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리 포전까지 잠식한 '김씨 3대 우상화' 기념비
김당
dangk@kpinews.kr | 2022-05-11 17:04:24
김정일, 지구 17바퀴 167만4610리, 전국 1만4290단위 현지지도
현지지도한 곳마다 '사상교양거점' 세우면 기념시설로 덮일 판
"영광의 땅 강서구역 청산협동농장과 평원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올해의 첫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영광의 땅'에서 개시된 '모내기 전투' 소식이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북한에서 '영광의 땅'은 '김씨 3대'의 손길이나 발길의 흔적이 있는 곳을 지칭한다.
북한 당국은 노동신문 11일자 1면에 '영광의 땅에서 올해의 첫 모내기 시작' 기사를 필두로 △올해 알곡고지점령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모내기에 모든 힘을 총동원, 총집중하자(사설) △포전마다 들썩하게 하는 사상전의 힘찬 포성 △사회주의농촌에 설비와 자재, 동력을 책임적으로 등 4꼭지의 기사를 실어 모내기 전투를 독려했다.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대를 이어 현지지도한 청산협동농장
북한에서 해마다 첫 모내기 소식을 알리는 '영광의 땅'은 김일성 주석이 현지지도한 원화협동농장과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대를 이어 현지지도한 청산협동농장이다.
원화리에서는 지난 10일 농업위원회와 도∙군의 책임일꾼들, 협동농장 일꾼들이 농장원들과 함께 포전(논)에 첫 모를 냈고, 청산벌에서는 이보다 하루 앞선 9일 남포시당위원회와 강서구역 일꾼들이 현지에서 농장원들과 함께 모내기를 했다.
'올해 알곡고지 점령의 돌파구를 열기 위한 모내기에 모든 힘을 총동원, 총집중하자'라는 노동신문 1면 사설에서 보듯, 북한에서 모내기는 '한 해 농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영농공정'으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사활적 전투이자 중대한 정치사업이다.
그만큼 식량 사정이 절박하기 때문이다. 사설에서 "오늘 우리 앞에 나서고 있는 가장 절박한 과업은 농사를 잘 지어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어록을 되새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모내기를 제철에 질적으로 결속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노동) 당의 존엄높은 권위를 백방으로 보장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적 사업"인 것이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이중으로 현지지도한 청산리는 북한 주민에게 평생교육의 장소이다. 북한의 방송통신 강좌인 '우리민족강당' 누리집은 청산리에 대해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청산리는 어버이수령님(김일성)께서 청산리정신, 청산리방법을 창조하신 역사의 땅이며 위대한 장군님(김정일)께서 수령님의 사회주의농촌 건설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국의 앞장에 내세워주시는 본보기 단위였다."
당초에 농업 분야에서 출발한 청산리정신 또는 청산리방법은 이른바 '대안의 사업체계'와 함께 북한의 대표적인 경제관리체계를 지칭한다.
청산리정신(방법)은 김일성이 1959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생산관계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성된 새 환경에 맞게 사업체계와 사업방법을 개선하도록 지시를 내리고, 이듬해인 1960년 2월 평남 강서군(현 남포시 강서구역) 청산협동농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이를 일반화하도록 재차 지시한 데서 비롯됐다.
'청산리방법'이라고 하면 뭔가 거창한 이론 같지만 북한은 그 기본 내용을 △상급기관이 하급기관을 도와주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도와서 서로 합심하여 당의 노선과 정책을 관철해 나가는 것 △늘 현지에 내려가 실정을 깊이 알아보고 문제 해결의 옳은 방도를 세우는 것 △모든 사업에서 정치사업, 사람과의 사업을 앞세우고 대중의 자각적 열성과 창발성을 동원하여 혁명과업을 수행하도록 하는 것 등으로 설명한다.
김정일의 청산리 현지지도 신화
김정일 위원장의 청산리 현지지도 신화라는 것도 그 내용을 보면 별 것이 아니다.
