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우의 인사이트]위기에 강했던 엔화는 어쩌다 힘을 잃었나

UPI뉴스

| 2022-04-02 11:18:18

긴축 돌입한 미국과 달리 금리 올릴 생각이 없고
8년 대규모 유동성 공급에도 실물경제 좋지 않아
그렇다고 엔화가 안전통화 지위를 잃지는 않을 것

세상에는 3개의 안전통화가 있다. 달러, 엔, 유로가 그것이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통화는 단연 달러다.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도 통화가치가 1년간 13%나 상승했을 정도다. 두 번째는 엔화다. 전쟁이 나든, 경제위기가 발생하든 세상이 시끄러울 때마다 강세가 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벌어지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두 번째 안전통화인 엔화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엔/달러 환율이 한때 126엔까지 올랐다. 연초대비 절하 폭이 6%로 우크라이나 사태의 직접 당사자인 유로 절하 폭의 3배에 해당한다. 

엔화가 약세가 된 건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먼저 미국과 일본의 금융정책이 다르다. 연준 강경파는 상반기에 0.5%p씩 두 번, 하반기에는 0.25%p씩 네 번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 올해 말에 미국의 기준금리가 2.5%가 된다.

반면 일본은 금리를 올릴 생각이 없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가 수요증가로 인한 인플레는 정부가 원하는 바이므로, 물가상승률이 2%를 넘더라도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 

연준 강경파와 일본은행 총재의 얘기가 현실이 될 경우 올해 말에 미국과 일본의 기준금리차가 2.6%p로 벌어진다. 돈이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엔화가 약세가 되는 게 당연하다.

일본 경제가 좋지 않은 것도 엔화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2012년에 아베노믹스가 처음 시행됐다. 8년 동안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금리 인하, 엔화 절하가 계속되다 보니 이제는 정책이 먹히지 않는 상태가 됐다. 

대신 후유증이 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다. 무역수지가 대표적인데, 일본은 전통적으로 무역흑자국이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 10년동안 여덟 번이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엔캐리트레이드(Yen Carry Trade) 약화도 무시할 수 없는 엔화 약세 요인이다.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 수익이 높은 지역에 투자하는 행위로, 엔화가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엔캐리트레이드가 차입 투자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이번에는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가의 금리가 마이너스여서 엔화를 빌리려는 수요가 많지 않다. 

이렇게 많은 요인이 엔화를 약세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엔/달러 환율이 120엔대 밑으로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사정이 좋지 않지만 엔화가 안전통화에서 밀려나거나, 일본이 선진국에서 쫓겨나 개발도상국이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중국의 1.5배에 달하는 대외순자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가계 금융자산 규모도 훨씬 크다. 과거에 비해 위상이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독일과 함께 세계 제조업을 끌고 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는 건 1990년에 세계 경제학자들이 10년 내에 일본이 미국을 넘어설 거라 떠들던 것만큼 편향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이종우는

애널리스트로 명성을 쌓은 증권 전문가다. 리서치센터장만 16년을 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질 때 그는 거품 붕괴를 경고하곤 했다. 2000년 IT(정보기술) 버블 때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용감하게 외쳤고, 경고는 적중했다.경제비관론자를 상징하는 별명 '닥터 둠'이 따라붙은 계기다.

그의 전망이 비관 일색인 것은 아니다. 거꾸로 비관론이 쏟아질 때 낙관적 전망을 내놓은 경우도 적잖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 결정 직후 비관론이 시장을 지배할 때 정작 그는 "하루 이틀이면 진정될 것"이라고 낙관했고, 이런 예상 역시 적중했다.

△ 1962년 서울 출생 △ 198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 1992년 대우경제연구소 입사 △ 2001년 대우증권 투자전략팀장 △ 2007년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1년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5년 아이엠증권 리서치센터장 △ 2018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 저서 <기본에 충실한 주식투자의 원칙>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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