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덕수 부인은 왜 '나홀로 위장전입' 했나

탐사보도부

tamsa@kpinews.kr | 2022-05-03 15:13:32

1983년 남편 유학 기간 중 나홀로 친정에서 다른 곳으로 전입
한 후보자 장인, 70년대 대형 건설회사 운영하다 1981년 폐업
손아래 처남 등 처가 식구들 80년대 초반부터 부동산 취득 시작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부부는 남들과 다른 특이한 주민등록이력을 갖고 있다. 부득이한 사정이 없을 경우 보통 부부는 주소지를 함께 옮겨 다닌다. 그런데 한 후보자 부부는 1983년에 주소지가 갈렸다. 한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처가에, 부인은 인근 종로구 삼청동에 주소지를 뒀다. 두 곳 사이 거리는 차로 5분 남짓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간사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시간대별로 살펴보자. 한 후보자는 결혼 후 서울 여의도, 반포, 역삼동, 삼성동 아파트에서 생활하다 1982년 돌연 장인 집에 전입신고 했다. 그러고는 1986년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로 주소지가 다시 바뀐다. 1982년부터 4년 간 한 후보자가 장인 집에 주소지를 둔 사이, 한 후보자 부인은 딱 1년 간 주소지를 삼청동에 뒀다. 흔한 일은 아니다.

한 후보자 부인의 수상한 전입신고는 해명 과정에서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국회 국무총리인사청문위 서면질의에 한 후보자측은 "'부부 동반'으로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미국 유학 중(1982년 9월14일~1984년 5월4일) 주소지가 분리된 적이 있다"고 해명했다.

미국 유학기간은 한 후보자의 전출입 신고일과 정확히 일치한다. 논란은 부인 이력이다. 해명대로라면 부인 최 모 씨는 당시 미국에 있었다. 그 기간 혼자 다른 곳으로 전입신고를 한 것은 쉬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삼청동으로 혼자 전입신고를 하기 전 주소지를 둔 곳은 한 후보자 부인의 친정이라서, 실거주 목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명백한 위장전입이다. 1962년 주민등록법 제정 때부터 전입 후 14일 이내 신고가 의무화했으며, 허위 신고는 금지됐다.

한 후보자 부인은 왜 남편의 미국 유학시절 홀로 주소지를 옮긴 것일까.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한 후보자 부인이 주소지를 둔 당시 삼청동 주택의 소유주는 강 모 씨였다.

소유주 강 씨는 1983년 5월7일 이 집을 샀고, 한 달 뒤인 6월18일 서울신탁은행(현 하나은행) 근저당권이 이 집에 설정된다. 한 후보자 부인이 전입신고를 한 시점은 6월24일이다.

정상적인 임대차 계약이었다면 최악의 경우 법원경매 시 임대료를 한꺼번에 날릴 수 있는 위험한 선택이다. 때문에 현재로선 임대차 계약에 따른 실거주보다는 단순 주소지 이전이 더 설득력이 있다.

왜 근저당권 설정된 삼청동 주택에 전입신고했나

한 후보자 부인은 왜 이렇게 근저당권이 설정된 집으로 무리해 주소지를 옮긴 것일까. 사업가이던 부친의 부침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파산에 따른 '빚잔치'에 대비한 것 아니었겠느냐는 얘기다.

한 후보자 장인 최 모 씨는 1960년대만 해도 유력 건설회사 대표였다. 1973년 정부가 공개한 건설사 공사도급순위에서 최 씨가 대표로 있는 S사는 연 매출이 30억6500만 원으로 15위를 차지했다. 1위는 266억 원인 현대건설, 2위는 201억 원인 대림산업(현 디엘이앤씨)이었다.

1970년 7월 장인 최 씨는 3억7000만 원 어치 부도수표를 발행한 이유로 구속된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S사는 서울대병원, 호남고속도로공사 등의 공사를 수주했는데 고속도로 건설용 중소기업도입차관 11억 원, 은행적금대부 9억 원, 사채 7억 원 등 모두 27억 원의 채무를 갖고 있었다.

이후 S사는 1977년 W건설로, 1978년 D건설로 연달아 사명을 바꾼다. 사명이 바뀐 뒤에도 등기이사 직을 유지하던 장인 최 씨는 돌연 1979년 등기이사직에서 물러났다.

▲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부인이 1983년부터 1년간 전입신고한 서울 종로구 주택. [UPI뉴스]

이때부터 최 씨는 회사와 갈등한다. 같은 해 D사가 장인 최 씨 소유 신문로2가 주택에 가압류를 건 것이 단서다. 장인 최 씨가 일군 D사는 1981년 청산됐다.

한 부동산 경매업계 관계자는 "워낙 오래전 일이라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로선 법인이 청산되고 사실상 빚잔치가 본격화될 것을 걱정한 장인이 딸의 주소지를 다른 곳으로 옮겨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의겸 "장인 최 씨, 1970년 지금 돈 600억 넘는 액수 부도 내"

회사는 부도났지만, 1982년부터 장인 최 씨의 자녀들은 강남 요지인 서울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를 취득하기 시작한다. 한 후보자 외에도 바로 아래처남도 같은 시기 30대 초반에 현대아파트를 구입했다. 이 때문에 매매를 통한 재산증여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장인 최 씨가 서울 흑석동 땅과 토지를 자녀들에게 증여한 시점도 1984년이다.

2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의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70년 30억 원의 부도를 내서 피해자만 400명에 이른다. 당시 30억 원은 지금 돈으로 600억 원이 넘는 큰 액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후보자는 "장인이 호남에서 기반을 가지고 나중에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추정)까지 되셨던 정치인한테 정치자금을 좀 드렸다가 그것 때문에 세무사찰에 의해 부도가 났다"고 밝혔다.

한 후보자측은 삼청동 위장전입에 대해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다. 

KPI뉴스 / 탐사보도부 송창섭 기자 realsong@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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