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상조사위 "광주역 발포 지휘 진술 다수 확보"
김해욱
hwk1990@kpinews.kr | 2022-05-12 20:21:41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일대에서 발생한 집단 발포가 우발적 행동이 아니라 제3공수여단장의 현장 지휘에 따른 것이란 증언이 나왔다.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는 12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위원회 대강당에서 '대국민 정례 보고회'를 열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위는 당시 작전에 참여했던 계엄군 530명에 대한 방문 조사를 실시해 58명으로부터 최모 당시 제3공수여단장이 광주역 현장에서 지휘하며 무전으로 발포 승인을 요청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전까지는 박모 대대장 등이 시위대의 차량 공격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차량 바퀴에 권총을 발사한 것이 광주역 발포의 시발점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박 대대장 수기에 따른 것이어서 신빙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
광주역 현장 발포로 4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는 게 지금까지 확인된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사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조사위 측은 "여러 진술을 바탕으로 현장 지휘관의 독자적 판단에 의한 발포가 아니라 별도의 명령계통에 의해 광주역 집단 발포가 있었는지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이라 말했다.
송선태 위원장은 "여단장의 권총 3발을 신호로 발포가 시작됐다는 3여단의 작전 관련 장교들 및 하사관과 병의 증언이 있었다"면서도 "이것을 부인하는 증언도 있어 사실관계를 조사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조사위는 또 광주 민주화운동 관련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에 나오는 사진 속 인물은 살아있다고 밝혔다. 당시 계엄군에 살해됐다는 시민군 '김군'은 차모(61)씨로 확인됐다.
조사위는 김군이 북한군 '광수 1번'이고 북한군이 민주화운동에 개입했다고 주장한 지만원 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냈다.
KPI뉴스 / 김해욱 기자 hwk1990@kpinews.kr
[ⓒ KPI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