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조항'에 떠밀리는 세입자들…"손해배상도 어려워"

김지원

kjw@kpinews.kr | 2022-04-08 15:27:46

실거주 조항 악용 횡행…"임차인 보호라는 임대차3법의 근본취지 훼손"

이 모(29·여) 씨는 서울 시내 한 지하철역 근처 오피스텔에서 전세 임차인으로 살았다. 전세보증금은 1억9000만 원이었다. 

올해 초 계약기간 만료가 다가오자 이 씨는 임대인에게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겠다고 알렸다. 임대인 측은 보증금 2000만 원 상향을 요구했다. 이 씨는 법에 의한 임대료 상승폭 제한이 5%니 1000만 원만 올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임대인은 태도를 바꿔서 "딸이 그 집에 실거주하기로 했으니 나가라"고 요구했다. 법에서 집주인이나 그 직계 존·비속의 실거주 권리는 인정된다. 이 씨는 어쩔 수 없이 해당 오피스텔을 나가 딴 곳에 주거를 구했다. 

그런데 이 씨가 나중에 확인해보니 그 오피스텔에는 임대인의 딸이 아니라 다른 세입자가 새로 들어와 살고 있었다. 새로운 세입자는 임대인이 원하던 대로 2억1000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지불했다. 

화가 난 이 씨는 손해배상 청구를 고려했으나 결국 포기했다. 임대인의 실거주 의사가 없었음을 입증하기 까다로운 데다 절차도 복잡해서였다. 

▲ 서울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 앞을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UPI뉴스 자료사진]

2020년 7월 국회를 통과한 '임대차3법'은 세입자에게 계약갱신요구권 1회를 보장하고 있다. 계약갱신요구권을 쓴 경우의 임대료 상한폭은 5%로 제한된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빈틈이 많아 세입자 보호 효과를 충실히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가장 문제시되는 조항은 집주인의 실거주 보장이다. 임대인 본인이나 직계 존·비속이 실거주할 경우 계약갱신을 거절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악용, 실거주를 내세워 세입자를 내보낸 뒤 새로운 임차인과 이전 임대료보다 훨씬 상향된 금액으로 계약을 맺는 경우가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법은 이 경우에 전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정해놨지만, 실제로는 효용이 거의 없는 상태다. 

우선 전 임차인이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왔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새로운 세입자를 확인하더라도 임대인에게 처음부터 실거주 의사가 없었음을 입증하는 것은 더 까다롭다. 

이 씨는 "주변에 나처럼 임대인의 실거주 조항 악용으로 밀려난 임차인들이 많다"며 "그러나 손해배상을 받은 사람은 아직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도시연구소와 주거권 네트워크는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임대차 행정 강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임차인이 임대인의 실거주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관련 행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문도 연세대학교 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실거주 조항이 임차인을 보호하려는 임대차3법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당 조항을 없애거나 실거주일 경우 임대인이 관련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실거주가 아닐 경우 임대인의 이익보다 손해가 크도록 하되 법을 잘 지키는 임대인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 하다"고 덧붙였다. 

KPI뉴스 / 김지원 기자 kjw@kpi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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