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탁한 세상 '존버 정신'으로 맞선 소설가 이외수 별세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 2022-04-25 23:47:50
초기 탐미적인 섬세한 작품세계에서 신비주의로
현실 문제 촌철살인… '트위터 대통령'으로 부각
'존재하기에 버틴다'는 '존버정신' 으로 대중 위무
소설가 이외수 씨가 25일 별세했다. 향년 76세. 2020년 뇌출혈로 쓰러진 이래 재활에 힘써왔지만 최근 폐렴을 앓다가 이날 오후 8시께 타계했다.
고인의 큰아들 한얼씨는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가족들이 모두 임종을 지키는 가운데 마치 밀린 잠을 청하듯 평온하게 눈을 감으셨다"면서 "존버의 창시자답게 재활을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 여러분들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게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고인은 1946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춘천교대를 자퇴한 후 강원일보 신춘문예(1972)에 단편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되고, '세대'지에서 중편 '훈장'으로 신인문학상(1975)을 받으며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걸어왔다.
섬세한 감성이 돋보이는 탐미주의적 색채의 첫 장편 '꿈꾸는 식물'(1978)을 펴낸 이래 문명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남녀를 그린 장편 '들개'(1981), 왼쪽 안구가 함몰된 장애인으로 태어난 주인공의 악마적 본능을 추적한 '괴물'을 비롯해 '장수하늘소' '장외인간' '보복대행전문주식회사' 등을 펴냈다. 소설 외에도 시집 '풀꽃 술잔 나비',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에세이 '하악하악', '청춘불패'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4인의 에로틱 아트전'(1990), 선화(仙畵) 개인전(1994)을 개최하며 화가의 이력도 추가했다.
방송과 SNS를 통해 대중과 일선에서 교류해온 그는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1위'(2009년 한국갤럽 조사)로 꼽히기도 했다. 기발한 상상력과 특유의 언어유희를 바탕으로 팔로워 170만 명을 기록하는 '트위터 대통령'으로 불리며 문학 독자는 물론 많은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고인은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조선족이 사용하는 조선어가 자국의 언어라고 주장할 때 "중국이 한글을 중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것은 한국이 만리장성을 한국의 문화유산이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라고 쏘아붙였고,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는 "일본은 세슘에 초밥 말아먹는 소리 그만해야 합니다"라고 올리기도 했다. 민감한 정치 현안과 관련한 소신을 분명하게 밝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고인은 소설집 '완전변태'(2014년)를 출간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트위터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에서 트레이닝한 덕분에 다른 때 같으면 편당 1~3개월 정도 걸려 썼는데 일주일 정도면 충분했다"면서 "트위터는 140자로 제한되기 때문에 뼈와 기름을 발라내고 살코기만 떠서 접시 위에 내놓는 듯한 느낌이어서 메시지를 함축하고 가지치기를 연습하기에 아주 적절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춘천에서 30여 년간 지내던 고인은 2006년 강원도 화천군이 마련해 준 '감성마을'로 이주해 투병 전까지 집필 활동을 했다. 고인이 입주한 뒤 감성마을은 그를 찾아오는 독자들로 붐비면서 명소로 떠올랐다. 고인은 에세이 '하악하악'에서 '존버'('존재하기에 버틴다' 준말)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하며 '존버 정신' 창시자로도 화제가 됐다. 현실정치와 관련해 적극 발언하는 행보가 이어지자 보수진영 쪽에서 그를 화천 감성마을에서 퇴거시키자는 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존버 정신'으로 버텼다.
부인 전영자 씨와 2019년 결혼 44년 만에 졸혼을 선언해 화제가 됐다. 전 씨는 고인이 쓰러지자 달려와 병간호를 하며 고인의 곁을 지켰다. 유족으로는 영화감독인 장남 한얼, 사진작가인 차남 진얼, 아내 전영자 씨가 있다. 빈소는 강원도 춘천시 호반병원 장례식장에 마렸됐고, 발인은 29일 오전 7시 30분 예정이다.
KPI뉴스 /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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