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비대출 보증 연장 거절·타워크레인 철수…강경한 둔촌주공 시공단, 왜?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 2022-05-18 16:38:27
갈등 장기화에 대주단 '웃음'·시공단 '나쁘지 않음'·조합 '악몽'
공사비 5600억 증액 계약의 유·무효를 두고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과 대립 중인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의 태도가 날이 갈수록 강경해지고 있다.
18일 시공단과 NH농협은행 등 둔촌주공 대주단에 따르면, 대주단·시공단·조합은 지난 12일 사업비대출 연장 여부에 대해 의논했다. 이 자리에서 시공단은 "(현재 상황에서는)사업비대출 보증을 연장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조합은 시공단의 연대보증으로 지난 2017년 대주단으로부터 7000억 원의 사업비대출을 받았다. 올해 8월 만기인데, 시공단이 보증 연장을 거절한 것이다. 공사 중단 등 양 측의 극한대립이 멈추지 않는 한 보증을 연장해줄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대주단은 "보증 연장 없이는 사업비대출의 만기연장도 없다"는 태도이며, 시공단은 일단 빚을 대신 갚은 뒤 조합에 구상권을 행사할 전망이다.
시공단은 또 지난 16일부터 공사 현장의 타워크레인을 해체하기 시작했다. 타워크레인은 해체·철수에 2~3개월 가량 걸리며, 재설치에도 비슷한 기간이 소요된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타워크레인까지 철수하는 케이스는 매우 드물다"며 "사실상의 결별 신호"라고 해석했다.
지난달 공사가 중단된 후 시공단과 조합은 공사 재개와 관련해 단 한 번의 협상도 없었다. 시공단은 서울시에 보낸 공문에서 "현 조합 집행부 및 자문위원들을 전혀 신뢰할 수 없으며,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했다. 조합이 서울시에 협상 안을 보냈으나 시공단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했다.
공사 중단, 갈등 장기화는 시공사 측에도 리스크다. 그럼에도 둔촌주공 재건축 시공단이 강경 일변도로 나오는 가장 큰 이유로는 건설 원자재가 폭등이 꼽힌다.
현대건설·GS건설·DL이앤씨·대우건설·롯데건설 5대 건설사의 1분기 철근 평균 구매가격은 전년동기 대비 39% 급등했다. 시멘트 가격은 평균 15%, 레미콘 가격은 평균 5%씩 올랐다.
2분기에도 가격 상승은 이어지고 있다. 5월부터 레미콘 가격이 10~15% 정도 치솟았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 등으로 원자재가 오름세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자재가 폭등은 공사비도 밀어 올렸다. 이미 서울 기준 아파트 공사비는 3.3㎡당 600만~700만 원 수준에서 형성되고 있다. 700만 원이 넘는 곳도 나왔다.
그런데 조합과 시공단이 지난 2020년 6월 체결한 계약, 총 공사비 3조2294억 원의 계약은 3.3㎡당 공사비를 493만 원으로 책정했다. 계약서 안에는 물가상승을 이유로 공사비를 늘릴 수 없다는 조항도 삽입돼 있다.
원자재가 폭등 현상을 감안할 때, 조합에 유리하고 시공단에 불리한 계약인 셈이다. 윤지해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원자재가 폭등은 시공단에게 악재"라고 진단했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연구소장은 "현 계약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조합에 가장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단 입장에서는 공사를 하면 할수록 손해인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계약은 계약이니 시공단은 '울며 겨자먹기'로 공사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는데, 조합이 먼저 무효를 선언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조합은 2020년 6월 체결한 계약에 대해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했다. 또 총회를 열어 해당 계약의 취소를 의결했다. 김인만 소장은 "시공단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라고 평했다.
시공단은 기다렸다는 듯 공사를 중단하고, 미지급된 공사비 채권 1조7000억 원에 대해 유치권을 행사했다. 공사 중단 후 한 달여밖에 지나지 않았으나 단 한 번의 협상도 없이 타워크레인 철수까지 시작했다.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 관계자 중 갈등 장기화로 유일하게 웃고 있는 이는 대주단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사기간이 지연될수록 대주단이 얻는 이자수익도 늘어난다"며 "리스크 역시 거의 없다"고 했다. 사업비대출은 시공단이 대신 갚을 예정이며, 이주비대출은 재건축 사업부지를 선순위 담보로 잡고 있다.
시공단에게도 나쁘지 않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시공단에게 현재 상황은 계약서대로 공사를 지속해야 했을 때와 비교해 나쁘지 않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공단은 유치권을 통해 지금까지의 공사비만 보전받으면 그만"이라며 "결코 손해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김인만 소장은 "시공단은 모두 전문가"라면서 "법률 자문뿐만 아니라 손익 계산기까지 두들겨본 뒤 공사 중단을 결정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합에게는 악몽이다. 한 조합원은 "요새 불안해서 밤에 잠도 이루지 못한다"고 호소했다.
한 부동산 유튜버는 "지금 당장 시공단에게 백기를 든 뒤 공사를 재개해도 조합원 개개인이 3억~4억 원씩의 추가분담금을 내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당초 예상되던 수준(1억 원)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조합원의 부담은 계속 불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공단과 끝까지 싸우는 것 역시 조합에게 이롭지 않다. 시공단은 1조7000억 원의 공사비 채권을 쥐고 있으며, 사업비대출을 대신 갚으면 추가로 7000억 원의 채권이 더 생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어느 쪽 채권을 행사하든 혹은 둘 다 행사하든 시공단은 사업부지를 경매에 붙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공단도 가능한 한 대화로 해결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최악의 경우 경매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KPI뉴스 / 안재성 기자 seilen78@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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