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살육이 게임 같은 시대, 가난한 죽음에 대한 묵상"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6-05-01 17:31:37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공포와 고독을 넘어서는 묵상 제공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독하고 낮았던 죽음의 의미 되새겨
"권력 정점에서 자신을 구원자로 묘사하는 오만한 태도"

'마리아 수녀님, 나는 외롭습니다. 아무 위로도 없이 정말 외롭습니다. 머리로야 얼마든지 안심되는 생각을 짜낼 수 있으나 그것도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일생 매시간 죽음을 묵상해왔어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지금 와서는 아무 소용이 없군요!'  

 

▲ '글쓰기의 사제'로 불리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 [위키미디어]

 

봉쇄수도원에 들어가 생애 내내 묵상하고 기도하며 예수의 죽음을 본받고자 했던 원장 수녀가 정작 죽음이 임박하자 고통에 몸부림치며 인간적인 고뇌를 토로한다. 벽에 비친 고기 그림자가 배를 부르게 할 수 없듯이, 천주님 '그분'도 그저 그림자처럼 되고 말았다고 호소한다. 예수가 겟세마니 올리브 동산에서 죽음을 앞두고 피땀을 흘리며 고뇌하던 순간을 언급하며 '오직 천주께만 마음을 쓰라'고 마리아 수녀가 말하자, 원장 수녀는 답한다. '이토록 비참한 내가 무엇이기에 이런 시간에 '그분'께 마음을 씁니까! '그분'께서 먼저 내 걱정을 해주셔야지요!'

마리아 수녀는 "우리 원장님은 착란 상태"라며 "이제 당신이 하는 말에 책임이 없는 상황에 드셨다"고 수녀들에게 말한다. 수녀원에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원장 수녀가 정작 임종 국면에서 예수의 죽음을 본받지 못하고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과 공포에 휩싸인 상황이다. 가뜩이나 태어날 때부터 공포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온 '블랑슈'라는 귀족 처녀는 세속의 두려움으로부터 도피해 수도원에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원장의 공포스러운 임종을 목도하게 됐다. 원장은 죽어가면서 그녀를 가까이 불러 '지금은 내 죽음, 참으로 보잘것없는 죽음밖에 줄 수 없다'고 한탄한다.

이러한 인간적 공포 앞에 오늘의 현실은 점입가경이다. 교황과 설전을 벌였던 미국의 정치 지도자가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처럼 형상화한 이미지를 SNS에 올려 논란이 됐다. 권력의 정점에서 자신을 구원자로 묘사하는 그 오만한 태도 앞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고독하고도 낮았던 한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인류의 죄를 대신해 단두대보다 더 처참한 십자가의 길을 택했던 그 깊은 사려를 털끝 만큼이라도 이해했다면, 살육이 게임처럼 자행되는 무모한 전쟁과 혐오의 정치를 감히 그렇게 정당화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죽음 앞에 선 모든 인간의 심정에 공통으로 먼저 앞서는 것은 '공포' 그 자체일 터이다. 오로지 죽음과 자신만 대면하는 그 엄청난 고독과 고통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하고 나약한 인간은 어떤 저항을 할 수 있을까. 어떤 태도가 그 공포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신과 사후세계를 믿는 종교적 태도를 떠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공포를 바탕으로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찾아나선 프랑스 수녀들의 '순교' 이야기가 끌리는 배경이다.

프랑스 작가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1888~1948)의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정영란 옮김·문학과지성사)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프랑스혁명 당시 공포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1794년 7월 17일, 콩피에뉴의 가르멜 수도원 소속 수녀 16명이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이 실제 사건을 독일 작가가 '단두대의 최후 여인'(1931)이라는 서간체 소설로 형상화했고, 베르나노스는 이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한 시나리오 대사 집필을 위촉받아 작업을 마치지만 육필 원고만 남긴 채 타계했다.  


그의 후원자였던 평론가 알베르 베갱이 1949년 먼저 연극 형식의 대본으로 출간해 성공을 거뒀고, 이후 오페라를 비롯해 영화로도 변주됐다. 국내에서는 안응렬 번역으로 1960년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됐다. 최근 선보인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연구자들이 작가의 육필원고를 전면 검토해 2015년 66년 만에 새롭게 펴낸 판본을 바탕으로 선보인 작품이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고, 스페인과 브라질 등으로 옮겨다니며 글을 쓰면서 레지스탕스 활동에 참여한 베르나노스는 프랑스 기독교 문학을 대표하는 '글쓰기의 사제'로 꼽힌다.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히는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에는 죽음 앞에서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로 고통받는 수녀와 신부가 공통으로 등장한다. 죽음 앞에서 '승리'를 선언하는 도그마에서 벗어나 지극히 낮은 곳에서 고통받았던 예수의 죽음을 묵상케 하는 설득력을 발휘한다.

