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물가' 제대로 반영 못하는 정부 물가통계

강혜영

khy@kpinews.kr | 2022-04-20 16:49:30

소비자물가지수엔 '미친집값' 빠지고
근원물가 지수엔 석유류, 식료품 빠져
근원물가는 美닉슨 정부 꼼수로 탄생
한은 "여러 지표 보며 종합적으로 판단"

정부 발표 경제통계 중 체감하기 어려운 것들이 적잖다. 대표적인 게 물가통계다. 체감물가는 치솟는데 통계는 한참 뒤처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해나 착시가 아니다. 실제 통계 생산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물가통계인 소비자물가지수부터 '괴리'가 상당하다. 3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1%. 10년 3개월래 최고치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석유류 가격이 31.2% 뛴 영향이 컸다.

하지만 소비자물가지수엔 '미친집값'이 빠져 있다. 통계청은 소비자물가지수에 집값 변동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내내 무섭게 치솟은 '미친집값'에 무주택 서민은 '이생망'의 절망에 빠졌는데, 이런 가격변동이 통계엔 누락되고 있는 것이다. 

'근원 물가'(Core Inflation)를 보면 괴리가 더 커진다. 근원 물가란 변동성이 큰 항목을 추가로 뺀 물가통계다. 소비자물가지수에서 계절적 요인, 기상 여건 등에 의해 급변동하는 식료품 가격과 국제 원자재 가격에 따라 큰 폭의 변화를 나타내는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것이다. 그래서 근원 물가 상승률은 대체로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낮다. 3월 근원물가 상승률은 2.9%다. 

근원 물가는 변동성이 큰 품목을 빼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통계라고 하지만 탄생 배경은 정치적이고, 불순하다. 

▲ 최근 월별 소비자물가·근원물가·생활물가 상승률 추이 [e나라지표 홈페이지 캡처] 

근원 물가가 탄생한 건 미국 닉슨 정부에서다. 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당시 급등하는 석유 가격, 식료품 가격을 차례로 빼면서 탄생한 게 근원 물가라는 것이다. 

1969년 취임한 리처드 닉슨 제37대 미국 대통령의 경제 보좌관을 지낸 케빈 필립스가 2008년 비평지 '하퍼스'에 기고한 글에 이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닉슨은 1970년 자신의 보좌관인 아서 번스를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으로 임명했다. 재선을 위해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해 경기부양책을 쓰려는 포석이었다. 당시 '도청 테이프' 자료에 따르면 닉슨은 번스에게 직간접적으로 1972년 11월 대선 이전에 확장적 통화정책을 쓸 것을 압박했다. 연준은 대규모 통화 완화 정책을 폈고 이를 바탕으로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인위적인 통화 팽창 정책으로 이미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1973년 '석유 파동'이 터지자 번스는 통화정책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에너지류 가격을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제외했다. 에너지류 가격이 소비자물가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1%에 달하는데도, 그래서 직원들이 반대하는데도 번스는 이를 강행했다. 

같은 해 엘니뇨 등 이상기후로 식료품 가격이 뛰자 소비자물가지수의 25%를 차지하는 식료품 가격마저 빼버렸다. 이렇게 근원 물가가 탄생했다.

당시 연준 이코노미스트였던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 연구원은 훗날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소비자들이 구입하는 가장 중요한 것 중에서 몇 가지를 빼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내 반응은 '완전히 미쳤군'이었다"면서 "이 항목들은 생활필수품"이라고 회고했다.

번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중고차와 아이들 장난감, 여성의 장신구 가격도 같은 이유로 소비자물가지수에서 빼버렸다. 닉슨이 1974년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이후인 1975년이 돼서야 번스는 인플레이션에 문제가 있다고 시인했다.

번스의 재임 기간인 1970~1978년 9년 동안 미국의 평균 물가상승률은 9%대였다. 1979년 물가상승률은 13.3%에 달했다. 과도한 물가는 미국의 경제 성장까지 위협했다. 

치솟는 물가는 '톨 폴(Tall Paul)'로 널리 알려진 폴 볼커가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하면서 간신히 잡혔다. 볼커는 기준금리를 20.0% 수준으로 올리며 강한 긴축을 시행했다. 살해 협박까지 당했지만, 흔들림 없이 긴축 기조를 이어간 덕에 1980년대 미국의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는 "역사적 배경을 고려하면 근원 물가는 합당하지 않은 지표"라며 "경제학을 처음 배울 때 장기적인 통화 계획 수립 시 일시적인 가격 변동은 배제해야 한다고 배우기 때문에 이를 아직까지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유가 관련 이미지 [셔터스톡] 

근원 물가 지수가 실제 물가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는다. 

미국의 3월 근원 물가상승률이 전월 대비 0.3%로 시장 전망치(0.5%)를 하회하면서 일각에서 물가 정점론이 제기된 것은 일례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이는 근원 물가가 가지는 한계에 따른 착시효과라고 진단했다. 이선 해리스, 애나 저우 BoA 연구원은 3월 근원 물가 둔화에 대해 "중고차 가격이 3.8% 하락한 영향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두 연구원은 "이 수치는 속임수(head fake)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전통적인 근원 물가 작성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실수"라고 꼬집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근원 물가가 보편적으로 사용됐는데, 최근에는 통계적 유의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현재 물가에는 코로나19, 우크라이나 사태 등 외부적인 충격들이 많이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근원 물가 통계를 해석할 때 기계적으로 숫자를 해석하기보다는 이같은 요인들을 잘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근원 물가의 한계에 대해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한 가지 지표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며 "여러 지표를 같이 보면서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KPI뉴스 / 강혜영 기자 khy@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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