 읽고 또 읽으면 그 내재율이 살아나서 노래가 된다. 그 노래가 그 시를 완전 소화하는 경지에 다다를 것이다. 그때 느끼는 시의 멋, 그것이 시를 읽는 맛이다."
그는 "시라는 꽃을 피우는 것은 독자"라면서 "독자가 없는 시는 영토가 없는 왕이라고 했던 젊은 날, 겸허하지 못했던 것이 못내 부끄럽다"고 맺었다. 귀신을 울리고 싶은 그의 소망.
"내가 생각하는 나는/ 한평생이 헛헛했는데/ 남이 생각하는 나는/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고 하니/ 나는 남이 생각하는/ 나로 살기로 했다오/ 그래도/ 욕심을 부려보자면/ 귀신도 울릴 수 있는/ 시 한 편 얻는 일이라오" ('귀신을 울리고 싶소')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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