경찰 관리가 '미신과 거짓말에 매일 희생되는 이 집은 또 하나의 바스티유 감옥'이라며 '이 소굴을 깨버리겠다'고 통고하는 현실 앞에서 수녀들은 '순교' 서원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새 원장 수녀는 '몸이 생생한데 순교로 죽기를 원하는 것은, 마치 고기 요리에서 올라오는 김만 맡아도 배가 부르려니 생각하는 미친 사람처럼 마음에 헛바람만 잔뜩 채우는 격'이라며 반대한다. 원장 수녀가 출타한 틈에 수도원을 급습당한 수녀들은 그들끼리 순교를 서원하게 되고, 겁에 질린 블랑슈는 달아난다. 그녀는 단두대로 돌아와 전임 원장 수녀가 미리 선물처럼 보여줬던 '가난한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올리브 동산에 계신 그리스도는 더는 그 무엇의 주인도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고뇌가 그보다 더 극심한 지경까지 다다른 적은 결코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닿지 못할 테지요. …순교자들은 그리스도의 부축을 받았으나 그리스도 자신은 아무 도움도 받지 못하셨어요. 모든 도움과 자비가 '그분'에게서 나오니까요. 생명 있던 사람치고 그분만큼 외롭고 무장 해제되어 죽은 이는 그 누구도 없어요.'

순교 서원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수녀는 예수의 '무장해제된 죽음'에 관해 말한다. 수녀들에게는 먼저 모범을 보여준 '그분'이라는 의지처라도 있지만, 예수가 겟세마니 동산에서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절대 고독의 고통스러운 결단이었다는 묵상이다. 그 죽음은 인간들의 죄를 '대속(代贖)'하는 것이었고, 본질적으로 수녀들의 순교도 예수를 본받은 '다른 이들을 대신하는 죽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이 죽고 난 뒤 7일 만에 공포정치는 끝났다. 옮긴이가 "한 편의 역사극이나 순교극, 종교 교리의 일방적 번안에 머무르지 않고, 숨 막히도록 지순하고 아름다운, 죽음마저 놀라운 평화 속에 수렴하는 신비적 전례극(典禮劇)"이라고 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한 배경이다.

 

▲국내에서도 국립극장 무대에 올랐던 오페라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 [Lausanne Opera 누리집]

 

프랑스 파리 10대학교에서 베르나노스에 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역자 정영란 한국방송통신대 명예교수는 "예수의 죽음은 도전적 영웅의 죽음이 아니라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난한 인자(人子)로서의 희생이었다"면서 "수녀들의 죽음이 승리주의에 젖은 영웅으로서의 도전 행위가 아니라 가난한 죽음일 때 비로소 그리스도의 죽음과 일치할 수 있을 것임을 일깨운다"고 분석한다. 오페라에서 수녀 한 명씩 단두대 위로 사라지며 길로틴 칼날 내려오는 소리만 어둠을 흔드는 엔딩이 상징하는 것처럼, 수녀들의 죽음은 조용하고 낮은 것이었다.


베르나노스가 집필을 마친 1948년 3월은 그해 7월 5일에 닥칠 그의 죽음을 불과 3개월 반 앞둔 시점이었다. 이 작품이 그의 '영적 유언'으로 일컬어지기도 하는 배경이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고 묵상해온 그는 혼자서 죽음과 고독하게 단독 대면하는 순간, '우리 둘'이라는 임종의 말을 남겼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그 순간을 누군가를 위한 대속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정영란 교수의 말처럼 '가르멜 수녀들의 대화'는 "가치 부재의 시대에 죽음과 맞바꿀 만한 것이 당신에게는 무엇인지" 묻게 만드는 묵직한 울림이다. 명랑한 콩스탕스 수녀의 말.

'사람은 각기 자기를 위해서 죽는 것이 아니고, 서로를 위해서, 아니면 다른 사람들 대신에 죽는 겁니다.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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