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는 소중한 국민자산…'국민기업' 호칭 왜 버리나"

탐사보도부

tamsa@kpinews.kr | 2022-05-23 09:14:27

포스코 창립 멤버 여상환 전 부사장이 뿔난 진짜 이유
경영수지 만 맞추려 안전·복지 투자 안해 산재 무더기
황경로 전 회장 등 원로 6명, 16일 경영진 자성 촉구

'포스코'보다는 '포철(포항제철)'이라는 옛 사명을 더 자주 입에 올렸다. 사무실 곳곳엔 포스코 설립자 고(故) 박태준 명예회장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인터뷰 동안 "박 회장님(박태준 명예회장)이 살아서 이 꼴을 보셨다면 어휴…"라는 말이 끊이질 않았다. 포스코 부사장을 지낸 여상환(86) 국제경영연구원장의 토로다.

▲ 여상환 전 포스코 부사장(국제경영연구원장)이 5월19일 오후 서울 마포 자신의 사무실에서 UPI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송창섭 기자]

5월19일 오후 서울 마포에 있는 사무실에서 지난 4월 포스코홀딩스가 계열사 전 직원에게 보낸 이메일(포스코그룹 정체성)에 대해 묻자 그는 분통부터 터트렸다. 절차적 하자도 문제지만 내용의 타당성도 "완전히 틀렸다"고 했다.

"'국민기업'은 우리 포스코의 정체성이에요. 바꿀 거면 최소한 전임 회장단 또는 중우회(퇴직 임원 모임), 동우회(퇴직 직원 모임)하고 한마디 상의를 했어야지. 나중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관련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대외비"라며 안주는 거예요. 우리 국민들이 삼성, 현대에게 '대기업'이라고 하지 '국민기업'이라고 합디까. 국민기업이라는 말에는 존경과 신뢰가 담겨 있는 건데 그걸 스스로 부정하니 참…."

여 전 부사장은 현재 9명만 남아 있는 '포스코 창립요원' 멤버다. 이 단체는 1968년 5월 창립 인사 34명이 모여 만들었다.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 안병화 전 포스코 사장, 이상수 전 거양상사(포스코P&S 전신) 회장, 안덕주 전 포스코 전무, 박준민 전 포스코개발 사장 등 면면이 포스코의 살아있는 역사다. 이중 6명은 지난 16일 '포스코 정체성을 훼손하는 현 경영진의 진정한 자성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포스코가 처음부터 회사 수익의 극대화만 생각했다면 지금 우리나라 조선·자동차·건설·기계 산업이 이토록 눈부시게 성장했겠습니까. 당시 우린 덜 벌더라도 다른 산업의 경쟁력부터 키우자고 했지요. 소위 '산업의 내실화'를 중요하게 본 겁니다. 혹자는 주인이 없어 지금 포스코가 이 모양 이 꼴이 됐다 하는데, 반대로 임자가 없었으니 이만큼 국민기업으로 우뚝 솟은 거예요."

"기업이 신념·철학 없으면 소멸하고 만다"

여 전 부사장은 박 명예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1992년 10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박정희 대통령 묘역에서 열린 행사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당시 행사는 '철강 2100t(톤) 시대'를 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돌아가신 분(박정희 전 대통령)께 보고하는 자리였어요. 그 때 박 회장님이 그랬죠. '포스코의 비전'은 다음 세기의 번영과 다음 세대의 행복을 창조하는 국민기업의 지평을 열어가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그랬던 기억이 나요. 기업은 신념이 없고 철학이 없으면 소멸하고 만다고. 지금 포스코가 딱 그 짝이에요."

경기고, 고려대 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한 여 전 부사장은 포스코에서 인사부장을 역임한 뒤, 캐나다 현지법인 포스칸(POSCAN) 사장, 포스코-미국 US스틸 합작법인 UPI(USS POSCO Industries) 수석부사장 등을 지냈다.

"본사가 있던 미국 피츠버그 시는 물론 미국 전역에서 US스틸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세요? '더 코퍼레이션'(The Corporation). 우리말로 치면 '그냥 기업' 즉 '국민기업'이에요. 그런 US스틸도 석유사업 진출 등 사업다각화를 꾀하다 결국 망했어요. 반면 일본 신일본제철을 보세요. 철강과 유관 산업에만 집중하고 있어요. 우리도 '철'로만 승부를 봐야 합니다. 지금 회사가 리튬, 2차전지 투자 등 사업다각화를 꾀하고 지주회사 체제로 바꾸는 등 이른바 '재벌 흉내내기'나 하고 있는데 한심합니다. 박 회장님은 민영화 이후에도 회사 주식을 단 한 주 조차 갖지 않으신 분이었는데…."

▲ 여상환 전 포스코 부사장(국제경영연구원장)은 5월19일 UPI뉴스 인터뷰에서 지난해 급증한 포스코 산재에 대해 경영진을 강하게 질타했다. [송창섭 기자]

그는 지난 1~2년 사이 포스코 내 산업재해가 급증한 것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쏟아냈다.

"안전과 복지 부분에 적시적소 투자하지 않고 숫자로만 경영을 하니, 사고가 터지는 거예요. 하청업체 교육과 관리 감독을 제대로 했으면 사고가 났겠어요. 박 회장님이 경영할 때는 하청업체 한 명이 잘 못 돼도 그 책임을 우리 직원이 지도록 했는데…엉뚱한데 말고 설비투자와 직원 복지에 돈을 써 봐요. 그런 사고가 터지나."

여 전 부사장은 얼마 전 창립인사들의 뜻을 모아 전달하려 했으나, 최정우 포스코그룹 회장이 극구 자신들과의 면담을 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랬기에 보도자료 형식을 빌려 자신들의 뜻을 외부에 알렸다고 말했다.

"오늘(5월19일) 오전 전중선 포스코홀딩스 사장이 와서 그런 이메일을 보낸 뜻을 설명하기에 선배이신 황경로 전 회장님이 그랬어요. '제철 사업이나 제대로 하라'고. 포스코는 우리가 아껴야 할 국민자산이에요. 우리 후배들도 그런 소명의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송창섭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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