김정일이 1971년 5월 초 모내기가 한창인 청산리를 찾았는데 써레질하는 트랙터만 보이고 모내는기계(이앙기)가 보이지 않았다. 농장 관리위원장에게 연유를 물으니 모내는기계를 한두 번 써보았는데 손에 익숙지 않고 고장이 자주 나 창고에 넣어두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에 김정일은 "기계로 모를 내야 농민들을 힘든 노동에서 해방할 수 있으며 모내기를 제철에 끝낼 수 있다"며 "모내는기계가 열 번 고장나면 열번 고치고, 백번 고장나면 백번 고쳐서라도 기계로 모를 내야 한다"고 '가르침'을 준 것이 농촌 기계화의 시발이 되었다는 것이다.
김정일은 이후 문덕군 용오협동농장과 동림협동농장, 신천군과 삼천군의 협동농장 등을 현지지도하면서 농촌경리의 종합적 기계화를 적극 다그쳐 나가는 한편으로, 자신의 선전선동 주특기를 살려 출판보도 부문에서 청산리의 경험을 널리 소개선전하도록 했다.
문제는 1950년대 후반부터 김일성의 1인독재체제를 위한 혁명전통교양사업의 일환으로 김일성과 그 가계의 우상화 정책을 실행하고, 각종 상징 조작물을 설치해 우상화 학습장소로 활용해온 토대 위에 그런 사상교양과 선전선동의 더께가 수십년 동안 켜켜이 쌓이면서 화석화된 점이다.
정보당 알곡1t씩 더 증수(增收) 요구하면서 '사상교양거점' 가꾸기 주문
북한 관영매체들은 청산협동농장의 첫 모내기 소식을 전하면서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1971년 5월 12일에 친히 농민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신 포전"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기념비 사진을 함께 실었다.
사진에는 논에서 모내는기계로 모를 심는 농민들 저편으로 예술선전대원들이 붉은기를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노동신문은 11일 사설에서 "올해 농사를 잘 짓는 것은 5개년계획수행을 위한 총진군을 힘있게 다그쳐 나가는데서 나서는 절박한 요구"라면서 모내기를 제철에 질적으로 결속해 당의 뜻대로 알곡을 정보당 1t씩 더 증수(增收)할 것을 주문했다.
또한 북한은 지금 알곡 수확을 늘릴 수 있는 한뼘의 농지라도 더 얻기 위해 전국토를 개조하는 대간척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는 한편으로 북한 당국은 올해 김정은 공식 집권 10년을 맞아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김일성 3대(代)의 '혁명 업적'과 관련한 각종 기념지와 박물관을 철저히 관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의 영도업적을 옹호하고 고수하려면 '사상교양거점'들을 철저히 가꾸고 보존해야 한다고 다그치고 있다.
전국에 산재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관련 혁명전적지와 사적지, 혁명박물관과 사적관, 김일성-김정일주의연구실, 혁명사적교양실 등이 주요 관리 대상이다.
청산리 모내기 포전에 등장한 기념비도 그런 사상교양거점 가꾸기의 일환이다.
북한 당국은 "교양거점들에 전시된 사적물들과 교양자료들은 우리 인민이 영구히 보존하여야 할 더없이 소중한 재보"라며 전시물들에 작은 손상도 가지 않도록 영구 보존대책을 철저히 세우고 과학기술을 활용한 관리법을 개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포전에 들어선 기념비도 응당 농장원들이 농삿일보다 더 쓸고 닦아 관리해야 할 '소중한 재보'이다.
북한 당국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생전에 지구둘레를 근 17바퀴 돈 것과 맞먹는 167만4610여리의 강행군 길을 이어가면서 전국 1만4290여개의 단위를 현지지도했다.
김정일 기념시설만으로도 벅찬데 앞으로 김정은의 손길과 발길이 닿은 곳마다 기념시설을 세우다 보면, 바다를 메워 간척하는 땅보다 기념시설로 메우는 땅이 더 많아질지도 모른다.
KPI뉴스 / 김당 대기자 dangk@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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